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종종 어떤 물건을 보면 강하게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종류도 다양하다. 어릴 적에 귀여운 인형이었고, 어느 때엔 필기구였고, 최근엔 랜덤 피규어였다. 이성이 멈춘 양 내 삶에 저것이 꼭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얻고 나면 직전까지의 절실함은 간 데 없이 사라진다. 그렇게 내 방 어느 한편에 쌓여 의미 없이, 한 번도 내 시선을 얻지 못 한 채 방치된 것들이 벌써 한 트럭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갖고 싶었을까, 그리고 왜 손에 쥐는 순간 그렇게 쉽게 의미가 사라져 버렸을까. 지금도 내 컴퓨터 옆에는 며칠 전 너무나 행복하게 뽑아온 랜덤 키링이 있다. 그냥 굴러다니는 채로. 어느 날 사라져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물건을 손에 넣는 순간 곧바로 소중함이 사라졌던 건 아니다. 어릴 적 조르고 졸라서 산 곰인형은, 적어도 마트에서 집까지 품 안에 안고 오는 동안은 소중했다. 그때만은 마치 내 세상에 전부 같아서 무엇보다 아껴 주리라 다짐했다. 얼마 전 뽑은 키링도 그렇다. 내가 원하던 캐릭터가 나온 것에 너무 기뻐, 그 아이들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사진도 백 장쯤 찍고 잘 보관하겠다고 비닐까지 알뜰히 챙겨 모셔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식어버린다. 질린 걸까. 그렇지만 질렸다기엔 마음이 조금 다르다. 관심이 점차 사라져 가는 과정도 없이, 한순간에 스위치가 내려가듯 꺼져버렸다.
참 희한하다. 돌아보면 내 모습은 그저 ‘갖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둔 듯했다. 가져서 무엇을 하려고? 갖게 됐다는 행복은 길게 가지 않았다. 비슷한 물건이 없던 것도 아니다. 근데 그 순간엔 뭐랄까, 나는 이걸 가져야 하는 사람 같았다. 이게 있어야 내가 완성되는 기분이다. 소비로, 물건으로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스스로 느끼며, 나를 잠깐 증명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때도 있었다. 정말로 그게 있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때 말이다. 무엇이었든지 전부 허상이었다.
나는 종종 인간관계에서도 그랬다. 나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면, 이상하게 더욱 신경이 쓰였다. 꼭 그 사람의 호감을 얻고 싶었고, 얻어야만 할 것 같았다. 막상 그토록 원하던 관심을 얻고 나면, 그 사람은 금세 여느 친구와 다름없어졌다. 어떤 물건을 절실히 갖고 싶던 순간과 비슷했다. 지금에서야 보니 이때의 마음이야말로 나를 완성하고, 나를 증명하기 위해 마음을 얻고자 했던 듯하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던 거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왜 그랬을까. 사실 최근에 어떤 노력을 해도 변하지 않는 주변인을 보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이렇게, 나는 그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잘 보이려고 하나. 그 뒤로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나를 좋아하든지, 말든지, 내 도리를 다 했으면 됐다고 생각하려 하고 있다. 그러고 나니 이전만큼 나에게 호감을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나도 같이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거야말로 서로에게 자연스럽고 편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기에 덧붙인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 행복과 평온을 사람에게서 찾고자 했다. 마치 어떤 물건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던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이제는 알았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행복이란 내 마음에서 나온다. 아무리 나에게 호의를 보인들 내가 그에 달가워야 행복이며, 나를 불편 해한들 신경 쓰지 않으면 행복이다. 무언가를 통해 나를 증명하고, 마음이 공허해 자꾸만 밖에서 행복을 찾아 헤매는 행위를 멈추어 보자고 오늘도 생각한다.
갖고 싶은 것들은 여전히 생길 것이다. 예쁜 물건도, 멋져 보이는 사람도, 손에 쥐면 더 나은 내가 될 것 같은 순간들도. 다만 이제는 안다. 그것들이 없어도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했고, 사랑받아왔다는 것을.
결국 내가 끝없이 바랐던 건, 무언가를 손에 쥐는 일이 아니라 그걸 쥔 나를 좋아하게 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욕심이 생길 때마다 묻는다. “이걸 갖지 못해도 나는 괜찮을까?” 생각해 보면 늘 대답은 한 가지다. “없어도 괜찮아.” 이제는 그렇게 갖지 못해도 괜찮은 나와 친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