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떠날 프라하에서 가장 길게 오래 머물렀던 곳이 프라하 성이다. 비투스 성당의 스테인 글라스에서 잠시 천상계에 머문 듯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휩싸였다. 아름다움이란 비경을 지키기 위해선 비밀이 있기 마련인데 3톤의 은으로 장식된 얀 네포 무츠키 신부가 살짝 귀띔해준 비밀은, 인간계로 회귀하는 스위치가 입을 여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왕비의 고해신부였던 얀 네포 무츠키 신부는 왕비의 불륜을 의심한 왕으로부터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밝히라는 요구를 거부하여 블타강에 던져지는 죽음을 당한 이후 체코 사람들에게 성인으로 불리고 있으니 나 역시 프라하 성의 아름다운 비밀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겠다.
바람이 저절로 떠밀어 발걸음 가벼운 시월의 날에 체코를 꿈꾸던 삶이 드디어 현실이 됐고, 프라하 성에서 목이 긴 그녀와 마주하고 있으니 황금보다 귀한 소원성취를 이뤄낸 여자가 뭘 더 바라겠어.
하늘이 낭창거리며 기댈 어깨를 내어주는 오후 세시쯤이었을게다. 프라하성의난간에서 햇빛을 즐기던 중 하늘이가 질문을 던진다.
프라하 도시산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클레멘티움! 클레멘티움을 보기 위해서는 300크루나의 가이드 비용을 지불하고 관람 신청을 해야 한다.
우리의 가이드는 싸늘하고 도도한 매력을 지닌 이십 대 체코 아가씨로 이지적인 그녀가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설명해 주는 역사적 고찰보다 다들 아름다운 그녀에게 몰입했다. 아름다운 여자는 천 년의 시간쯤은 가벼이 이겨낼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지켜보는 시선은 나름 즐길 만했으며 시간의 경계를 허무는 과학적 증거를 허용치 이상 주입시켜 준 클레멘티움에서 지적충전을 한 덕이라 그랬을까. 하늘이도 클레멘티움!
일몰의 시간, 프라하 거리를 걷는다. 엽서 같은 풍경이 쉼 없이 펼쳐져 있는 길 위에 그림자까지 따라 걷는 참인데 어디선가 음악이 흐른다. 존 레넌의 이메진이다. 존레넌 벽화 거리에서 누군가가 먼저 부르고 있던 이메진을 낮으막하게 따라 부르며 비밀의 언약을 깨뜨린다.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