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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지호 Aug 22. 2023

눈치 보다 보니, 착한 사람이 됐네요.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수련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렸을 적 수련회 프로그램에는 빠져서는 안 되는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촛불을 켜고 부모님 관련 영상을 보며 손 편지 쓰는 시간이며 
두 번째는 캠프파이어 시간, 
세 번째는 조별 활동을 마무리하고 롤링페이퍼를 작성하는 시간이다. 
눈치 보는 나로서는 이 3가지 활동 모두 작은 추억들이 있다.

 

주변 눈치를 심각하게 살피는 나는 부모님 관련 영상을 

보며 편지 쓰는 시간을 가질 때에도 어김없이 눈치를 살폈었다. 

주변에서 몇몇의 친구들이 울 때 

나도 여기서 울지 않으면 마치 불효자로 여기지 않을까 

분위기에 맞춰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가 몇몇 친구들이 이런 영상 보고 우냐는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흐르던 눈물을 삼키며 울지 않은 척했었다. 

캠프파이어 시간에는 벌칙에 걸리지 않기 위하여, 

혹여나 사회자 눈에 띄어 장기자랑 같은 것을 시키지는 않을지 

마음 졸이며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었다.

 

롤링페이퍼 작성 시간에는 수련회의 특수한 감성에 젖어 

서로에게 느꼈던 생각들을 조용히 페이퍼에 써나갔다. 

나는 친구들의 페이퍼에 색다른 모습을 보게 되어서 좋았으며 

앞으로 더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적었었다. 

나의 페이퍼가 다시 되돌아오기까지 

친구들의 롤링페이퍼에 글들을 써 내려갔다. 

나의 롤링페이퍼가 돌아왔고 설레는 마음으로 빠르게 읽어본다. 

착한 지호에게 / 넌 정말 착해 / 너 천사야? / 나도 너처럼 착해지고 싶어. 

나의 내용은 착하다는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옆 친구의 롤링페이퍼를 흘깃 훔쳐본다. 

수업시간 방귀를 뀌지 마라는 이야기부터 

노래 부를 때 멋있었다고, 짝꿍 하고 싶었다는 등 

여러 상황들에 대한 좋았던 점, 싫었던 점, 재밌었던 점 

여러 실제 있었던 추억들의 내용들로 가득찼다.

다시 한번 나의 롤링 페이퍼를 읽어본다.

 

“착하다.” 마치 할 말이 없어서 좋은 말을 하나 지어 낸 것만 같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나는 친구들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을까? 
나와의 추억은 없는 것일까? 
나에 대해 할 말은 착하다는 것이 끝인 걸까?

이때부터였을까 착하다는 말이 의심되기 시작한 건...


시간이 흘렀다. 어김없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


“아 진짜? 하. 하. 하”

나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있다. 

아니 웃는 척 흉내 내고 있다.

나의 표현은 늘 상대의 표정을 따라 흉내 내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면 상대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답답했던, 재밌었던, 짜증 났던 자신의 감정들을 쏟아낸다.

이런 나의 반응에 대해 상대는 항상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나에게 감사의 표현을 건넨다.


나의 대화 방법은 상대의 말하는 템포에 맞추어 

같이 호흡하며 표정을 흉내 내고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내용보다도 

상대의 표정과 현 상대의 감정 상태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야기하는 상대를 살피며 조용히 생각했다. 

상대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같이 화를 내 달라는 건가? 위로를 해달라는 건가? 

조언을 구하는 건가? 선택을 해달라는 건가? 

그렇게 나는 나의 생각이 아닌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상대의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따라서 내뱉었다.

그러면 내 대화 고객님 아니 상대는 언제나 만족스러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상대 : “지호야 너는 정말 착한 것 같아”

나 : “착하다고? 내가? 왜?”

상대 :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언제나 내 말에 호응해 주며 내편이 돼주잖아.”

이러한 나의 대화 방법을 보고 사람들은 나를'착하다'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착함'은 나의 진심 어린 행동이 아닌 
상대를 만족시키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상대의 이야기에 반대하는 일 없이, 

원하는 것을 직접 찾아 동조해 주는 

나의 상대 맞춤형 서비스였다.


내가 정말 착한 사람일까?

나는 그저 주변 눈치를 보며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것뿐인데..


착하다는 표현은 나를 옥매였고, 나는 착한 아이 증후군처럼 
다른 사람이 예측할 수 있는 착한 행동만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착하다'는 인식 속에서 자꾸만 내 본모습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는 상대의 감정을 이해했다고 믿었지만, 사실 상대의 모습을 흉내 낸 것이었다.
나의 눈치 보는 모습이 착함으로 둔갑되었고, 
나는 그 가짜 착함을 지키려 끊임없이 연기해야 했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상대와 이야기하며, 

상대에게 웃음 짓고 맞춰주고 있는 나를 보며,

내가 좋아하지 않는 상대가 

나를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이 행동은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좋지 못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모두에게 착하다는 평판을 얻었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이었다.

이제 나는 단순히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감정의 흉내가 아닌

나의 생각을 보여주어 나와 상대 모두에게 진실된 사람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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