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부모를 키운다
나에게는 꼬마스승님이 셋 있다. 이들은 번갈아가며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 이번엔 둘째 스승님의 차례였나 보다.
올해는 계속되는 잔병치레로 병원을 자주 찾는다. 전부터 있던 발 저림이 심해져 치료를 받던 중 얼마 전의 너무 열정적인 화장실 청소 덕분에 허리까지 못 쓰게 되어버렸다. 거의 일주일을 고생 중이다. 아이들은 엄마 괜찮냐며 얼른 나으라고 고사리손으로 안마도 해준다.
그제 주사치료를 받은 발이 상당히 불편하고 서 있기가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어제는 비가 많이 와서 남편이 비상근무를 해야 했다. 그 말은 밤새 나 혼자 아이들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전날 불편한 발 때문에 제대로 잠을 못 잤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피로가 몰려오기 전에 얼른 아이들의 저녁식사와 뒷정리를 마치고, 빨래를 개어 서랍에 넣은 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허리를 잡고 침대에 누웠다.
첫째가 동생들과 과자를 먹겠다고 하는데 뭐라 대꾸할 힘도 없어 “엄마는 조금만 쉴게”라고 말하고는 누워서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조금 후 둘째와 셋째의 소리에 정신이 들어 시간을 보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저녁잠을 이기지 못하는 첫째는 내 옆에 잠들어 있었고, 올빼미형 둘째와 셋째는 둘이서 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셋째는 옷이 젖어서 갈아입었다며 자기 혼자 서랍에서 꺼낸 겨울 내복을 입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물에 적신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셋째의 옷을 갈아입히고, 부엌에 가니 식탁 위에 과자봉지가 널브러져 있다. 못 본 척 지나갔다. 그런 내게 둘째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양치했어!”
칭찬을 바라는 말이었다.
“그랬어?”
힘은 안 들어갔지만 그래도 엄지척을 날려주었다. 그런데 그 뒤에 둘째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내가 삼호(셋째)도 양치시켜 줬어. 꼼꼼하게! 쉬한 것도 버리고 샤워기로 씻어놨어.”
아직 간이변기를 사용하는 막내의 쉬통 얘기였다.
“정말? 우와~ 대단한데! 이호는 정말 멋진 오빠네!”
아이의 어깨가 으쓱거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가 말한다.
“응. 내가 다했어. 엄마 빨리 낳으라고.”
그러고는 쿨하게 블록놀이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엄마가 감동을 심하게 받고 있는 줄도 모르고..
몸이 안 좋으니 자꾸 짜증도 나고 평소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져 안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아이는 쓰러지듯이 잠에 든 엄마가 안쓰러워 깨우지 못하고 엄마가 했던 일을 자신이 대신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싶다가도 생일이 늦은 8살 아이의 작은 손을 잡아보면 아직 아가 같기만 하다. 이렇게 마음이 예쁜 아이가 진정 내 속으로 낳아서 나처럼 부족한 엄마가 키운 아이가 맞나 싶다.
아이는 부모를 성장시킨다. 부모도 처음에는 연한 줄기에 떡잎 만을 가진 어린 풀이다. 작고 어린 풀은 아이가 주는 물과 따뜻한 빛으로 자라난다. 그 물은 아이가 주는 한없는 사랑이고, 그 빛은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이다.
아이의 성장을 느끼고 그 아름다운 빛이 드리워지면 부모는 부족했던 자신에 대해 모른 척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게 된다. 그리고 아이에게 미안해서, 아이보다 미성숙한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마음속 사랑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 새로운 줄기를 단단히 뻗고 그 끝에 작은 이파리 하나를 힘겹게 펴낸다. 그렇게 부모는 나무가 되어간다. 언젠가 아이들이 필요하면 쉬어갈 수 있는 넉넉한 그늘과 자리를 내어줄 나무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이들은 나에게 더없이 훌륭한 스승이다. 아이는 자신이 잘한 만큼 나에게 더 잘하라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준다.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면 항상 너그럽게 받아주고 금세 다시 사랑을 준다. 나의 부족함을 소리 없이 채워주고는 크게 생색내는 일도 없이 홀연히 자리를 뜨는 그런 스승이다.
그런 스승이 셋이나 나를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내가 부족한 사람이어서, 배울 것이 많아서 세 스승을 보낸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기꺼이 그들을 평생 스승으로 삼는다.
오늘도 나에게 인내심을 가르쳐주는 막내스승님을 재우는데 칭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옆에서 자신이 듣던 음악을 멈춘 후 살그머니 자장가를 틀어주며 씩 웃어주는 둘째 스승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