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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숙 Jun 27. 2024

프라하엔 비엔나커피가 없어

2. 체코 프라하(2)

아침이 되니 프라하의 길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프라하의 봄을 불러온 바츨라프 광장으로 향하는 아침이다. 우리 모녀 외에도 삼삼오오 걷는 일행들이 모두 한국 처자들이라선지 묘한 동지애를 느끼며 걷는 아침 산책길이 특별하다.


내 대신 연인들의 도시, 프라하에서 비엔나커피를 마셔달란 친구의 부탁을 들어줄 요량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바츨라프 광장을 찬찬히 둘러보았으나 스타벅스, 버거킹, 맥도널드 등 체인점으로 함락된 광장에서  비엔나커피를 찾을 수가 없다. 책방 옆 paul이란 로컬 카페살롱에서 비엔나커피 대신 에스프레소 한 잔! 갓 구워낸 황홀한 크루아상에 곁들인 커피가 제대로 유혹하니 쌀쌀한 길 위에 얼은 마음까지 녹는다. 에스프레소 한 잔 더!


엄마! 엄마가 마시는 커피, 나도 마시고 싶어.

커피는 어른만 마실 수 있는 건데 하늘이도 살짝 어른의 맛을 볼래?

으~악~ 너무 써! 봄에 수수꽃다리 연두이파리 는 맛이야.

그 쓴 맛이 사랑의 맛이란다. 사랑의 쓴 맛을 맛본 사람만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거야.

 

어린아이였던 하늘인 이미 어려운 커피를 정복하고 엄마와 함께 커피를 음미하는 사이가 됐다. 멀리 떠나온 체코 프라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함께 발품 팔며 나눠마시는 사이, 어른이 된 거다.



화약탑과 시민회관은 이름표를 보지 않고서도 금세 알아차릴 있다. 정말 까만 재를 뒤집어쓴 듯 새까만 화약탑과 요정의 도움으로 변신한 신데렐라처럼 예쁜 시민회관이다. 미녀와 야수가 나란히 있으니 장점과 단점이 더욱 도드라진 모양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하는 시민회관 입장이 우리 앞에서 끊겼다. 살도 넘은 여자가 좀처럼 속을 보이기 싫다고 앙탈이니 빨리 포기하고, 전망대 입장료 2인 200 코루나(2018년 기준)지불하고 화약탑을 오른다. 좁고 가파른 계단 전망대에선 누구나 눈동자가 커지고 감탄사가 쏟아진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닿는 곳마다 빨강치마 입은 집시여인들이 플라멩코를 추는 강렬하게 아름답다. 이름은 빨강이라고 저마다 소리치는 파란 하늘 아래 붉은 지붕들이 펼쳐져있다. 전망대는 좁고 사람들은 많아서 어깨가 부딪치기 마련인데 누구 하나 얼굴 붉히지 않는다. 이미 빨강이 넘쳐나서 얼굴 붉힐 필요가 없는 거겠지.



체코엔 천 개의 탑이 있다더니 사방이 탑이다. 저 탑은 뭐지? 싶어 열심히 가봤더니 레스토랑이었다.



열한 시 정각이 되면서부터 구시청 청사 시계탑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프라하의 핫한 볼거리 시계탑은 육백 살 훌쩍 넘었으나 청년 같은 모습이다. 프라하에선 백 살 쯤은 나이로 안 치니 내 나이도 청춘이 된다. 그렇다면 캐리어에 넣어놨던 발랄을 잠시 꺼내볼까? 유명하단 굴뚝빵을 오물거리며 발랄하게 쏘다니는 아침 산책의 정점은 시계탑 정면돌파였으나 내 발랄한 발걸음은 금세 막혀 삐딱한 측면에서 겨우 바라봐야만 했다. 파도처럼 몰려드는 사람무리에 갇힌 시계탑의 유명세를 직관한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수수꽃다리 연두이파리 같은 사랑의 쓴맛을 기억해 내며 카페 폴에서 내가 마신 건 쓰디쓴 에스프레소 두 잔이 아니라 프라하 높은 하늘에 뿌려진 찬란한 감탄사, 부러운 탄식이 아니었을까. 무채색 옷을 입고 시계탑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시나브로 시간의 향기와 색깔에 물드는 현장을 볼 수 있었던 것 또한 기막힌 축복이었을 거야. 육백 년 넘는 세월, 지치지 않는 초침의 걸음을 마지막까지 기억하라는 귓속말도 잊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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