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산

맺으며

by 정필

나의 시작부터 늘 함께 있었던, 당신의 일생이 수많은 장면이 되어 쏟아진다. 나를 안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던 모습, 생계를 꾸리느라 손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는 모습, 언짢은 일을 만나도 가족들 생각에 참고 털어내는 모습, 퇴근길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려 마트에 들르는 모습, “아빠 왔다.”는 말과 과자를 건네는 모습. 미소 짓는 당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빠가 떠난 지 8년째가 되었다. 글을 쓴다고 아빠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어쩌다가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운 마음 조금, 후회 조금, 보고 싶고 미안한 마음 조금, 온갖 것들이 섞인 글이 되고 말았다.


나는 아빠에게 사랑을 받았다. 나는 그에게 사랑을 주었을까.


부모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딸을 낳아 가족이 되고 보니 알겠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에는 조건이 없다. 설령 조건이 있다 하더라도 자녀의 존재에 관한 것이다. 자녀가 있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를 사랑한다. 아이가 크면서 조금씩 부모의 사랑에도 조건이라는 게 붙긴 하지만, 대체로 부모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이다. 반면에 자녀는 부모에게 조건을 요구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부자 아빠를 원하고, TV에 나오는 아빠를 원하고, 만능맨을 원한다. 자식은 사랑을 그저 받을 뿐이다. 그 자신이 부모가 되어 자녀를 사랑하게 되기 전까지는, 부모가 주었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 내가 사랑이라 생각했던 건 빙산의 일각처럼 극히 일부분이고 단편적인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지금에야 알고 보니 그 아래 거대한 산이 숨겨져 있다.


글을 쓰면서 아빠가 일생동안 베풀어 주신 거대한 사랑의 산을 마음껏 누렸다. 나에게 이런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은 나의 존재만큼이나 커다란 축복이다. 이제 아버지는 없다. 몸도, 정신도 남아있지 않다. 거대한 사랑의 산이었던 아버지는 내 가슴속에만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 고마웠습니다. 말로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익숙치 않아서 못다 한 말이 참 많습니다. 말보다는 주로 글로 접하게 되는 그런 단어들입니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덕분이에요.’

‘자랑스러워요.’


이 말들은 결국 말이 되지 못했지만, 이제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되어 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또 비록 말로 다 전하지 못했어도 당신은 다 아셨으리라 믿어버리려 합니다. 당신께서 ‘예쁜 글씨로 별 내용 없이’ 쓴 편지 속에 담은 마음을 제가 알아볼 것이라 확신하셨던 것처럼요. 이제야 아버지가 메모마다 남기신 글 속에 있는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밥 잘 챙겨 먹어라.’

‘몸 건강히 군생활 해라.’

‘함께 해서 좋았다.’


아버지, 나를 세상에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이라는 한 단어를 27년 동안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도 아버지처럼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고됨이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고, 변함없이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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