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랑 Nov 22. 2023

터닝포인트와 퇴원

좌충우돌 정신과 입원기(13)

입원 50일차

드디어 퇴원 이야기가 제대로 나왔다. 기분이 묘-하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나를 "행복하게 괴롭히는" 방법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뜨개질하기, 친구들이랑 놀기 뭐 등등. 어쨌든 집을 최대한 벗어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볼 거다. 집은 나에게 참 애매한 단어다. 쉼의 공간임은 분명하지만... 더없이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가끔은 나의 하루들이 다른 존재의 하루를 관망하는 것에 불과하단 생각이 든다. 이인감이라고 해야 하나. 얇은 막 하나가 나를 싸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나의 퇴원도 그렇게 다가올 거란 생각이다. 나의 일이 아닌 양, 또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고 한없이 글을 쓰다 보면 실감이 나겠지. 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단 것이. 이젠 이곳이 집이란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는데 그냥 현실을 자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 같다. 그곳이 내가 다시 가야 할 곳이고 이곳은 그저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현실을.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먼저 내가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할 거란 판을 깔았고 엄마는 괜찮다는 말로 계속 나를 속이길래 그 말에 먼저 반박했다. 거짓말인 거 안다고. 그리고 차례차례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죽으려 했던 이유, 그 이유엔 엄마도 포함된다는 이야기. 서로의 거짓말에 속고 속아주는 관계. 사랑한단 이유로 숨통을 붙잡고 있는 관계. 나는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고 엄마의 지분도 크다는 거. 대화를 하는 내내 울었다. 차분하게 이야기하려고 일부러 복도 걸으면서 전화했는데 꼴사납게 복도에서 찡찡 댄 꼴만 되어버렸다. 다행히 사람이 없었어. 아무튼. 9시가 되어 핸드폰을 반납해야 해서 끝까지 이야기하지는 못 했다.

상처 주지 않으려고 정말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감정적으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어내진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러는데도 마음이 아리더라. 죄책감이 들더라.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집에 가면 절대 이 문제를 꺼내지 못할 거 같아서. 그러면 또 내가 나를 해치고 고문할 거 같아서. 난 불안에 떨게 분명하니까.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곪아 있는 거 같다.


최근에 선생님들이 끊임없이 건드렸던 게 내 감정 표현이다. ‘표현하면 어때?’, ‘표현하면 어떻게 되는데?’, ‘표현해 봐!’. 이렇게 계속 ‘가스라이팅’ 당하다 보니 나도 머리를 굴리게 된 거다. 진짜 그러면 어떻게 될까.


불안하다. 손에 힘이 빠지고 심박수가 빠르다. 약을 먹었는데 이렇다. 어지럽고. 죄책감이 든다. 그럼에도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건 분노, 답답함 때문인 거 같다.


결국엔 당사자끼리의 이야기가 중요하겠단 생각이 든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그전에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면 이제는 조각이 좀 맞춰진 상태라는 거. 내일 더 이야기해야겠다.


입원 51일차

오늘 왜 하필 휴일인 건지.


엄마와 두 시간 반동안 통화를 했다. 난 처음엔 또 울었지만 이내 차분히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생각보다 엄마의 행동에서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엄마가 우리에게 아빠를 미워할 시간을 주지 않았단 이야기. 그래서 감정을 삼켜야 했던 이야기. 근데 엄마는 내가 감정표현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질타했던 것. 핸드폰에 모든 인터넷을 차단했던 이유는 아빠가 미디어 중독이었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난 아빠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엄마는 이미 그 부분에서 생각을 해 봤고 집 근처 정신과를 알아봤으며 아빠도 자신이 치료받는 것에 동의했다고 했다.

엄마가 대부분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자기도 후회가 된다고. 멍청이 같았다고. 미쳤었다고.

하지만 우리가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마냥 헛되지만은 않았단 이야기도 했다. 엄마는 나로 인해 처음으로 꾸준히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됐고, 그 과정에서 상담도 하고 많이 안정이 됐으며 나는 이번 입원을 통해 내 상황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되어 이제야 각자 들을 준비, 말할 준비가 된 거 같다고. 그래서 이런 대화가 가능했을 거라고.

먼저 말을 꺼내줘서 고맙단 이야기도 들었다. 자기도 이런 이야기를 기다린 거 같았다고. 그래서 내가 이야기해 주니 반갑다고. 이런 기회가 있는 게 감사하다고.

난 이제야 좀 퇴원할 준비가 된 것 같다. 아직 원래의 삶으로 되돌아가 버릴까 무섭지만 약간의 희망이 생긴 기분이다.

그런 이야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갔을 때 지금처럼 괜찮은 순간이 분명 있겠지만 위기의 순간도 있을 거라고. 난 그 위기를 넘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지만 만에 하나 사고가 나더라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엄마는 그러겠다고 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겠다고. 그게 가장 고마웠다.


엄마와 내가 그런 이야길 했다는 게, 그리고 그 이야길 내가 먼저 꺼냈다는 게 놀랍고 당황스럽고 동시에 기쁘다. 나는 일방적으로 화를 낸 것도, 짜증을 낸 것도 아니지만 조금 부정적인 말들을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그리고 엄마도 내가 던진 공을 꽤나 부드럽게 받아 낸 것 같다. 지금 드는 기분은 당장 내일 퇴원해도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들떠 있지만, 안다 나도. 이제 시작일 뿐이란 거.


그래도 입원 이후 처음으로 살길 잘했단 생각까지 든다. 아주 조금, 스쳐가는 생각에 불과하지만.


입원 52일차

각각 주치의 선생님들께 엊그제, 어제 있었던 일을 전달드리고 칭찬을 받았다. 교수님 박수까지 쳐 주심ㅎㅎ


입원 53일차

브런치에 좀 더 가벼운 글을 올려도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렵지만 좀 더 쉽게 죽밥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선 그게 좋을 것 같아서. 전공의 선생님과 한 시간 반을 면담했다. 너무 좋아.


입원 54일차

컴퓨터 쓰는 사람 있어서 반강제 글쓰기 당첨. 근데 쓸 거리가 생각이 안 난다. 약의 영향인지, 내가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생각이 조금 줄어든 거 ‘같기도’ 하다. 리스펜정이 마냥 밀가루 약은 아닌 듯. 워낙 내 기분은 예측할 수 없어서 이 기분 좋음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뭐… ‘기분이 별로인 나도 난데’라는 전공의 선생님 말을 좀 받아들여보기로 했다. 신기한 건 기분이 좀 올라오고 나니까 정말 백지처럼 아무것도 안 떠오르던 머리에서 전공의 선생님이나 교수님한테 들었던 긍정적인 말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는 거다. 언제 또 우울과 무기력이 찾아올지 몰라 무섭기도 하다. 근데 그 걱정에 지금의 행복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보단 그냥 ‘오면 오겠지 ‘ 하는 게  더 좋은 거 같다.


교수님이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저녁 8시가 다 돼서 오셨다. 그리곤 내가 기분이 좋다고 하니까 “enjoy! 즐겨!” 그러셨다. 또 내가 나 퇴원하길 기다리는 사람 많다 그러니까 “나도 너 기다릴 거야~” 이런 스윗한 말을 해 주셨다. 정말… 교수님도 대단하시다. 하루 못 가면 못 가는 거지~ 생각하는 교수들도 많을 텐데 하루도 빼먹질 않으시니. 한결같단 것만큼 믿음을 주는 것도 없는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교수님은 깊으신 분이다. 전공의 선생님과 똑같은 말씀도 하셨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 옆에 좋은 사람들, 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거라고. 진짜 그럴까.


입원 55일차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또 심심은 하고… 참 딜레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여기 최고참이다. 내가 아는 한 나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없다. 다들 퇴원함.


오늘은 그냥 잔잔하게 우울하고 무기력한 ‘평범한’ 하루였다. 잔잔함, 은은함이 주는 무서움도 있지만 이 정도면 평균이고 평범하다 말할 만하다. 각자의 평범함과 평균점이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적당한 우울이 그 지점인 거 같다.


입원 56일차

이상하게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을 뻔했는데 몸무게 재고 기분이 좋아졌다. 생각해 보면 동생 ‘덕에’ 간식도 왕창 먹고 최근엔 다들 퇴원해 버려서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왜 살이 빠졌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키도 더 크게 나왔다. 완전 좋아ㅎ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닥 그런 하루를 보냈다. 오전엔 예배보고 시간을 보내고 오후엔 엄마 면회하고 갑자기 메이크업 영상에 빠져서 화알못 탈출을 시도했으나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난 정말 내 또래 애들이 한창 화장에 관심두기 시작할 때 소설 쓰기에 푹 빠져있었고 중학교 때는 공부와 책에 빠져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리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근데 꼭 다른 아이들에 나를 맞춰가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다들 ‘무언가’가 찾아오는 시기는 반드시 있는 거 같다. 그게 공부던, 화장이던, 우울이던, 뭐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그런 것들. 그때가 다를 뿐이지. 난 남들 놀 때 공부했고 남들 공부할 때 노는 중이다. 내년엔 열공해야지. 아니야. 열심히 할 필요는 없는 거 같다. 노력은 때론 배신을 하더라고.


난 배우고 싶은 게 많다. 특히 언어. 그리고 요샌 철학에 관심이 좀 생겼다. 내가 젤 싫어하던 과목이 윤리였는데. 아 물론 수학이 1순위.


난 열정이 앞서는 사람인 것 같다. 하고 싶은 건 많아 일은 잘 벌려놓지만 한 가지에 몰두하지는 못 하는 편. 그래도 그나마 글쓰기는 부담 없이 하게 된다.


입원 57일차

대회진 있는 월요일! 신나 죽겠다. 이제 대회진 몇 번 경험해 보니 대충 어느 맥락으로 흘러갈지 예상이 간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절반 정도 맞았다고… 이렇게 하면 대회진을 부담 없이 넘길 수 있게 된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내가 전공의 선생님 옮기시는 병원 따라가겠다 했더니 “거기는 매일 대회진 해요!” 이러시면서 겁을 주셨다. 그 말에 그냥 퇴원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


내일은 교수님이 안 오신다고 한다. 그 말을 하시면서 “내일 뭐 하고 싶은 말 없었어~”(우리 교수님 특. 인간 물결표 말투!) 물어보시길래 냅다 “교수님 좋아요!” 이랬다. 그랬더니 나도 “ㅇㅇ이 좋아~” 그러시더라. 다정 끝판왕 교수님.


내가 같이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을 내 인생에서 내보내는 것도 필요한 법이란 생각을 했다. 그 과정은 신중해야겠지만. 아직 내가 서툰 부분이다. 그래도 이제야 잔뜩 숨겨놓았던 나를 조금씩 되찾는 기분이다. 정말 제일 깊은 구덩이에서는 빠져나온 듯하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지하 생활자 같겠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숨통이 트인다.


‘두려움’인 것 같다. 어두운 곳에 있다 보면 빛이 무서워지는 것처럼. 나를 다시 우울로 데려오는 건 두려움인 것 같다. 여전히 살아야 할 날들이 버겁다. 그런데 하루를 산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다행이다. 많이 배워서.


입원 58일차

진짜 많이 깼다. 다들 잠을 못 주무시는지 불이 켜져 있었고 사람 움직이는 소리도 계속 들렸다. 순식간에 인구밀도가 놓아졌어. 워낙 소리에 예민해서 잘 깨는 편인데, 좀 힘든 밤이었다.


‘정말로’ 퇴원한단 생각에서인지 어제 일의 영향인지, 불안하다. 이 익숙해진 생활, 환경이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다. 정들었는데.


입원 59일차

드디어 퇴원 당일이 왔다. 신나고 들뜨지도 그렇다고 가라앉지도 않은, 수면 위에 둥둥 떠있는 그런 기분이다. 53 병동 안녕.

이전 13화 우울의 경계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