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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Oct 23. 2024

연재소설 26화 -유령의 메시지 2

미스테리 연재소설 - 선정이에게서 도착한 두번째 메시지


“선정이라는 아이랑 무슨 사이? 왜 궁금하지?”

“지금 지옥 속에 있으니까, 그 아이가.”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애들이 더 미치게 빠지는 게 도박이야. 평생 지는 게임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다 끝난 일 괜히 이리저리 들쑤시다 같이 지옥에 빠질 수 있다는 걸 모르겠어?” 위험한 게임은 그만하지. 펜타닐에 쩔어 다 죽게 생긴 정태경, 영진이가 걱정돼서 혼 좀 낸 동영상을 경찰에 제출했다지? 하는 일이 해커야, 파파라치야?”

“은호 말대로 경찰에 내통자가 있구나. 추가자료 더 가져오라고 개소리했다는 형사? 그런다고 니들 벌인 일이 덮어질 거로 생각해?”

“지훈이 넌 항상 내 편이었는데, 기분 진짜 별로네. 앞서가지 마. 사업하며 알게 된 인맥들 기름칠이나 가끔 하는 정도니까. 은호, 파파라치 놀이 그게 끝이 아니지? 뭘 알고 있든, 뭘 하려고 했든, 이제부터 아무것도 하지 마. 잘 생각해. 진짜 지켜야 할 게 뭔지.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랑 둘이잖아. 옛친구라고 커버치는거 여기까지야.”

“도움 같은 거 청한 적 없는데? 그 아이 죽음, 너희들이 벌인 일인지나 말해.”

“팩트를 말해줄게. 아무리 애써도 왜인지, 누구인지, 알 수도, 찾을 수도 없을 거야. 그러니까 선 넘지 마. 지옥에 있는 아이 건지려다 지옥에 빠진다는 말, 농담 아냐.”

“한도영. 엄청 쫄리나 본데 나도, 은호도 건드리지 마. 그리고 우린 앞으로 다시 볼 일 없었으면 좋겠다. 한때 친구로 생각했던 기억, 지울게.”     


지훈이의 마지막 한마디에 도영이의 눈빛이 출렁였다. 허탈함과 상실감을 숨길 수 없는 녀석의 표정. 분명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때 한도영의 충고에 더 귀 기울여야 했을까?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지켜야 할 세상을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상처받은 한 마리 짐승처럼 웅크린 채 와인 잔을 기울이는 한도영을 남겨두고, 지훈이와 나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도영의 말대로 경찰의 조사는 미온적이었다. 그동안 학교를 통제해오던 숨은 권력자가 드러나기라도 한 것처럼, 영진이와 성배는 더 당당하고 꼿꼿한 모습으로 꼬박꼬박 등교를 거르지 않았다. 놈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만이 교사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에 무언의 합의라도 한 것처럼, 선생님들은 침묵을 지켰다. 이 기막힌 현실을 피해 소리 없이 사라져버린 것은 동호였다.

김화식 기자님과 두 번째 미팅을 가진 다음 날, 연주동팸 여학생 자살 사건과 선정이 죽음이 ’연쇄 자살‘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방과 후 동호에게 알려주었다. 한여름, 오후의 지루하고 끈덕진 햇살이 운동장 스탠드 위에 설치된 초록색 가림막의 깨진 틈새를 비집고 새어 들어왔다. 마치 레이저 빔 포인터처럼, 기다란 빛기둥은 내가 꺼내놓은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부숴졌다. 밤하늘을 뒤덮은 악마의 날개 사진을 넘겨볼 때, 동호는 눈이 부신 듯 고개를 돌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죽은 두 여학생에게 공통으로 전송된 기이한 사진들이 죽음의 시그널이라고, 니 동생 다슬이가 걱정되니 협박이 이어지면 꼭 알려야 한다는 나의 설명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녀석의 무단결석이 시작되었다. 지훈이와 내가 아무리 연락을 해도 스마트폰을 끄고 잠수를 타는 동호에겐 답장이 없었다.     


그 사이 선희는 나보다 열심히 텔레그램 비밀방을 헤집고 다녔다. 누가 더 변태인지, 가지고 있는 불법 자료를 채팅방에 올려야 운영자에게 더 깊숙한 모임의 링크를 받을 수 있는 비밀채팅방. 차라리 쓰레기 산을 뒤지는 것이 더 쉬울 것 같은, 멘탈 깨지는 공간에서 작년 자살한 대전 자사고 여학생의 동영상을 가장 먼저 찾아낸 것도 선희였다. 특이한 것은 그 학생의 경우 실제 영상이 아닌, 진짜처럼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딥페이크 영상이라는 것이었다.

     

-써니가 이 사건 키맨이네. 됐어! 지난번 은호 자료 킵해둔거랑 잘 엮어서 보도하면 엄청난 파괴력이 있을 거야. 완전 빼박 자료라 이번엔 놈들도 꼼짝 못 할걸! 우리 채널, 대표 탐사 프로그램 ’시사 포커스‘에서 다음 주 방송 예정! ㅎㅎ -


김화식 기자님 선희와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사건 자료를 공유하는 채팅방에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리고 여름 방학 전날, 유튜브와 방송에 <시사 포커스 : 학교에 파고든 범죄조직- 도박, 마약, 텔레그램 성 착취, 죽음의 피라미드>라는 제목의 예고편이 뜨기 시작했다. 짧은 러닝타임에, 모자이크로 화면처리를 하고 음성변조도 했지만, 내가 설치해두었던 실내체육관 대기실 카메라에 잡힌 영진이와 성배의 동영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선희가 SNS를 폭파시킨 다음 날 새벽 6시, 선희와 오늘 당장 만나고 싶다는 김화식 기자님의 메시지를 받고 난 뒤 얼마 후 스마트폰에 <녹화 알림>이 메시지가 떴다. 오전 6시 20분, 녹화 중인 영상을 열어보니 그동안 실내체육관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던 영진이가 등장했다! 등교 시간보다 2시간이나 빠른 시간, 긴장감이 가득한 표정의 녀석은 뱀처럼 가늘고 긴 눈으로 샅샅이 대기실을 살피고 있다. 혹시나 거울 뒤에 감춰둔 카메라가 발견되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해 할 때 대기실 문이 열리며 성배가 등장했다. 순간 영진이 눈이 희번덕 돌아가더니, 녀석의 팔에 새겨진 기이한 날개 문신이 마치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휙 지나가면서 ’퍽‘소리와 함께 성배가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오른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성배, 왼쪽 뺨의 지렁이 흉터가 경련이라도 난 것처럼 요란하게 꿈틀거렸다. 영진이보다 나이가 많은 성배가 화를 누르며 꼼짝 못 하는 것 보니 놈들의 서열 관계를 알 수 있었다.     


“나대지 말고 조심했어야지. 동영상은 미친X이 혼자 찍어 올린 것으로 해야 깔끔하댔지? 왜 휘파람 불고 지랄이야. 그리고 싹 벗기고 면상도 까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 얼굴이 안 팔리니까 쌍 X이 저지랄 아냐!”

“잘못했어. 조심할게”

“C 발~ 또라이 년 하나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구!! 개견들 자칫하면 안면 깔 기세야. 차X호, 그 자식이 미친X이랑 같이 고소인 조사 왔다는 거 딱 하나 알려줬다더라.”     


중간에 삐~소리와 함께 방송에 부적절한 쌍욕들이 음 소거 처리되었지만, 경찰과 학교 총판조직의 연관성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동영상. 김화식 기자님이 뉴스보다 탐사 보도에 넣는 것이 파급력이 있겠다고 킵해둔 것이었다. 여기에 연주동 가출팸 자살 사건과 선정이의 죽음, 작년 대전 자사고 여학생 자살 사건까지 엮어 공통으로 이들의 스마트폰에 남아있는 사진들을 통해 의혹을 제시하는 예고편이었다. 유튜브 예고편 조회 수가 실시간으로 굉장히 빠르게 올라갔다. 선희의 SNS 글 게시 이후, 여전히 이 사건에 관심을 잊지 않은 많은 네티즌이 댓글을 남겼다.

     

-와, 개쩐다. 연합뉴스 완전 특종이네.

-써니님이 셀프로 동영상 올려서 디지철 성범죄 아니라더니, 떡하니 협박증거가 있네.

-그럼 연쇄 자살이냐? 저 기괴한 사진들 누가 보낸 거? 소름 돋네.

-연주동팸 가출 여학생도 희생자야? 써니님 아니었음 이 사건 완전 묻힐 뻔했네. 써니 님은 영웅이다..

-역시 견찰이 견찰했네. 수사가 왜 진도 안 나가나 했더니..내부자 뭐냐?     


그날 진짜 수확은 실내체육관에 설치한 가짜 AP 허니팟에 영진이 폰이 걸려든 것이다. 악성코드가 영진이 폰에 실행되었고 생각보다 깨끗한 녀석의 폰에서 증거가 될만한 일부 기록들을 노트북에 옮겨 담을 수 있었다. 그 영상과 자료들을 경찰에 제출하지 않은 것은 해킹 사실을 영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관리하면서 더 큰 증거를 수집하고, 사건의 추이를 살펴 가며 적재적소에 오픈하는 것이 좋겠다는 김화식 기자님의 코치 덕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판단이 옳았다. 아군과 적군이 구분되지 않은 상황, 필요한 순간 패를 열어 대중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상대를 혼란에 빠트리는 전략.       


연합뉴스 탐사 보도 예고편으로 교실은 술렁였지만, 차라리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것이 다행인 것처럼 학교 측은 아무런 공식 입장 없이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 오늘 저녁은 여름 방학을 핑계로 김화식 기자님과 선희를 초대해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기로 했다. 1학기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낸 우리 모두를 위해, 그리고 깔끔하고 신속한 사건 해결을 위해 원 없는 고기 파티로 몸보신을 해주겠다며 아버지가 50만 원 지원금을 쾌척한 것이다. 물론 장보기를 비롯한 음식 준비와 화로 세팅까지 지훈이가 다 알아 해결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지훈이는 이게 바로 피할 길 없는 현금 가스라이팅이라며 그래도 천국의 바비큐를 맛보게 해주겠다고 큰소리쳤다.

 

여름 방학 동안 읽을 책을 몇 권 대출하기 위해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선정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 정말 도박중독이었을까? 김화식 기자님의 생각대로 탐사 보도가 방송되면 이 지루한 게임의 끝이 보일까? 교정 이곳저곳에서 시끄러운 매미 소리는 아득한 배경음처럼 물러나고, 꺼림칙한 주술 같은 한도영의 한마디가 떠나지 않고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왜인지, 누구인지, 알 수도, 찾을 수도 없을 거야. 그러니까 선 넘지 마. 지옥에 있는 아이 건지려다 지옥에 빠진다는 말, 농담 아냐.’     


<해커 활약사>,<인류의 종말은 사이버로부터 온다>. 두 권을 꺼내 도서관 창가 자리 앉아 읽고 있을 때 메시지 알림이 도착했다. 처음처럼 놀랍거나 두렵지 않았다. 어쩌면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이 미로의 시작이 선정이였던 것처럼, 지옥 같은 현실에 실타래를 전해줄 존재도 선정이일 것이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품고 있었다. 선정이에게 도착한 두 번째 메시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화면을 열었다.     



여름방학이구나.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2년 후면 오빠처럼 의대생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어.

나에게 그 여름이 생의 마지막 여름이 될 거라는 것을 알지 못했지.

스터디 카페를 몰래 빠져나와 매미들의 요란스런 합창을 들으며 도서관에서 책을 펼치던 지난여름의 눈부신 오후.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유일한 순간, 항상 너는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서가를 정리하고 있었지. 그래서 혼자 너를 익숙하고 친밀하다 생각했나 봐.     


내 삶의 다음 장이 그레트헨이 되는 스토리일줄은 상상하지 못했어. 뉴스와 인터넷에서 접하는 범죄, 살인, 폭력은 나와는 전혀 다른 삶에 속한 누군가의 이야기라 생각했지. 그런데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 알게 됐어. 그것들은 처음부터 긴밀하게 나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 끔찍한 세계가 바로 ‘나 자체’라는 것을. 버리지 않으면 영원히 나는, 지옥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파우스트에게 전해 줘.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원히 지옥 속에 살게 될 거라고. 그레트헨의 용서 따위는 죄의식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범죄자의 망상일 뿐, 지옥에는 처음부터 ‘용서’란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당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청구기호: 841-ㅁ998ㅅ-          



선정이가 메시지와 함께 보낸 사진은 작년 여름, 도서관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내 뒷모습이었다. 나도 알지 못했다. 이 여름이 선정이가 건너오지 못한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문학책이 꽂혀 있는 서가에서 선정이가 전송한 청구기호를 살폈다. 선정이가 청구기호를 남긴 책, 존 밀턴의 <실낙원>은 문학 코너 5단 책장 중, 4단 왼쪽 구석에 꽂혀 있었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 책 커버의 안까지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흔적이 없었다. 이 책을 읽어 보라는 의미일까? 책을 다시 꽂으려는 순간, 철제 책장 안쪽 4단과 5단 사이의 유격 속에 작고 하얀 물체가 끼어있는 것이 보였다. 책장 안쪽으로 깊숙이 손을 넣어 그것을 끄집어냈다. 화이트 커버가 씌워진 작은 스마트폰. 분명 선정이가 감춰둔 것이 분명하다! 전원 버튼을 눌러보아도 방전된 것인지 켜지지 않았다.


선정이의 스마트폰을 배낭에 넣고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얼른 집에 가서 스마트폰을 켜고 지훈이와 기자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집을 향해 달리던 나의 시간은 언제, 어디서, 끊어진 것일까....  검고 푸른 먼바다를 향해 나는 떠밀려 가고 있다. 멀리서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으로 수십 번 고꾸라졌다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벌써 죽어버린 거야, 차은호? 선 넘으면 지옥 간다고 경고했지? 그게 장난인 줄 알아!”     


누군가 다시 거칠게 내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았다. 까무룩, 다시 내 의식은 깊은 어둠을 향해 떠밀려 간다. 그리고 희미하게 떠오르는 얼굴. 엄마,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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