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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Nov 22. 2023

정신과 입원, 그 후 이야기

좌충우돌 정신과 입원기(마지막)

2023년 8월 23일 퇴원을 하고, 3달이 지났다. 입원을 하기 전 나는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고 8개월 정도 약물치료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유명한 항우울제는 다 먹어봤고 일주일에 3번 정신과 진료를 봤다. 그럼에도 끊이지 않는 자살 사고, 자해 등의 문제로 입원 권유를 받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초진을 보고 입원을 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굉장히 잘 한 선택이었다고 느껴진다. 59일, 약 2달간의 입원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습관적으로 하던 자해를 멈췄고 다양한 방식으로 하루 살기를 시작했다. 이제는 소소한 일들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여전히 사는 것은 버겁다.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 미래에 대한 두려움, 자기 비하 같은 어둠들이 몰려올 때가 있지만 그럴 땐 그냥 주저앉는다. 그리고 울기도 하고, 지나가길 가만히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땐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곤 다시 일어나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걷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는다.


퇴원하고 3개월 동안 하루씩 산다고 생각하며 하루에 집중하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것이 쌓였다. 더 늘어난 뜨개질 실력, 읽은 책, 운전면허 필기 합격, 죽밥 프로젝트 등등 눈에 보이는 성과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 마음의 단단함, 좋은 말 같은 것들도 늘어났다. 여전히 힘든 세상 속에서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다 보니 이룬 결과다. 환경은 변한 부분보다 변하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지만 그건 내 소관이 아니라는 마인드도 갖출 줄 알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선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들이 그냥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풀리고 이해되는 경험도 종종 하다 보니 너무 생각에 몰입하지 않는 법도 배웠다. 성장하지 않을 것 같았던 나는 매일 조금씩 어떤 형태로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불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끝나진 않아도 옅어지긴 하는 거 같다. 그리고 그 옅어진 어둠들을 끌어안고 사는 것을 배우는 게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다시 앞이 안 보이는 순간이 오겠지만 그 걱정에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니까 그건 잠시 접어두고 현재를 살려한다.


나의 현재를 만들어주신 세 분 주치의 선생님과(특히 전공의 선생님) 나의 현재를 함께 살아가주는 지율씨에게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함께 해 주신 독자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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