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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니 Nov 27. 2023

엄마, 걔는 나한테만 그래.

아이의 학교생활

  이제 1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니 글로 써도 될 듯하다. 작년에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두세 달쯤 지났을 때였다. 학교를 다녀와 간식을 먹는데 아이가 시무룩하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엄마, 우리 반에 00이 있잖아. 걔가 나한테 발차기를 자꾸 해.”

  일주일쯤 전에 아이가 한 번 언급했던 아이였다. 다른 일로 그 아이에게 언짢은 마음이 생겨 이야기했었는데 남자아이들은 장난이 짖꿎을 때도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또 모든 일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 없다는 것도 아이가 알기를 바랐다. 그런데 발차기를 했다니, 이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아이에게 자세히 물어보니 발차기를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신체적으로 아이가 불편함을 느꼈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이의 정확한 기억만 세어봐도 이번이 세 번째였다. 아이는 엄청난 차이는 아니지만 자신보다 체구가 조금 더 큰 그 아이를 보니 겁이 난 모양이었다. 그 친구에게 정확하게 “하지 마! 기분 나빠.”라고 말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고도 또 그러면 선생님께 말씀드리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의 입에서는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엄마, 내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또 그래서 선생님한테 말한다고 했더니 걔가 죽을래? 이랬어.”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더 물었다. 정말 그 단어를 말한 것이 맞냐고 물었다. 고민이 되었다. 아직까지 앞뒤 상황을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시간 순서도 뒤죽박죽인 아이의 말들을 잘 끼워 맞추고 재차 물어보며 앞뒤 상황을 따져봤다. 아이가 먼저 그 친구에게 다가간 것도 아니었고, 무슨 말을 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지나가다가 그랬다고 한다. 다른 친구한테도 그런 장난을 치는지 물어보자 그런 적도 있기는 하지만 자기한테 더 많이 한다고 한다. “엄마, 우리 반에 00이랑 00이도 있잖아. 걔네한테는 그런 말 안 하고, 그런 장난도 안 쳐. 그런데 걔는 나한테만 그래.” 아이가 말한 두 명은 그 친구와 같은 유치원을 나온 아이들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 번 더 그러면 선생님께 말씀드려 본다는 나의 말에 아이가 알았다고 대답했다.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의 아이는 간식을 마저 먹으려다 말고 나를 보며 얘기했다. “엄마, 그냥 지금 전화해 주면 안 돼? “ 아이의 눈빛이 간절했다. 나는 물었다. “왜? 그 친구가 무서워?” “응.” 짧은 아이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같은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에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이와 비슷한 일로 얼마나 많은 지도를 하고 계실지는 듣지 않아도 안다. 또 나는 아이의 말만 들었기에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알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항상 아이들은 자신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의 입을 통해 듣는 상황은 다를 수도 있었다. 아이들은 전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전화를 굳이 하지 않으려 했지만 내 아이가 무섭다는데 지금 당장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아이는 자신에게 문제가 생겨도 엄마는 어차피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야기조차 하지 않고 혼자 끙끙거리거나 친구들의 잘못된 조언만을 따라가게 될 수도 있다. 학교에서 많이 보아온 모습들이었다. 그래서 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선생님에 대한 배려는 미뤄두어야 했다.


  선생님께 메시지를 드렸다. 잠시 통화가 가능하냐는 짧은 내용이었다. 이런 메시지를 받으면 교사는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역시 바로 답장을 주셨고 30분쯤 후에 전화를 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나는 자초지종을 차분히 말씀드렸다. 그 친구를 벌주려는 마음은 아니지만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 친구가 평소 우리 아이에게 감정이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 주십사 요청을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바로 연락을 주어서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통화를 마쳤다.


  다음날 아이가 학교에 다녀왔다. 하루종일 궁금했던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아이를 불러 이야기하고,  친구를 따로 불러 이야기했는데 혼이 나는  같았다고 했다. 혹시 사과를 받았는지 물었는데 그런 과정은 없었던  같았다. 아이는 자기 때문에  친구가 혼나게   같아 마음이 불편해 보였다. 아이의 걱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아이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  친구가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배워야 다시 그러지 않을  있어.  때문에 혼나는  아니야. 그리고 혹시라도  친구가  너를 기분 나쁘게 하면 선생님께  말씀드려.”


  며칠 후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났다고 했다. 이번엔 선생님께 바로 말씀드렸고, 그 친구가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그 사과의 말 한마디에 아이는 다시 그 친구가 착해졌다며 그날은 재미있게 같이 놀기도 했단다. 남자아이들이 단순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 아이도 그들 중 하나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그 친구에 대해 몇 번 더 이야기가 나왔다. 다른 반이 된 올 해에도 그 친구에게 복도에서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 친구는 팔을 들어 올리며 때릴 듯한 제스처를 취해 아이가 기분이 나빴다는 말을 했다. 아이에게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지만 그 아이에게 굳이 인사를 먼저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며 이런 일들은 수도 없이 봐왔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각자에게 익숙한 장난의 유형이 있고, 허용 가능한 정도가 모두 다르다. 학교에는 항상 조금씩 과한 아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위협을 주며 우위를 선점하려는 유형의 아이들이 하는 행동은 누가 봐도 잘못된 것이므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어떤 경계에 바짝 다가선 정도의 장난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상대방이 불편할 것을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그런 행동들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그런 아이들. 그리고  주변에는 그런 장난을 어느 정도는 웃어넘기며 받아칠  아는 아이가 있으며, 사소한 장난도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두려워하거나 언짢아하는 아이들이 있다. 교사로서의 나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기를 강조했다. 나에게는 재미있는 장난이지만 상대방에게는 불편한 일이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매번 말한다. 하지만 엄마로서의 나는 그런 아이들도 있으니 싫다고 말하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넘어가라고 말한다. 마음 같아선  아이를 불러다 놓고 차근차근 말해주고 싶었지만  역할은 내가 아닌 담임선생님의 몫이었다.


   해도 아이에게는 비슷한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학교가 아닌 아이가 다니는 스포츠센터에서였다. 다른 친구이긴 하지만 양상이 비슷하다. 전에도 언급했었던 친구인데 불편함을 감추고 지내다가 결국 이번에도  친구가 험한 말을 하자  말이 있다며 나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걔는 나한테만 그런  같아.” 아이가 말했다. 겁이 많은 아이의 성향을 알기에 말해주었다. “무서워하지 . 네가 무슨 잘못이 있거나 약해 보여서 너한테만 그러는  아니야.  아이는 다른 친구들한테도 네가 모르는 사이에 그랬을 수도 있어.” 진짜  아이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자신이 무언가 잘못해서 그런가 하는 자책감이나 혹은 만만해 보여서 그런 일을 겪는 건가 하는 피해의식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그러면 바로 선생님께 말씀드리라고 했다. 그리고 그때는 엄마도 전화드리겠다 약속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아이는 마음이 이상하다며 편안해지지 못했다. ! 그냥 신경 쓰지 말자!”하며 혼잣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이는  손을  잡았다. 아까 이야기를 꺼냈을     안아줄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분명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날 것이다. 불안감이  첫째, 자존심 때문에 속상한 일에도 감정을  누르는 둘째, 그리고 복잡한 여자아이들의 세계로 들어갈 셋째.  아이여서 취약한 부분들이  크게 보이고 그래서  걱정이 되는 것일 거라 자꾸만 스스로의 걱정을 보듬어주어야 하는 것은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객관적인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되 언제나 너의 편이 되어줄 든든한 엄마라는 것을 보여줄  있는 고난도의 기술을 가져야 한다. 아이들이 아무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면 좋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떻게 그럴  있겠는가.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어도  안에서는 분명 크고 작은 일들이 가득한 세상이다.  세상에서 자신에 대해 배우고 성장하며 스스로에게 알맞은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결국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왔을 때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과정에서 엄마로서 내가    있는 것은 네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격려해 주고 믿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아마도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크고도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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