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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볕이고 걸은 애틀랜타 벨트라인

은하수할머니가 그리는 애틀랜타이야기/다운타운 벨트라인

by 동숙

상큼 발랄한 은하수는 한번 꽂히면 하루종일 전력질주를 해요. 오늘 은하수는 '다운타운'에 꽂혀서 이른 아침부터 이층 계단에 매트를 갈아놓고 일층까지 지그재그로 쪼르르 미끄러지며 '다운타운'을 불러 젖힙니다. 우당탕탕과 다운타운이 누가 더 시끄러운지 겨루는 통에 결국 백기투항 할 수밖에 없었죠. 은하수가 부르는 '다운타운'의 속말은 '나, 다운타운에 데려 가'거든요. 천장의 실링팬조차 파르르 질색하다가 다운타운 가자, 하늘이 소리를 듣고서야 평정심을 찾네요.


엄마가 된다는 건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거라더니 딸아이와 은하수는 막상막하예요. 딸 이기는 엄마가 될 수 없을 때마다 '네 마음대로 해'란 의미의 확인도장처럼 '그래, 너도 너를 꼭 닮은 딸아이 낳아봐라.' 한 마디 쿨하게 던졌던 엄마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 셈이죠. 이렇게나 말의 힘이 어마무시하단 걸 은하수를 보고 알았잖아요. 자신의 문신 같은 은하수를 볼 때마다 엄마 때문이야, 눈 흘기는 딸에게 엄마도 질 수 없어 한 마디 하지요. 엄마 덕분이지!


은하수는 흥부자톤으로 다운타운을 부르고, 할미는 무진이가 부르는 평정심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길, 극과 극은 그렇게도 멀었고 그렇게도 가까워 결국 뜨거운 정열을 잉태하더니 저 닮은 뜨거운 절규를 토해내느라 온통 뜨거운 길이에요.



애틀랜타의 핫플, 폰즈시티마켓에 블루카를 주차시키고, 벨트라인을 걸어 피그몬트공원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어요. 무진장 준비가 필요한 길걸음이라 모자와 선글라스를 챙기고 양산 펴 들고 뜨거운 온도를 속이려고 무장한 사람은 나뿐이네요. 두려움을 남겨둔 크기만큼 사람도 숙성되지 않던가요.


사실 뜨거워도 너무 뜨거운 날이라 모자로 양산으로 온몸을 가려도 잠시 속이는 것일 뿐 걸음이 자꾸 뒤처지는 할미인데 유모차에 탑승한 은하수는 지치는 기색 하나 없이 '달려!' 외치네요. 그 바람에 유모차 운전수들은 뛰어야 했어요. 호세가 뛰다가 할아버지가 이어받고 다시 하늘이가 뛰는데 왜 웃을까요? 누구 하나 덥다며 찌푸리지 않고 신나게 벨트라인을 달립니다. 생각해 보면 은하수는 짜증이란 걸 몰라요. 생의 상처를 남기지 않고 키우는 딸아이의 노력이 대단한 거지요. 은하수 덕에 이 염천은 하늘의 뜨거운 분노가 아니라 겨울날 필요한 딱 일 인분의 모닥불이라 생각을 바꿨다는 겁니다.


벨트라인은 애틀랜타 외곽을 둘러싼 22마일의 오래된 철로를 공공예술프로그램으로 조화롭게 재개발 중인 곳으로 볼거리가 제법 많을 거라고 귀띔한 호세말마따나 눈을 잡아 끄는 구간이 많아요. 다운타운에 위치한 순환철도가 변신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더위에 치칠 즈음이면 거침없이 예술과 자연이 합세한 멋진 작품을 보여줘요. 빛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바라보면 더위에게도 너그러워지니 은하수의 덕일까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웃고 있는 게 보여요. 드디어 나도 뜨거운 여름을 제대로 즐기며 깨달음을 얻게 되었네요. '속는다고 해서 잃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길가의 나무들은 모두 누군가의 집이름이더군요. 아름드리 튤립나무 명찰을 찬 오렌지지붕집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차가운 티를 마시는 사람을 잠시 그려봤어요. 내 생각처럼 찻집이었군요. 참 아름다운 튤립나무와 수국이 흐드러진 멋진 다운타운 집이긴 하나 유쾌한 은하수가 살지 않는 집이니 잠시 눈에 담아두는 걸로 만족합니다.


벨트라인을 따라 걷다 보니 발아래 온통 초록카펫이 펼쳐진 피그몬트 공원이에요. 연락 없이 불쑥 찾아갔는데 어떻게 알고 환영파티가 요란한지요. 환영인파가 너무 많아서 발 디들 틈새를 찾아야 했어요. 피그몬트공원은 무진장 뜨거운 여름날 축제 중이었거든요. 호수엔 백조들이 유유한 자태를 뽐내며 공연을 하니 눈 호사, 공짜 아이스크림에 입도 호사, 살짝 부는 바람결에도 탐스런 수국들이 형형색색 물결 댄스를 해대니 내 몸도 이리저리 댄스로 흔들려요. 뜨거운 한낮이지만 은하수와 함께하는 하는 동안의 온도는 적당~입니다.


다운타운은 뜨거웠지만 결국 적당한 온도를 느끼고 돌아왔으니 다 은하수 덕입니다. 아무리 여름이 뜨겁다 해도 사람에겐 견뎌내는 힘이 있어요. 그 힘의 원천이 은하수였단 거지요. 고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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