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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지호 Jun 25. 2023

나는 왜? 집에서 다시 생각할까?


"이쪽은 내 여자친구야, 이쪽은 내 동기고 이쪽은 후배들."

"안녕하세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뵈니까 더 반갑네요! 저희 오빠 때문에 고생 많으시죠?”

오늘따라 더 여유로워 보이는 선배님과,

어딘가 강단 있어 보이는 여자친구분이 내 앞에 앉아계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선배님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이미 나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지 오래다.


나는 평소 낯가리는 성격이며 특히 여자에게는 더욱 심한 편이다.
사회 초년생일 때는 사회 경험이 적기에 이해할 수 있겠지만, 내 나이 스물일곱, 해병대 대위이자 프로복싱 선수에 얼굴도 험악하게(!) 생긴 편.
어디에서 부끄럼 타거나 소심한 모습을 보이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약속장소에 가기 전, 다시 한번 낯가리거나 주눅 들지 않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지호야 너는 더 이상 예전의 네가 아니야.

기 센 해병대원들 수백 명 앞에서 지휘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며 잘해왔었잖아.

열심히 운동해 남들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복싱 시합링 위에도 올라가 상대선수와 주먹도 주고받았잖아. 너는 꿀릴 것 없어. 남들보다 다양한 경험 해왔고 그동안 성장했어! 당당하게 보여주자!”




(집으로 복귀 후)

.

.

.


“제기랄.. 오늘도 똑같군"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실수한 것은 없었는지

리플레이한다.
첫 장면부터 시작해 본다.
눈은 못 마주쳤지만 인사는 그럭저럭 무난하게 했고..

말 실수한 것도 없었고.. 그런데 무슨 말을 했었지?

나는 이야기도 없이 음식만 먹었던 것 같네..
선배님께서 기껏 만들어주셨던 자리인데
왜 또 멍청하게 눈도 못 마주치고 음식만 먹었을까?
스스로 충분히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전과 같구나..
예전과 다른 모습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자신에게 점점 더 화가 나고 우울해진다.
그러다 갑자기 한 대화 장면이 생각난다.


선배 - 주변에 좋은 사람 있으면 우리 지호 소개해줘.

 내 후배 담배도 안 피고 술 안 좋아하고 운동 좋아하고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하는 멋있는 친구야!

여자 친구분 - 혹시 사진 보내주실 수 있어요?

선배 - 안돼! 나는 우리 후배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사람한테는 소개해 줄 수 없어!

나 - 하.. 하.. 하

여자 친구분 - 아니 그러면 어떻게 해?

선배 - 우선 무조건 자리 만들어봐! 지호는 만나서 매력을 보여줘야 하는 스타일이야.

지호야 너는 나중에 소개팅할 때 일단 빠른 시일 내로 만나고 봐라!

나 - 하.. 하.. 하


저 순간은 웃고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선배님께서는

나의 외모로는 이성의 호감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그렇게 외적으로 볼품없이 생겼을까?

그렇구나.. 나는 외적으로 부정적인 인상을 주고 시작하는구나.



오늘도 침대에 누워 나 스스로를 정의한다.
나는 낯가림이 심하고, 자신감 없고, 쑥스럼 많이 타고,
재미없고 볼품없게 생긴 사람이다라고.



당시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다음날 출근하여 선배님에게 솔직하게 물었다.


나 - 선배님 저 궁금한데 진짜 제가 그렇게 볼품없이 생겼습니까?

선배 - 갑자기 왜? 외모로 승부할 수 있는 편은 아니지 ㅋㅋ

나 - 저 솔직히 소개팅할 때 먼저 사진 보내지 말라는 이야기 듣고 그 정도로 부족한가 생각 많이 했습니다.

선배 - 지호야 내가 말한 의미는 너는 외적만 봤을 때 주는 이미지보다 실제로 겪어보며 느끼는 이미지가 훨씬 좋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한 거야. 솔직히 외모는 취향을 타지만 내가 겪은 너의 성격과 태도는 호불호 갈리지 않고 모두에게 긍정의 이미지를 준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나는 내 여동생을 소개해주고 싶어서 동생이랑 엄마한테도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중인데?

나 -  그러면 완전 대놓고 마이너스 영향 주는 볼폼없다는 소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선배 - 솔직히 잘생겼다고는 말 못 하고 취향 탄다 그 정도야 ㅋㅋ

나 - 그거면 됐습니다! 하마터면 평생 마음에 담아둘 뻔했습니다.





그렇다.

나를 갉아먹은 범인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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