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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러브 Dec 10. 2023

남편의 은밀한 취미 생활

  반 백살 소년이 늙지 않는 비결

  거실 식탁에서 저녁 먹은 그릇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불렀다.


“엄마~ 아빠 뭐해?”

“응? 아빠 안방에 계시지~~”

“아니~~ 안방에서 뭐하냐고?”     

‘응?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아빠랑 같이 안방에 있으면서 나한테 묻는 것은 다른 뉘앙스의 질문이란 뜻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서 안방에 들어가 본다.

     

“아빠 티비 보시네~”


“아니야. 아빠 불멍하고 있어.”


“뭐라구?”


“봐~아빠 불멍하고 있잖아.”    

 

  아이의 시선을 따라 티비를 쳐다보니 티비 화면에는 벌겋게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세상에나. 아무리 언택트, 비대면의 시대라지만 이제 불멍도 화면으로 보면서 하는 세상이 왔단 말이던가.      

웃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아니, 불멍도 티비로 해?”

“그럼~ 요즘에 안되는게 뭐가 있어~직접 안해도 다 할수 있어.”     


  그러더니 갑자기 티비로 유튜브를 연결해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튼다. 캐롤 음악이 깔리며 배경으로  백화점 앞의 화려한 길거리 모습이 이리저리 움직이자 마치 백화점 앞에 내가 직접 서 있는 기분이다.

     

“뭐 앞으로는 크리스마스 기분 느끼러 대도시에 있는 백화점 갈 필요 없겠네~”


“그럼~”


“그런데 왜 며칠 전에 명동 지나면서  신세계 건물 가리키며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저 건물 벽에 산타가 루돌프 타고 날아다니는 멋진 영상이 오버랩 된다고 직접 나한테 보여줬어?”    

 

  남편도 머쓱한지 웃는다. 남편은 참 다방면에 관심도 재능도 많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이 많고 몸을 쓰는 일에는 더 관심이 많다. 축구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반백살 슛돌이’기도 하다. 남들은 전반전을 뛰고 앉아서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혼자서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는 후반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남자다. 날씨가 좋을 때는 몸으로 축구를 하고 비가 오거나 경기가 없을 때는 집에서 눈으로 축구를 한다. (티비로 축구 생중계를 본다는 뜻이다.)


  영어도 잘 못하는 양반이 프리미어 리그 축구 중계는 빼먹지 않고 보더니, 자막이나 통역이 없어도 왠만한 영어로 하는 축구 중계를 다 알아듣는다. 놀랄 노자다. 며칠 전에는 시에서 열린 축구 대회를 다녀왔길래 어시스트 잘 하고 골을 잘 넣고 왔냐고 물으니 수비수로서 무실점 마크를 하고 왔단다. 아주 그냥 거머리마냥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상대팀이 골인 하지 못하게 얼마나 집중마크를 했을지 안 봐도 뻔하다.      


  남편을 보며 알았다. 사람이 무언가를 참 좋아하면 자연스럽게 배우려고 들고 하나라도 더 보고 익히려고 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신혼 때 시골길을 걸으며 남편에게 물었더랬다.


“여보, 여보는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으면 뭐하고 살고싶어?”


남편의 대답이 별다른 망설임 없이 곧바로 나왔다.


“으응. 나는 축구 구단주가 되고 싶어.”


  30대 중반의 남자가 대답하기엔 너무나 소년스런 대답 같아서 피식 웃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축구구단주는 엄청난 부자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사실은 내가 너무 소녀스럽게 순진했던 것이다.


  남편은 나에게 같은 질문을 되묻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라 나 자신의 소망에 대해서는 별달리 생각할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저 임신한 몸으로 뱃속의 아기를 잘 키우고, 출근해서 직장일을 잘 해내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두 아이를 키워내면서 아이들을 두고 밖에서 뭔가 하거나, 누구를 쉽사리 만날수도 없어서 책을 끼고 살았다. 원래 책을 무진장 좋아하기도 했지만 나에겐 최선이자 차선의 선택이었다. 젖을 물리면서도 뭔가 지루 해질만하면 한손으로는 책을 읽고, 잠들기 전에 잠깐이라도 책을 읽고 자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들었다.


  특히 박완서 선생님의 글은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더랬다. 마흔에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그녀의 글은,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하기가 무색하게 글이 술술 읽히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녀의 글은 항상 읽고 나서 장르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들었다. 단편소설이 너무나 실감나서


“이거 혹시 에세이였어?”


하고 표지를 확인하게 했고, 에세이를 읽으면서는


 "세상에 이런일이 진짜 있었다고?"하면서 단편 소설이 아닌가 확인하게 만들었다. 좋은 글이란 쉽게 술술 읽히면서도 읽는이에게 재미와 감동, 생각할 여지를 던져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녀의 글을 통해 몸으로 체득했던 것 같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현역작가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고, 소망대로 죽기 직전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작가로서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달렸다. 그 동력은 그녀의 간절함과 근성이었으리라. 아들을 먼저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까지 잃었다던 그녀였다. 어떻게 그 어려운 시간을 극복 하셨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녀는

“그것은 극복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지요.”라고 답했다. 강인하게만 보이던 그녀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극복이란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였으리라.

    

  6.25전쟁을 겪으며 진영의 문제로 친오빠가 결국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경험한 이후, 이 억울함을 절대 잊지 않고 언젠가는 글로 써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던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힘든 상황 속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면 삶을 견뎌낼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걸 그녀를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더랬다.



  오늘도 남편은 목이 길쭉한 축구용 양말을 꺼내 신는다. 그 뒷모습은 마치 소년의 그것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 고단했을 텐데 저 양반은 배도 고프지 않나.’ 싶다가도 하루 종일 차 파느라, 고객 상대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잔디밭 위에서라도 잠시 자유를 만끽했으면 싶다.  

    

  남편의 은밀한 취미생활이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아내로서 어떤 방식으로든 그를 밀어주고 당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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