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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Oct 16. 2024

연재소설25화 -죽음의 시그널

미스테리 소설 - 성착취 피해자의 연쇄 자살 사건


지난 목요일 밤. 자신을 성착취물 동영상의 피해자라 밝히는 여고생 G양의 글이 SNS에 올라왔습니다. 해당 게시글의 작성자와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연합뉴스에서 단독 보도합니다. 지난 해 가을 인터넷 도박을 처음 접한 G양은 교내 불법 도박 총판 조직에게 일백만원의 도박자금을 빌린 후 매일 원금의 10%를 입금해야 하는 높은 이자로 인해 고통 받았습니다. 이자 연체를 이유로 성착취 동영상을 촬영해 자신들이 알려주는 인터넷 주소로 직접 업로드 하라는 총판 조직의 협박도 수차례 받았습니다.     


피해자 통화 녹취: “썅 개X발년아~ 남의 돈 태워 도박하니 째지게 좋았냐? 재미를 봤으면 몸땡이라도 팔아 갚아야 할 거 아냐! X같은 화냥년. 공개처형 개망신당하기 전에 해결해!”      


G양은 이들을 고소했지만 경찰은 G양이 직접 동영상을 촬영해 업로드 했기 때문에 사이버 성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추가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연합 뉴스가 G양이 다니는 학교의 또다른 제보자를 통해 확인한 사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학교 안에는 불법 대출로 고통받은 추가 피해자가 더 있을 뿐 아니라, 총판조직이 마약 유통에 가담한 정황도 포착되었습니다. 지난 2월, 개학 직전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S양 역시 텔레그램 비밀방에 사생활이 담긴 동영상이 노출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성범죄를 바라보는 대중의 굴절된 시각에 SNS를 통해 일침을 가한 여고생 G양의 호소에 우리 사회는 이제 어떤 답을 마련해야 할까요? 연합뉴스, 김화식입니다.     



일요일 저녁 8시, 프라임 시간대에 선희 사건을 다룬 뉴스가 방송된 후 경찰의 신속한 조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월요일 방과후, 선희와 나는 광화문에 있는 ’채움 스페이스‘에서 김화식 가지님과 2번째 미팅을 가졌다. 창밖으로 청계천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공간대여 회의룸, 선희의 신변 보호를 위한 기자님의 배려였다. 진한 눈썹과 날렵한 턱선이 꽤나 매력적인 김화식 기자님은 시종일관 유쾌모드로 첫만남 때부터 선희의 긴장감을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오늘도 기자님이 준비해둔 연어 덮밥 도시락을 먹는 선희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막상 방송 나가고나니 맘 불편하지? 이제부터는 무조건 잘먹고 잘 자고 잘 견디면 돼. 메이저 언론사들은 물론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는 듣보 언론, 불나방 같은 유튜버들이 어떻게든 선희를 찾아내 인터뷰를 하려 벌 떼처럼 달려들테니 조심, 또 조심하고. 인터뷰 요청 오면 일단 나한테 문자해. 이기는 싸움을 하려면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돼.”

“기자님 덕분에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뉴스 영상도 얼굴 노출 없이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내일쯤 사건 접수 문자 갈거야. SNS 게시글에 뉴스 보도까지. 원투 펀치 맞고 화양경찰서 서장이 사이버 범죄 수사팀 불러다가 푸닥거리 좀 한모양이더라구. 성배? 그 친구 찰진 욕도 아주 베스트였어.”

“저희 아버지가 기자님 별명이 김나이퍼라 하던데 정말 최고세요. 지난번 미팅 때 말씀하신 것처럼 놈들이랑 경찰서 내부에 연결고리가 있을까요?”

“다음번 총알로 쓰려고 킵해둔 은호가 녹화해 온 영상, 그거 보면 냄새가 많이 나지. 놈들은 선수야. 선희에게 직접 업도르를 지시한건 꼼수를 쓴거야. 사이버 성범죄도 성폭력처벌법을 적용받느냐, 단순히 정보통신망법 음란물 유포죄에 해당하느냐에 따라 처벌 강도가 180도 달라져. 당연히 성폭력처벌법이 법정형이 높고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같은 꼬리표가 남지만, 음란물 유포죄는 벌금형으로 끝나버리지. n번방, 박사방 사건 때도 주모자 몇 명 빼고 대부분 벌금형 처벌로 끝났어. 대한민국 성범죄는 솜방망이 판결을 먹고 자란 셈이지. 이걸 코칭하는 전문가가 놈들에게 있다는 뜻이야. 선희랑 은호는 나와 친구찾기 어플을 깔아두는게 좋겠어. 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지난 번 제가 보여드린 선정이랑 다슬이 스마트폰 이상한 사진들이요. 연주동팸 여학생 라이브 자살사건. 그 학생 스마트폰 화면 찾아보셨어요? 분명히 같은 사진을 기자님 뉴스 보도에서 봤거든요.”

“확인했어. 그것 때문에 오늘 두 사람 부른거야. 은호 말이 맞더라구. 가편집본 보니까 연주동팸 여학생 스마트폰에 악마 사진 말고 현관장 사진도 있었어. 그걸 보다보니 작년 대전 자사고 기숙사에서 자살한 여학생 취재가 생각나서 밤새 촬영본 파일 찾았더니, 그 여학생 스마트폰에도 똑같은 사진이 있더라구.”


김화식 기자님 노트북 안에 담긴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밤마다 가위눌림 속에 무의식의 장막을 뚫고 날아오르던 검은 날개, 어지러움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도심의 빌딩 사이로 긴 꼬리를 남기며 멀어지던 악마가 갑자기 방향을 선회해 정면으로 돌진해온다. 하늘마저 쪼개버릴듯한 위력적인 날갯짓, 크게 벌린 목구멍에서 끝없이 풀어져 나오는 어둠이 내 영혼을 빨이들일듯한 기세로 달려든다. 빛과 어둠을 기묘하게 모두 담고 있는 얼굴, 마침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놈이 나를 바라본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냉기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분명 어디선가 놈을 본적이 있다!몸서리치는 나의 어깨를 잡으며 선희가 말했다.     


“은호 선배, 괜찮아?”

“어...다슬이가 걱정돼. 이 사진들..결국 죽음의 시그널이쟎아.”

“선정 선배랑 제 사건은 비슷하면서 다르네요. 전 이런 사진들을 받아본적이 없거든요.”

“나도 그게 궁금해. 일단 은호한테 과제를 좀 주려구. 고3이라 많이 바쁘겠지만 시간날 때 텔레그램 비밀채팅방 모니터링을 해서 자사고 이 여학생 영상도 혹시 유포된게 있는지 찾아봐줘. 나도 방송국에 조사팀을 꾸려서 최근 자살사건 중에 비슷한 케이스가 더 있는지 알아볼게.”

“저도 같이 할게요.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기지 않게 뭐든 돕고 싶어요.”

“선희는 안돼. 텔레그램 들여다보는게 생지옥일거야.”

“걱정마세요. 가진게 깡밖에 없어요.”

“지금은 악에 받혀 상처난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겠지만, 긴 싸움에서 이기려면 트라우마 관리와 치료가 가장 중요해. 3년전에 N번방 보도 때 깨달은거야. 연일 쏟아지는 뉴스 속에 정작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은 묻히더라구. 선희는 좋은 심리상담사 연결해 줄테니 꼭 상담부터 받아. 참, 유의할건 모니터링한 영상은 절대 타인에게 보여주거나 전송하면 안돼. 그것도 법에 걸리는 일이야. 나한테만 알려줘.”          



여름 방학을 앞둔 학교는 빠르게 학폭위를 개최했다. 영진이와 성배는 동영상을 직접 업로드한 선희가 자신들을 모함한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돈이 필요한 선희가 알바로 사이트에 영상을 올리고 금전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불법대출에 대해서도 도박하다 급전이 필요한 친구에게 대출 경로를 알려 준 것 뿐이고, 중간에서 자신들이 취한 이득은 전혀 없다는 것이 철면피 같은 놈들의 주장이었다. 시종일관 입꼬리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이런 자리가 시덥지 않다는 표정의 영진이와 성배는 움츠림 하나 없이 너무도 당당해 보였다.

오후 늦게 찜찜한 학폭 심의를 마치고 나왔을 때, 하늘은 잿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기자들과 유튜버들 때문에 검은 모자에 커다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선희는 힘이 빠진 것처럼 아무 말도 없었다. 선희와 구관 뒤쪽 후문을 향해 걷는데 ’툭툭‘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으며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를 쫄딱 맞고 후문 앞에 엉거주춤 서있을 때, 요란한 굉음의 노란색 스포츠카가 급정거하더니 조수석 창문이 열렸다. 운전석에 앉은 네이비 정장 차림의 말쑥한 남자가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은호, 비도 오는데 어디까지 가? 숙녀 분도 있는데 태워줄까?”     


익숙한 중저음에 한결 부드러움이 더해진 목소리. 진회색 원단에 연초록 격자무늬 패턴, 선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황금빛 로고가 은은한 고급 넥타이. 유난히 하얗던 한도영의 얼굴이 귀티가 흐르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말없이 있을 때는 괜찮다가, 입을 열면 이따금 눈을 깜박이는 틱증상이 아니면 녀석을 못알아볼뻔 했다. 창문 너머로 슬쩍 바라본 뒷자리엔 영진이와 성배가 빙글빙글 웃으며 선희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사양할게. 시험 끝난 금요일 밤에도 학교 앞에서 이 스포츠카 봤는데 도영이 너였구나.”

“그랬어? 사업 때문에 워낙 바빠서 말이야. 여하튼 반갑다, 은호야.”

“무슨 사업? 강영진이랑 하는 불법 대부업?”

“은호 넌 참 변한게 없어. 할 말은 하고 마는 성격,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거 알지?”     


도영이가 차에서 내리더니 트렁크에서 장우산을 꺼내 펼치더니 내게 건넸다.


“안그래도 지훈이랑 같이 보고 싶어 연락해뒀어. 워낙 일에 치이다보니 옛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 특히 은호 너랑 지훈이, 우리 환상의 한팀이었쟎아. 한번 보자.”


운전석으로 돌아간 도영이는 출발 전, 여유있는 표정으로 선희를 응시했다. 행동이나 말투 모든 것이 과장도 모자람도 없이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자신감 넘치는 녀석.  강영진, 길성배와는 분명 결이 다른, 만만치 않은 상대다.      



소나기인줄 알았던 비는 밤늦게까지 무섭게 퍼부었다. 스마트폰 쇼케이스 뒤편의 버섯 모양 장스텐드만을 켜두고 도영이는 매장 입구에 설치된 암막 블라인드를 바닥까지 완전히 내렸다. 영진이와 성배는 학교라는 장기판의 말, 뒤에서 판을 움직이는게 내 예상대로 한도영이라면 한번은 놈을 만나야 할 것 같았다. 테이블 위에는 스테이크와 족발, 맥주와 포도주가 그럴듯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화이트톤에 천정과 데스크에 골드로 포인트를 준 휴대폰 매장은 꽤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너희들 온다고 해서 딴에는 신경 좀 썼는데 메뉴가 마음에 들지 모르겠어. 지훈이랑은 보육원에서 한솥밥 먹던 사이라 족발 사왔어. 생일 때 치킨보다 족발을 더 좋아했거든, 우리 지훈이가.”     


’우리‘라는 단어에 살짝 악센트를 주며 도영이가 지훈이 밑접시에 족발을 올려주었다. 항상 그랬다, 셋이 모이면 이상하게 겉도는 조합. 표나지 않게 지훈이를 챙기면서 은근히 나를 살피는 도영이가 예전에도 불편했다.     


“지훈이 실력에 게임으로 끝장 볼 줄 알았더니 배달하고 있어서 좀 놀랬어. ㅎㅎ.”

“놀면 뭐해. 많이 걸으니까 건강에도 좋고 나름 열심히 살고 있으니 걱정마.ㅎㅎ.”

“보자고 한 이유가 뭐야? 우리가 지금 화기애애할 때가 아니쟎아?”

“은호는 고3이라 더 까칠한가? 너희들 보기엔 별거 아닐지 몰라도 보육원 출신인 내가 사업 시작하기까지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어. 어린 나이에 돈 좀 모았지만 그럴수록 너희들이 그립더라구. 지훈이랑 은호면 더 믿고 일할 수 있을텐데 이런 생각도 들고.”

“한도영 니 절친은 강영진이지. 개소리 집어 치워. 불법 도박 총판이랑 마약팔이로 번드르르한 매장 운영중인거야?”

“내가 사랑하는 옛친구들이 정말 안타까워 그래. 선희라는 애 사건 그만 손 떼. 아무리 들쑤셔봐도 별거 없어. 영진이말대로 돈 빌려준 대출업자가 성화를 부리니까 빨리 입금하라고 전달한거 뿐이야. 알다시피 텔레그램 암호화폐 거래 내역은 찾기 힘들고. 동영상은 그 아이가 찍어 올린거 경찰도 알고 있고. 그 애가 난리굿을 쳐도 끽해야 학폭 8호 강제 전학 처분 정도일걸?. 강전이라면 영진이나 성배는 오히려 땡큐고, 경찰도 한두번 조사한다고 부르더니 꺼리가 없으니 별다른 액션도 없다니까. ㅎㅎ  

“아무것도 없지 않던데. 2월에 죽은 우리 학교 3학년, 주선정. 니들이랑 관련있지?”

“음..선정이가 누구더라?”     


도영이는 투명한 크리스탈 잔에 포도주를 반 정도 따르더니, 천천히 잔을 흔들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노크라도 하는 것처럼, ’툭툭‘ 굵은 빗방울이 굳게 닫힌 유리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곧이어 빗소리의 적막함을 뚫고 고막을 찢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려왔다. 도영이 손에서 미끄러진 크리스탈 잔이 매장 대리석 바닥에 산산조각이 났다. 검붉은 포도주가 잔물결을 이루며 하얀 바닥을 서서히 물들이고 있다. 하얀 얼굴에 싸늘한 미소를 띄고, 평소보다 더 심하게 두 눈을 깜박이며 도영이가 말했다.     


“이렇게 죽어버린 애? 그 친구 이야기가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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