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러브 Feb 26. 2024

라면인건가.

아들이 말했다.


“엄마, 유튜브에서 아빠가 라면 끓이는 법과 엄마가 라면 끓이는 법의 차이점에 대한 영상을 봤어.”


“그래? 그게 뭔데?”     


“일단 아빠는 수돗물을 냄비에 담아 물을 끓인 다음  면을 넣고 스프를 넣어.

엄마는 먼저 라면 봉투에 있는 성분분석표를 읽고 몸에 좋은 라면을 만들기 위해 멸치 다시마 육수를 빼. 그리고 야채를 잔뜩 넣어. 그래서 결국 한강이 되어버리지.”   

       

어쩜 저렇게 예리하게(?) 아빠와 엄마의 차이점에 대한 영상을 재미있게도 찍어놨나 싶어 소리 내어 웃자 아들이 나지막이 말했다.     


“라면은 내가 잘 끓여.”     


결국 아빠한테도 엄마한테도 라면 끓이는 중대사는 못 맡기겠다는 거였다. 한 개의 라면을 끓일 때의 적당한 물의 양과 내가 원하는 적당한 정도의 꼬들함을 살려 내려면 내가 하는 게 제일 속편하고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뜻 일게다.   

   

어릴 때 나보다 두 살위의 오빠는 매일 꼭 하루에  번은 라면을 끓여먹었다. 그것도 끼니가 아닌 주로 간식으로 먹었더랬다. 처음에 한 개로 시작된 라면은 사춘기가 되고 덩치가 커지며 2개로, 때론 3개로 늘어났다. 어릴 때 오빠의 꿈은 진심으로 ‘라면 공장 사장님’이 되어 라면을 실컷 먹는 일이었다. 꿈과는 달리 오빠는 지금 수학 학원에서 열강을 하는 수학 강사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라면은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느리게 나이드는 습관’의 저자 노인내과 전문의인 정희원선생님은 이 책에서 말씀하신다. 혈당 스파이크를 줄이려면 정제되지 않은 곡물을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정제된 곡물로 만드는 빵이나 떡은 좋지 않은 음식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좋지 않은 음식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정제된 곡물을 사용해서 가공을 한 가공 식품이라는 것이다. 이것의 대표주자가 있으니 바로 라면과 과자이다. 게다가 튀긴 음식은 필연적으로 산화가 될 수 밖에 없으니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게 요즘 건강론의 정석이다.  

    

그리하여 엄마가 된지 16년이 된 나는 아이들의 라면을 가능한 ‘건면’으로 구비해 둔다. 신라면 건면부터 더미식 건면까지. 건면의 종류를 검색해서 가능한 건강하고 맛있는 라면을 찾으려는 심산이다. 근래에는 한 개에 2000원을 해서 꽤 비싸지만 원 플러스 원으로 사면 한 개 1000원에도 구입 가능한 더 미식의 건면을 주로 먹는다. 스프가 가루 스프가 아니라 액상스프라서 더 건강하면서도 진한 국물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치킨 스톡 베이스의 맛이 나서 풍미도 좋다.     


그렇다. 엄마는 라면에 라면 따위만 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양파와 당근, 양배추를 넣는다. 때론 콩나물과 청경채와 파도 넣는다. 거기에 단백질을 보충할 요량으로 계란도 한 두 개 깨서 넣는다. 그러면 라면 한 끼에 대충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이 들어간 꽤 훌륭한 요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면은 한 달에 한번정도만 먹이려고 노력을 한다. 물론 아이들에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라 가끔 스스로 자신만의 라면을 끓여먹지만 말이다.      


어릴 때 엄마가 소리 높여 “이제 라면 좀 그만 먹어라!” 하던 말씀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세상에 좋은 식재료와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하루가 멀다하고 라면으로 배 채우는 아들이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거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으니, 오빠를 임신했을 때 하도 속이 답답해서 엄마는 하루에 한 개씩 꼭 라면을 끓여 드셨다고.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던가. 엄마의 비행기(?)를 들으며 오빠의 라면사랑은 필연적인 데가 있었구나 하고 웃음 짓게 되었다.




이전 01화 남편의 은밀한 취미 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