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만 둘이라 비행기를 곱빼기로 탈 부러운 팔자라더니 한국 국적의 큰아이는 미국에서 하준이를 낳고, 미국 국적의 작은아이는 한국에서 은하수를 낳으면서 일 년에 두 달은 미국살이 중입니다.
요즘 나이가 들고부터 애틀랜타 가는 게 명절 시댁행사 같단 생각이 들어요. 비행기에 갇혀있는 14시간, 시차적응으로 돌아올 때까지 몸과 마음이 내내 찌뿌둥하니 말이에요. 그럼에도 '할머니를 케어하는 법(How to babysit a grandma)'이란 책을 읽으며 할미를 기다리는 은하수를 생각하면 이겨낼 고통이긴 합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에요.
그러고 보니 가장 별이 빛나는 계절인 겨울에 주로 애틀랜타를 다녀왔어요. 할미와 할아버지가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생일과 새해맞이가 겨울에 있어서 함께 축하하고자 했던 하늘이의 마음씀 덕이지요.
애틀랜타의 겨울은 까만 밤이 빛나도록 아름다워요. 마을의 단지마다 크리스마스트리로 휘황찬란해서 어딜 가든 구경거리가 넘치거든요. 캐네소의 라이프유니버시티 '라이트 어브 라이프'는 온몸이 전율로 일렁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불꽃축제였으며 해밀턴 밀의 골프장 크리스마스 불빛축제도 대단했어요.
그 가운데서도 기억에 남는 불빛축제는 화이트카운티에 위치한 독일마을, 헬렌빌리지예요. 낮보다는 밤이 돼서야 진가가 드러나는 헬렌빌리지에는 하늘의 별들이 몽땅 내려와 눈 닿는 어디든 찬란한 빛그림으로 야단법석이었어요. 온몸에 닿는 차가운 겨울바람은 감출 수 없는 십이월이나 보이는 모든 것은 따뜻한 별빛입니다. 은하수는 유모차에 탈정도로 어렸는데 까만 밤 홀로 남은 자존심 같은 초승달이 은하수 눈썹에 내려와 있어 할미가 깜짝 놀랐으니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밤이었지요. 지금도 초승달이 뜬 밤이면 할미 따라 웃던 은하수가 떠올라 따뜻해집니다.
은하수레일라니
은하수야! 할미가 비밀 하나 가르쳐줄게. 올해 겨울엄청 따뜻할 참이란 거야. 별빛과 은하수와 따스한 포옹은 할 예정이거든.
소리를 물끄러미 들을 줄 아는 하준이가 일곱 살로 훌쩍 키가 컸듯이 봄빛처럼 찰랑거리다가 불현듯 쏟아져내리는 폭포소리를 다룰 줄 아는은하수도 유모차 대신 땅을 힘껏 구르며 온갖 데 뛰어다니는 네 살이 됐어요.그 사이 하은이가 할미의 절친 대열에 세 번째로 합류하고 지금은 넷째 절친이 될 우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내 이름으로 살 때는 나를 사랑할 줄 몰라 많이 흔들리며 부대끼던 삶이었다면 하하하 할미로 살면서부터 단단한 삶을 사는 내가 보이더군요. 나날이 늘어나는 기쁨을 위해 내 사랑의 그릇을 키우는 동안 할미도 무럭무럭 커졌단 겁니다.
궂은날을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 온 뒤 푸른 하늘! 살아야겠단 까닭이 우주의 은하수처럼 쏟아지니반짝반짝찬란한내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