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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니 Aug 02. 2023

자투리 식빵과 3분

성장을 위한 기다림

  

  우리 집 아침 식사는 보통 간단하게 빵이나 시리얼인데 가끔 아침에 부지런을 떨어 아이들 샌드위치를 만들어줄 때가 있다. 되도록이면 식빵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하지만 햄치즈 롤샌드위치 같은 것을 만들 때는 어쩔 수 없이 식빵 가장자리를 잘라낸다. 세 아이들이 먹을 것에 어른 것까지 만들다 보면 잘라낸 식빵을 그냥 버리기에는 많이 아깝다. 그렇다고 나 혼자 먹기엔... 혼자 먹어봤지만 맛도 없고 이것이 엄마의 숙명인가 하며 괜스레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이 날은 내가 먹더라도 맛있게 먹자 싶어 러스크 과자를 생각하며 기름을 넣지 않은 프라이팬에 식빵 자투리를 볶듯이 구웠다. 내가 기억하는  과자는 튀겨서 설탕을 뿌린 것이었는데,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이기는 싫었다. 이미 열심히 샌드위치도 만들었으므로 내가  식빵 자투리를 위해  인내할  있는 시간은 3 정도였다.


  식빵을 노릇노릇하게 구워 커피 한 잔과 함께 식탁에 앉았다. 하나를 들어 씹으니 수분이 모두 날아간 식빵은 와그작 맛있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나를 돌아보는 아이들. 그리고 그릇에 있는 식빵 쪼가리들을 보며 이게 뭐냐고 묻는다. “식빵으로 만든 과자야~!” 나는 최대한 ‘과자’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세 아이가 일제히 손을 내민다. 한 번 먹어보더니 먹던 샌드위치는 버리듯이 접시 위에 올려두고 식빵 과자를 먹느라 정신이 없다. 양념이 아예 없는데도 꽤나 고소하고, 바삭거리는 식감 덕분에 아이들은 서로 더 먹으려고 난리다.


자투리 식빵을 한 입 크기로 잘라 구웠다.


  이제 자투리 식빵이 남아도 걱정이 없겠다. 3분 정도만 더 투자하면 엄마의 숙명 따위를 찾으며 나 혼자 그 자투리들을 처리해야 하는 일은 없을 테니.




  아이들이 ‘식빵 과자’를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며 어쩌면 나는 혼자서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모두 짊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참아내면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일들이 있는데 말이다.


  얼마 전부터 청소할 때 아이들이 어지른 물건들은 스스로 치우도록 시키고 있는데 생각보다 잘한다. 혼자서 하면 안 그래도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하는 내 발바닥에 불이 날 텐데 아이들 덕분에 내가 왔다 갔다 하는 이동거리는 많이 줄어든다. 다만 아이들의 정리 과정은 조금 많이 시끄럽고 오래 걸리며 완벽히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점. 그냥 내려놓음이 필요한 부분도 있는 법이라며 넘겨야 한다.

  밥을 먹을 때도 전에는 아이들 식판에 남아있는 반찬이 아까워 내 앞에 두고 먹었었는데 그러다 보니 나의 아랫배가 자꾸만 더 푹신해진다. 이제는 너무 배불러 남긴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다 먹고 일어나도록 한다. 다 먹은 그릇도 싱크대로 옮겨두라고 가르치는 중이다. 남은 밥 한 숟갈을 두고 인상을 찌푸리거나, 싱크대에 그릇을 넣으려다가 국을 주르륵 바닥에........ 참아야 한다. 다음엔 ‘이러지 말자, 조심하자’라고 어금니를 꽉 물고 얘기해야 한다.


  나의 경우 아이가 어릴 때 나 혼자 해야 했던 일들을 아이가 자라서도 습관적으로 계속해서 혼자 해왔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겨남을 알아채야 한다. 자꾸 아이와 함께 시도함으로써 아이의 성장과 그로 인해 가능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알아채고 더 발전하도록 도와야 한다.


  물론 어릴 때부터 아이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부모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에서 많이 부족했다. 아이가 스스로 하는 과정에서 벌여놓은 것들을 힘들게 뒤처리해야 하느니 혼자서 하는 게 빠르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실수를 참아내고, 어설픔으로 인해 늦춰지는 시간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참아보려고 한다. 스스로 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한다. 아이의 건강한 자립이 부모의 최종 목표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함도 안다.


  식빵 자투리를 프라이팬에 올려두고 3분을 더 기다렸다. 그 기다림으로 전에는 으레 내 몫이었던 것을 아이들이 가져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내 손을 빌려야 하는 것들은 아직 많다. 양치질, 로션 바르기, 머리 빗기, 옷 준비, 책가방 챙기기, 책상 정리, 이불 개기, 간식 준비, 매일의 공부 계획 등등. 아직은 사소한 것들이지만 앞으로 생겨날 중요한 결정들과 그로 인해 책임지고 해야 할 일들까지 온전히 아이들의 몫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3분, 3시간, 3일, 혹은 3년.. 엄마의 기다림이 필수인 인고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엄마의 인내라는 밑천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 스스로 성장하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제발..!’이라고 간절히 속삭이는 내 속마음도 이 글에서 숨기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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