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몸하다」, 『저주토끼』, 래빗홀, 2023.
우리는 무엇을 관념화하고, 어떻게 관념화되어 있는가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대부분 사회적으로 형성돼 있는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조부모만 있는 아이는 어쩐지 부모 모두와 함께하는 아이보다 불우할 것 같은 이미지가 이에 해당한다. 어떤 것은 실제로 경험하면서도 현실 대상보다 사회적 이미지로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현실의 엄마는 그렇지 않은데도 왠지 엄마를 생각하면 마냥 헌신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은 여성과 경제적 빈곤층 등의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더 잘 형성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 속의 모순과 그로 인한 문제점은 간과되기 쉽다. 이렇게 형성된 고정관념은 우리 또한 살아가며 자주 마주하게 된다. 작품 「몸하다」 는 우리가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만한, 혹은 그것이 고정관념인지 미처 알지 못했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도처의 고정관념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무려 20일 넘게 지속되는 생리를 경험한다. 대부분의 여성이 경험하는 생리는 5, 6일 지속됨에도 이 여성들에게 유발되는 스트레스와 각종 불편의 주원인이 된다. 이런 것을 20일 넘게 겪고 있는 상황은 그 자체로도 끔찍하며 분명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껴진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비정상적으로 생리가 끝나지 않을 때부터 이때까지 무려 2주간 병원을 못 찾은 이유는 참 안타깝다. “보름째가 되어도 피는 멎지 않았다. 산부인과에 가볼까. 그러나 결혼도 안 한 처녀에게 산부인과는 그렇게 마음 가볍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못 된다.”(93)
산부인과란 “여성의 생식 기능과 연관된 정상 생리 및 질병을 다루는 의학 분야”로, 각종 여성질환이 발생했을 때 내원이 필요한 곳이다. 당장 주인공에게 필요한 곳임에도 주인공은 비정상적인 생리의 불편함과 불안함마저 뒤로 하고 가지 못했다. 전통사회에서 죄악처럼 여기던 것 하나는 미혼 여성의 임신이다. 그 시대의 사고 속에서 미혼 여성은 “절대적으로 순결”해야 했으니, 그들에게 이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근래에 와서도 이 사고는 여전히 남아있다. 주인공의 생각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기반을 두었다고 본다. 작품은 생리가 무려 20일 넘게 지속되는 극적인 상황 속에서 현 사회 풍조에 기반한 여성의 사고를 통해 이런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주인공은 피임약을 먹으라는 처방을 받는다. 의사는 두세 달만 먹으면 정상이 될 거라고 했지만 주인공의 몸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었기에 주인공은 6개월 동안 피임약을 복용하게 된다. 그러고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식을 듣는다. 주인공은 임신해 버렸다. 원인은 피임약이라고 한다. “몸이 정상이 아닐 때 피임약을 그렇게 오래 먹으면 부작용으로 임신이 되는 수가 있어요.”(96) “남용하고 부작용 생긴 건 본인 잘못이죠. 약이란 게 그렇게 맘대로 먹어도 되는 게 아니에요.”(97) 젊은 의사는 주인공을 나무랐다.
이전 피임약 복용을 처방해 주었던 의사의 말을 돌아보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호르몬에 이상이 생겨서 일시적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초음파 결과는 정상으로 보이니까 일단 피임약을 먹어보세요. 3주 먹고 일주일 끊고, 또 3주 먹고 일주일 끊고, 그렇게 두세 달만 하면 정상으로 돌아올 겁니다.”(94) 어디에도 의사가 주인공에게 피임약의 부작용에 관해 설명하고 복용 기간을 준수하라 주의한 부분은 없다.
경구피임약은 밝혀진 부작용만으로도 부정 출혈, 메스꺼움 등부터 혈액순환계의 이상에 따른 고혈압, 비타민 a와 리보플래빈의 결핍 등 까지 신체에 많은 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으며,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인 위험의 소지가 있는 약품이다. 작품은 임신을 막기 위한 약이 도리어 임신을 시켜버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부작용을 야기하는 피임약 복용에 대해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던 의사와, 그 책임을 주인공에게 전가해 버리는 상황을 통해 한 번 더 멈추어 생각하고 사회 문제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또한, 적절한 인과관계없이 하루아침에 미혼의 임산부가 된 주인공의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언젠간 자신에게도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하여 주인공을 마냥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인물에게 공감하여 사고할 기회 역시 제공해 준다.
“그럼 빨리 아이 아빠가 돼줄 사람부터 찾으셔야 해요.”(97) 젊은 의사가 주인공에게 한 유일한 권고 역시 다소 어처구니없다. 이후 정확히 어떤 영향인지는 말해주지 않은 채 어쨌든 아빠를 찾아야 한다는 말에 주인공의 본격적인 수난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아이의 아빠를 찾기 위해 임신하여 불편한 몸을 이끌고, 높은 확률로 파투가 날 것을 알면서도 무려 서른일곱 번이나 맞선자리에 나간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풍조 속에서 선뜻 수락할 남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후 조급해진 주인공의 가족이 신문에 광고를 내버리며 주인공은 황당한 사건들마저 겪게 된다. 전화비조차 없어 긴급메세지로 주인공에게 연락한 남자는 주인공과 자신이 운명임을 주장하며 “자본의 논리는 사랑과 열정 앞에 무력한 것입니다.”(108) 라고 말하고는, 스스로를 “로미오”라고 칭한다. 마치 사회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의 이미지들을 한 데 모아놓은 듯하다. 특히 남자가 몹시 가난하게 묘사되는 것과 자본은 중요하지 않다는 표현은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물질적인 면이 배제된 사랑을 의미하는 듯했다.
그러나 주인공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으며, 주인공은 남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무엇도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랑만을 외는 이 남자에게 주인공이 호감을 느낄 가능성이 있을까. 작품 속 남자의 모습은 다짜고짜 낭만적인 구절을 어설픈 영어로 읽기 시작하는 등 희화화되어 나타난다. 작품은 이런 과장된 묘사를 통해 상황을 더욱 이질적으로 느끼게 만들어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사랑의 형태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도록 하고 이 사랑의 모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두 번째 남자도 만만치 않다. “아니면 아가씨가 나하고 자서 애 뱄다고 동네방네 퍼뜨리고 다니겠단 얘기야. 알아들어? 행실 더러운 여자라고 소문내주시겠다고.”(110) “저기요, 제가 지금 필요한 게 바로 그, 애 아빠거든요…….”(110) 아이 아빠를 구인하는 주인공에게 본인이 아이의 아빠임을 주장하며, 소문나고 싶지 않으면 돈을 달라고 협박하는 모습이다. 도대체 광고를 읽어보긴 한 건지 의문인 이 남자가, 가장 부정적으로 여기는 대상은 문란한 여성이며, 임신한 미혼 여성 또한 이에 해당하는 듯했다. 남자는 주인공도 동일한 사고를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해 이런 터무니없는 협박을 한다고 보았다.
작품은 여기서도, 그 원인이 피임약이 아니었더라도 남자의 협박 대상이 되는 것은 부당하지만, 피임약에 의한 임신이라는 설정을 통해 협박을 더욱 어처구니없고 극적으로 느껴지게 함으로써 “문란한” 여성과 임신한 미혼 여성에 대한 부당한 사회적 질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세 번째 남자는 최소 76세의 노인이다. 이 노인이 주인공에게 연락한 이유는 회사를 물려줄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인에겐 그저 자기 유전자가 물려진 핏줄도, 아니면 단순한 남자 가족도 아닌 핏줄이면서 남자인 아들이 필요했다. 이 노인의 사고는 “전통사회”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꼭 자기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만을 가족으로 취급하는 것을 통해 전통적으로 “혈연”만을 진정한 가족으로 여기며 입양 등으로써 형성된 가족은 “혈연” 가족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버젓이 친딸이 존재함에도 여성이기에 회사를 물려줄 수는 없고 대가 끊겼다는 인식을 통해 전통 사회 전반에 존재했고,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남아선호사상’을 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집 대만 이어주면,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한만 낳아주면 내, 애는 물론 처자도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게 해주리다.”(114) 또한 이 부분에서 여성은 아들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필요하다는 인식을 보여주어 폄하되었던 가족에서 여성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문제를 제시한다. 작품은 이 노인 역시 고령의 노인과 젊은 여성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과 이후 정말로 협박하러 나타난 두 번째 남자를 피해 도망가는 등의 행위로 희화화되는 모습을 통해 가족과 관련된 전통적인 인식 속 부당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만든다.
주인공은 이 세 남자를 만난 후 아이의 아빠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혼자서라도 아이를 낳고 잘 키워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결국 아빠를 구하지 못 한 주인공이 낳은 아기는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거대한 핏덩어리였다. 그마저도 곧 혈액으로 와해되어 버렸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아기 낳고 싶으시면 어떻게든 빨리 애 아빠를 찾으시란 말이에요.”(104) “그러게 애 아빠를 빨리 찾으라고 그랬잖아요. 남성 배우자도 없이 저 혼자 크게 내버려두니까 결국 그렇게 된 거라고요.”(127) 의사가 그렇게나 강조하던 아이의 아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착상되고 태동하던 아기는 아빠의 부재 하나만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아이에겐 엄마와 아빠가 존재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이 관점에서 젊은 의사의 요구는 “정상가족”이 되기엔 한 명이 부족한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기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정상가족”에서 이탈한 형태의 가족은 무언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시선을 받는다. “애 아빠가 임신만 시켜놓고 도망간 모양이지?”(118) “고생이 많겠네, 이렇게 젊고 고운 색시를 두고 왜 도망을 갔을까.”(118) 주인공을 처음 본 아주머니가 오직 신문 기사를 통해 주인공이 아이 아빠를 구하고 있음을 알고는 건넨 위로이다.
이렇듯 “정상가족”이 아니라는 것 하나만으로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불운한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도와줄 가족들도 있었으며 아빠가 없어도 충분히 혼자 아기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었다. 오히려 이전 나타난 3명의 남자의 경우 그들이 아기의 아빠가 되는 것이 주인공과 아기에겐 재앙이었다. 그럼에도 이 중 하나를 만났으면, 어쨌든 아기는 사람으로 태어났을 것이므로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며 받는 “사회적 질타”보다는 차라리 이 남자들을 견디는 고통이 덜했을 거라고 암시하는 듯했다. 이는 “정상가족”에서 벗어난 임신한 미혼 여성을 향한 시선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한다고 보았다.
결국 아기가 불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나 사라져 버린 상황은 이러한 사회적 시선 속에서 아빠의 부재 하나로 소외되고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실태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작품의 전개와 세상으로부터 존재가 거부당하는 아기의 모습을 통해 사회 속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정상가족”의 형태와 “정상가족”에서 이탈한 가족, 특히 임신한 미혼 여성을 향한 시선을 잘 담아내어 읽는 이로 하여금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또한 작품에서는 사회가 바라보는 “모성”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엄마가 되겠다는 분이 자기 아이에 대해서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서 어쩌겠다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지금 배 속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어요. 한 인간이 만들어지고 있단 말이에요.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고요.”(104)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해야지. 애만 바라보고 억척스럽게 사는 거야.”(119) “마음 굳게 먹고 아이만 바라보고 사는 거야. 아이만 바라보고…….”(120) 주인공은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음에도 젊은 의사는 계속해서 주인공에게 더욱 노력해야 함을 경고하며 처음 만난 아주머니는 주인공의 삶의 목표를 태아로 정해주고, 이후에도 아이만을 바라보고 헌신할 것을 권유한다. 이에 주인공도 정말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는지 걱정하게 되며 아주머니의 말대로 아이만을 위한 삶을 살 것을 다짐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모성”의 모습이다.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고 있었든지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본인의 정체성은 묻히고, 오직 아이만이 삶의 전부로써 표현되며 무조건적인 노력과 헌신을 요구받는다. 작품은 이렇게 계속 주인공에게 “모성”이 강요되는 모습을 통해 사회적으로 옳게 여겨지는 “모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에게 이 모든 것을 경고하던 젊은 의사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하다. 젊은 의사는 주인공에게 “정상가족”을 이룰 것을 경고하며 “모성”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런 모습들을 통해 젊은 의사의 존재가 우리 사회를 표상한다고 볼 수 있다. “아이를 뱄으면 당연히 아빠가 있어야 하잖아요?”(97) 사회 속 나타나는 “정상가족”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젊은 의사의 말을 통해 이를 주인공에게 전하며 우리 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임신한 미혼 여성을 바라보는지 나타내었다고 본다.
젊은 의사는 새파란 아이섀도를 두껍게 칠하고 새까만 아이라이너를 덧발라 눈꼬리를 잔뜩 올렸으며 새빨간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모습은 주인공에게 늘 불편함과 공포를 느끼게 하여, 미혼의 상태로 임신한 주인공이 우리 사회에 느끼는 심정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장치로 파악된다. “산부인과에 정기검진받으러 갈 때만 제외하면, 그녀는 차차 안정되었고 만족했다.”(106) 이 부분 또한 주인공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사회적 시선이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작품에서는 여성과 가족 등에 관해 사회가 바람직한 이미지로 제시해 둔 모습들이 나타난다. 어쩌면 우리도 무의식중에 사회로부터 학습하여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는 사고들을 작품의 전개 속에 극단적이거나 희화화된 모습으로 제시하여, 작품은 그것을 읽음으로 하여금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주인공과 같은 약자의 입장에서 갖은 수난을 함께 경험하고 사회와 편견을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여, “일반적”인 이미지 속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 생각하게 하고, 이들에게 공감하고 사회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한다.
“문득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흐느끼다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서럽게 엉엉 소리 내 울었다. 그러나 그것이 안도의 눈물인지, 아이를 잃은 슬픔인지 혹은 다른 무엇 때문인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129)
주인공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아이를 잃은 슬픔도 있었을 것이며 자신이 아빠를 찾아주지 못해 아이를 잃었다는 죄책감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내심 주인공은 걱정했을 것이다. 아이의 아빠 없이 혼자서 아이와 함께 살아갈 미래를, 받게 될 시선들을 말이다. 이제 이런 미래는 더 이상 없으므로 그것에서 오는 안도감도 조금은 느끼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자신의 아이를 잃은 상황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현실은 굉장한 안타까움을 유발한다. 작품은 이것의 가해자가 우리 사회임을 느끼게 한다.
우리 또한 스스로 인지 못 하는 사이 누군가에겐 "젊은 의사"가 되었을 수 있다. 우리는 언제든 주인공이 될 수도, "젊은 의사"가 될 수도 있다.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닫고 그것의 모순을 바로잡을 때 "젊은 의사"도, 그로 인해 고통받는 주인공도 점차 사라질 수 있음을 작품은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과제 목적 : 1학기 전공선택 중간대체과제
제출 시기 : 2024년 4월
거의 처음 썼던 글인지라 이제 보니 여러모로 부끄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도 국문학과란 이런 건가 체감하게 된 첫 과제였어서 뜻깊은 글이기도 합니다.
처음 올린 동일한 단편집의 작품 「흉터」에 대한 과제와 같은 교수님이 진행하시는 수업이었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그 교수님이요.^^ 두 작품을 동시에 썼었는데 또 제일 좋아하는 작가님인 정보라 님의 제일 좋아하는 단편집 『저주토끼』를 다루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