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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Mar 22. 2024

1막 16장. 알 수 없는 힘

다들 체력이 좋은 건지 책임감이 강한 건지 새벽까지 그렇게 싸우고도 아저씨는 다음날이면 꼬박꼬박 막노동판에 일을 하러 나간다.

매일같이 맞고, 물고 뜯어도 버텨낼 체력과 정신적인 힘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한 데서 하는 날벌이라 비가 오는 등 기상이 좋지 않으면 좁은 방에서 그 싫은 얼굴을 계속 보는 것이 고역이었지만 어쨌든 일을 다녀와 번 돈은 많던 적던 숨김없이 엄마 손에 봉투째 쥐어주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결코 아저씨를 떠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내겐 달리 방법이 없으니 닥쳐오는 인생의 비바람을 맨 몸으로 모두 맞을 뿐이다.

정말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 지옥 같은 현실을 인정하는 모든 의미가 함축된 '아빠'라는 호칭....

어느 날 아저씨를 향해 느닷없이 금기어 같던 그 말을 뱉어내자 잠시 놀라 몇 초간 말이 없던 아저씨는 얼른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웃음을 보였다.

싫지만.... 정말 싫지만....

이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는 듯 보였다. '아저씨'라는 벽을 만들어 한 집에서 지내는 게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어렵게 용기를 내어 불러본 '아빠'라는 호칭을 그날 이후에도 삼십 년은 더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 싸우더라도 돈이라도 많이 생겨나면 모르지만 어쩐지 사는 모양새가 말이 아닌듯하다.

라면을 먹는 날이 허다하고, 그마저도 동네 가게 여기저기서 외상으로 얻어 오는 듯했다.

물론 그 라면도 별일 없이 먹는 날이 드물었다.

무슨 말에 꼬투리가 잡힌 건지 아저씨는 엄마를 찌를 듯 젓가락을 들고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는다.


"젓가락으로 눈을 팍 쑤시가 뽑아삘라!!"


"아나!! 그래... 쑤시바라 쑤시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내 눈앞에서  당장 그런 일이 일어나기라도 할까 봐 심장이 오그라들었지만 배고픈 나는 속없는 척 그들 사이에서 후루룩 거리며 그나마의 끼니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여관에 살았을 때처럼 집에는 벽시계도 손목시계도 없다.

시간을 아는 방법이라곤 고장 난 흑백텔레비전을 켰을 때 정규 방송 중 오른쪽 상단에 나오는 어름어름한 화면 속 숫자를 보거나 아빠 손목을 들쳐봐야 하는데 매번 몇 시냐 묻기도 그랬고 학교에 가는 것 말고는 딱히 시간을 물을 만큼 중요한 스케줄이 있지도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다락방에서 새아빠가 꺼내준 먼지가 가득 쌓인 작은 글씨의 위인전집이나 동화책을 읽는 일, 또는 동네가 떠나도록 아이들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다 해 질 녘에야 집에 들어오는 일이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다.

다락방에서 몇 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먼지 묻은 누런 책들 중 '사랑의 가족'이란 책은 내 가슴을 참으로 먹먹하게 했다.

가난하기 짝이 없는 형제만 일곱인 독일의 어느 가정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지만 서로를 사랑하며 희망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나는 그 책 속의 이야기가 이웃집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가슴이 시리도록 부러운 마음에 잠자리에 들 때면 나도 그런 따뜻한 부모와 형제가 있는 집을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잠든 새벽에도 그들의 싸움 소리에 깨어 주문인지 기도인지도 모를 만큼 절박하게 중얼거리며 공포에 떨어야 했지만 그래도 매일밤 희망을 품으며 행복한 상상 속에 잠이 들곤 했다.

가끔은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흙을 퍼 담고, 왕개미 여러 마리를 그 안에 넣어 컴퍼스로 구멍을 숭숭 뚫은 종이를 페트병 위에 덮어 씌워 고무밴드로 고정하고는 개미들이 굴을 파는 모습을 관찰하며 놀기도 하고, 도화지로 넓은 집을 만들고 침대며, 옷장을 만들어 둔 뒤 풀잎을 깔아 메뚜기를 잡아와서 기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정성스레 만든 집이 뭐가 못마땅했는지 얼마 안 되어 메뚜기는 펄쩍펄쩍 뛰어 어디론가 가 버렸다.

서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동네 끝자락엔 산을 깎아 만든듯한 오르막에 교회가 하나 있지만 나와는 뭔가 맞지 않는 느낌이라 새로운 교회를 찾아봐야 했다.

제 엄마를 찾아 떠난 언니가 지난날 그랬듯 나도 교회에 가면 마음을 기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인터넷 검색 기능이 있을 리 만무한 시절이었고, 전화기도 없던 집에서 내가 다닐 교회를 찾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정처 없이 걷고 있을 때 어느 가로수 아래 도롯가에 교회 봉고차가 잠시 정차해 있는 것을 보고는 무작정 그 차에 몸을 싣고 알지도 못하는 동네에 위치한 교회에 가게 되었다.

일요일이면 싸움을 끝내고 모두 늦잠을 자고 있는 고요한 방안에 텔레비전을 켜서 괜한 소음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아빠, 엄마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고는 그때 보았던 가로수 아래 도롯가를 향해 걸었다.

어린 내 걸음으로 이십 분 남짓 한 길을 걸어 몇 시인지도 모른 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그 자리에 서 있는다.

그럼 어느 날은 차가 이미 떠난지도 모르고 한참을 서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도로변 중국집 주인아주머니가 가게 문을 열고


"너 교회 봉고차 기다리니? 그거 아까 갔어"


나는 하는 수 없이 맥이 빠져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가끔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교회 봉고차를 타고 나를 부른 이도 찾은 이도 없는 그 교회에 간다.

헌금도 성경책도 없다.

친구도 아는 이도 없이 혼자 교회에 가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곤 했다.

다른 아이가 들고 온 만화 캐릭터 스티커를 붙인 자주색 성경책이 부러웠고, 예쁜 원피스와 하얀 레이스 양말에 구두를 신은 모양새가 부럽기도 했지만 나는 그저 예배 시간이 더없이 즐겁고, 그들의 지긋지긋한 싸움놀이를 하루종일 안 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가끔 교회에서 근처 야트막한 산으로 소풍을 가는데 주일학교 학생들이 모두 둥그렇게 둘러 서서 박수를 치며 찬양을 부르면 선생님들은 차 안에서 종이 상자를 두세 개 꺼낸다.

상자의 뚜껑을 열어 하얀 종이에 싼 따끈한 소보루빵을 하나씩 나눠주는데 두 손으로 받아 든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소보루빵이 점점 없어져 가는 것이 안타까워 위에 붙은 소보루만 야금야금 뜯어먹어가며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나도 모르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어 혼자 찾아가게 된 교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드리는 예배가 나에게는 소중한 위로의 시간이다.

'사랑의 가족'이란 동화 속에 나오는 가슴이 저리도록 행복한 가정이 나에게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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