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다니던 아주 오래된 옛날, 우리 집에만 유일하게 컬러텔레비전 있어서 저녁 만화방송시간마다 어깨를 으슥이며 친구들 사이에 군림했다. 그때가 내 인생의 유일한황금기였다. 그러나빛나고 달달한 시간은 오래 머무는 법이 없는지라 중학교조차 진학 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집은 풍비박산 났다. 방이 다섯이나 있던 집에서 쫓겨나 제재소 뒷집으로 이사 가니 눈깔사탕을 몰래 주던 친구들이 다른 텔레비전 앞으로 옮겨갔다. 내 옆엔 그림 그리는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친구 하나가 남았다. 하루종일 나무 켜대는 소음으로 괴롭던 우리 집보다는 조용한 친구의 집에서 노는 시간이 많았다. 친구의 집은 온통 그림으로 도배가 돼 있었고, 가끔 친구의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는 걸 바라보곤 했다. 친구 또한 말수가 적어조용한 시간을 즐기기엔 딱 알맞은 곳이었으나 어느 날 친구가 죽었다. 조용한 죽음이었고 죽음을 알기엔 너무 어렸던 난배웅조차 못했다. 이후 시끄러운 제재소 뒷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렸다.
내게 그림이란 시끄러운 소음을 견뎌내는 시간이며 배웅하지 못한 친구를 그리워하는 치유의 시간이고 떠난 길 위에서 마음이 지칠 때 박카스 한 병 같은 위로로내 곁을 맴돌았다.
체스키에서 만난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 화가이나 어머니의 고향인 체스키를 사랑하여 많은 그림을 남겼다. 한때는 자신의 뮤즈와 체스키에서 평생 머물고자 했으나 외설적이란 이유로 3개월 만에 쫓겨났다. 이후 에곤 실레는 28살에 3000여 점의 드로잉과 300여 점의 그림을 남기고 요절했다.
에곤 실레 미술관 입장 티켓이 그의 그림.
"보헤미아의 숲으로 가고 싶다. 그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찬찬히 바라보며, 어둑한 곳에서 입에 물을 머금고 하늘이 내려준 천연의 공기를 마시며 이끼 낀 나무를 바라본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살아있기 때문이다. 어린 자작나무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볕을 쬐며, 푸른빛과 초록빛에 물든 계곡의 차분한 오후를 즐기고 싶다."
그가 사랑한 체스키를 걸으며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마치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구절처럼이나 차분하고 고요한 길이다.
살아있는 자연은 영험한 예술을 남기는 법이니 보헤미안의 숲을 갈망했을 거라며 티끌만큼이라도 전염되길 바라며 그의 발자국을 따라 더 가까이 다가간다.
여긴 엄마를 위한 공간이니 하늘인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차 한 잔, 나 혼자 에곤 실레를 만난다. 그리고 시간여행자의 도시 체스키에서 오래전 그 애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