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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지호 Jun 27. 2023

심리책 읽으면 사랑받을 수 있다면서요?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었다.
계절의 영향인지 반복되는 일상을 피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시점으로 느껴졌다.
쇠뿔도 단숨에 빼라고 10년 지기 친구와 미루고 미뤘던 제주도 여행을 계획한다.


“너 혹시 하루먼저 제주도 가있을래? 금요일 오전비행기가 한자리밖에 없어”

평일 오후 비행기표는 다른 날보다 저렴하기에 돈을 절약한 것 같아 기분 좋게 목요일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여행 당일 공항의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설렘 가득 찬 표정으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 탑승시간이 되었고 나는 창가자리에 앉아 제주도를 느끼는 내 모습을 상상하였다.

여행지에서는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기에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항상 여행이 기대되고 설레는 이유이다.

행복한 상상중 어느덧 비행기는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 내려 제주의 햇빛을 느껴본다.

3월 제주도의 햇빛은 따뜻하고도 바람은 시원하게 스쳐갔다.

자동차 렌트는 친구가 도착한 날로 예약했기에

나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예약했다.

3키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지도 어플에 의존하여 길을 찾아 나섰다.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한 시점 드디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6인실의 도미토리방으로 이동했다.

간단한 생활규칙 안내를 받으며 짐을 푸는데

맞은편 침대에는 다른 게스트가 핸드폰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사람도 혼자 온 것 같은데 이야기나 걸어볼까?

그런데 인사하고 딱히 할 말도 없잖아.. 쉬고 싶어 할 수도 있고.. 그냥 짐이나 풀자’


현재시간 오후 7시 10분..

20분 후에는 게스트하우스 1층에서

간단한 술자리가 예정되어 있었다.

술은 제공이 되지만 안주거리는 본인이 준비해 와야 하기에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도 않으면서

과하지 않은 메뉴를 고민하다 결국

닭강정을 준비해 자리를 잡았다.

식탁에는 각각의 게스트들이 준비해 온

음식들이 널브러져 있고 아직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다.


스태프 - "빨리 내려오셨네요?”

나 - “예. 혹시 제가 도울건 없을까요?”

스태프 - “아니에요. 편한 자리에 앉아계세요. 이게 저희 일인걸요!”

나 - (혼자만 앉아있기 뻘쭘한데.. 편한 자리는 어디일까?)


너무 중심도 아니면서 사이드도 아닌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스태프들은 분주했고 가만히 앉아 있는

나는 또 괜스레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부담스러워할까 봐 그러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어느덧 약속시간이 되었고 삼삼오오 게스트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준비해 온 음식들을 먹으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정보가 담긴 이야기나 자신의 목표, 꿈 이야기와 같은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진지한 대화는 놀러 왔을 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것은

나에게 큰 재미이며 취미였다.

나만의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중 한 명이 내 옆으로 와 말을 걸었다.

 

스태프 - “왜 대화에 끼지 못해요?”

나 - “(헉) 제가 겉도는 것처럼 보였나요? 나름 즐기고 있는데...”

스태프 - “여행 왔으면 신나게 놀아야죠! mbti 유형이 어떻게 되세요?”

나 - “(안 해봤다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지 몰라) 오래전에 해봐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하. 하."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건가?
나 때문에 이 자리 분위기가 더 어색해지는 걸까?
나는 왜? 다수가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때 끼지 못하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읽었던 심리책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어렸을 적 거실의 한 벽면은 책장으로 장식되었고

내가 까치발 들고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책들로 가득했다.

상담사였던 어머니의 심리책들은 책장 속에 가득했고

내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었으며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분야가 되었다.


“엄마! 왜 심리책에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강조해?”

엄마는 어린 내가 이해할 수 있게끔 쉬운 말로 설명해 주셨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상대로 하여금 존중받는 느낌을 들게 한단다.

사람은 귀가 두 개이고 입이 하나인 이유가 있다는 말도 있잖니.

그만큼 이야기는 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지.”

“그럼 나도 엄마처럼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될래!”


그렇게 어린 시절의 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다.

상담과 대화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 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이

옳은 행동이라 생각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는 아꼈다.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내 주장과 감정전달은 점점 약해졌고

나보다는 타인을 더 신경 쓰게 되었다.

편한 친구와 함께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친구 - “지호야 PC방 갈까?”

나 - “좋아!”

친구 - “노래방은?”

나 - “그것도 좋아!(실은... 노래방은 싫어)

친구 - “그냥 얘들 불러서 총싸움할래?”

나 - “그럴까? 나는 PC방도, 노래방도, 총싸움도 다 상관없어!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자!”

친구 - “....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나만 말해주면 안 돼?”

이때에도 나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민하였다.

나 - “(K는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보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K야 나 오늘따라 PC방이 가고 싶어!”

친구 - “그럴까? 지호야 왠지 너는 나랑 잘 통하는 것 같아!”


어느샌가 상대방이 나에게 원할 것 같은 모습을 상상하며
나 스스로 그 모습에 나를 맞추고 있었다.


심리책을 읽다 보면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을 강조하는 구절이 많다.

다른 사람을 나의 잣대에 맞추어 판단하면 안 되고

각자가 정의하는 옳음이라는 기준이

다르기에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게 되었다.

누군가 유난히 화나보이 거나 슬퍼 보이며 이상행동을 하여도

내가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였고

저 사람은 원래 이런 사람이구나 하며 의문 없이 받아들였다.

  


그저 상대 이야기를 들어주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행동은

어느 순간 나와 상대방 사이에 보이지 않은

큰 벽을 만들어 놓아 애매한 관계를 만들어 놓았다.

상대에 대해 잘 모르면서 상대에 대해 알고있다는 착각과함께

마치 가까운 것 같으면서 가깝지 않은 그러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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