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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Aug 30. 2024

무지개의 두 얼굴을 보았다

어느 날 무지개의 두 얼굴을 보았다.


어린 시절 무지개는 꿈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미술시간이 되면 활짝 웃고 있는 해님 옆에 습관처럼 빨강 파랑등 7가지 색을 선명하게 구분해서 그려 넣을 정도로 아이들의 그림에 단골메뉴처럼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살면서 우리가 무지개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평소에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시간도 그럭저럭 견딜만하건만 휴일이 되면 왠지 뭐라도 해야 할 것 만 같은 강박(?)이 머리를 자꾸 내밀려한다.

그렇다고 밀린 집안일을 하기엔 길지도 않은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깝고 그냥 휴식이라도 취하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좀이 쑤셔오는 듯 해 콧바람이나 쐬러 가볼까? 가족과 함께 근교로 나가본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늘 바쁘고 변화무쌍(變化無雙)하기만 한 우리의 삶과는 달리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소신(所信)을 지켜내고 있는 것들이 있다.

높디높은 산 그리고 잔잔하고 널따란 호수가 바로 그것이다.

누군가는 그 산이 그 산이고 그 호수가 그 호수라고 말할지언정 묵묵하게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그 모습이 좋고 그들이 우리에게 선사해 주는 청량함이 좋아 가끔씩 찾아가곤 한다.


큰 키를 자랑하듯 삐죽삐죽 위로 뻗친 짙은 초록색 전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난 길을 지나노라면 시원한 공기가 차 창 안으로 살며시 들어와 부채질해 주듯 더위를 쏴악 식혀주고 방문객을 위한 가이드 서비스인가? 

파아란 유니폼을 입고 말없이 따라오며 함께 해주는 높은 하늘이 기분까지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거기에 그냥은 서운하니 나들이의 하이라이트~ 도시락은 기본이다.


며칠씩 머무는 캠핑이 아닌 당일치기니까 보통은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김밥을 준비하지만 오늘은 비록 잠깐의 소풍이라 하더라도 좀 푸짐하게 먹어 볼 작정이라 트렁크에 고이 모셔 데리고 온 도시락 가방이 제법 묵직하다.

바람도 좋고 먹을 것도 넉넉하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다.


쇠뿔도 단김에... 금강산도 식후경...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밥부터 먹기로 한다.

휴일을 즐기러 나온 우리 같은 이들을 위해 군데군데 만들어 놓은 바비큐 통에 오면서 사가지고 온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는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 위에 석쇠를 놓고 양념에 재운 고기를 올린다.

지글지글 고기 구워지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코를 자극하는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우리를 향해 연방 맛있겠다를 외친다.

기껏해야 핫도그나 구워 먹는 그들비하면 만찬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식사가 꽤나 부러운 모양이다.


젓가락이 있음에도 고기는 역시 손으로 뜯어야 제맛이라면서 남편과 아들은 입에 그을음까지 묻혀가며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먹는데 열심이다.

집에서는 왜 이 맛이 안 날까?

배부르게 원 없이 먹고 나면 포일에 감자를 돌돌 말아 불 속으로 휙~던져 놓고 그 사이 커피를 마시며 광고 한 편 찍듯 여유를 부려본다.

어느새 까맣게 구워져 나온 감자가 먹음직스럽다.

포일 벗기고 호호 불어가며 한입 베어 물면 추운 겨울도 아닌데 입에서 연기가 솔솔~~

이 맛에 다들 산으로 들로 가는 모양이다.


자연은 핑계고 오로지 먹으러만 온 사람들 마냥 준비한 음식도 다 먹고 나면 마땅히 할 것도 없다.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잠시 쉬다 보면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다.

화창하기만 했던 날이 우리가 돌아가는 게 싫은 지 잔뜩 찌푸러져 있다.

금방이라도 한차례 눈물을 쏟다 낼 것 같은 표정이다.

우리도 아쉽단다... 잠깐 달래주고는 먹느라 하게 된 입운동도 운동이라고 지쳐 늘어지는 몸을 부여잡고 집을 향해 조금 달리다 보니 느닷없이 우리 앞에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일곱 빛깔 무지개가 짜~안 하고 등장한다.

어쩜 물감으로 저토록 화려한 색상의 조합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그림책에서 말고 실제로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가물가물 기억이 없는데 차 앞 유리가 영화관 스크린으로 분해 화면에 꽉 차듯 크기가 어마어마한 놈이 산, 하늘과의 멋진 조화를 이루며 세기에 나올까 말까(?)한 멋진 걸작품을 선사하다.

자체에서 뿜어 나오는 후광과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말로만 듣던 쌍 무지개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고고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한 채 우리로 하여금 잘 따라오라고 유혹하듯 손짓을 한다.

홀린 듯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 무지개를 쫒고 아이처럼 들뜬 마음에 과연 7가지 색깔이 맞나 괜스레 세어본다.

살다 보니 이런 행운도 있구나!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심심하기만 하던 차 안에 이야기 꽃을 피우며 활기가 불어넣어 진다.

우리가 무지개를 보다니 그것도 쌍무지개를...


잡으려 가까이 가면 나 잡아 봐라~~ 약 올리듯 저만치 도망가 손끝에 닿을 듯 말 듯...

무지개를 눈앞에서 만난 것만으로도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데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이때만 해도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 한 채로 오늘이 뭔가 특별한 하루로 기억될 것 같아 기분이 업된 상태로 지금 이 순간만을 즐기고 있었다.


자동차 앞 유리 너머로 우리에게 길 안내를 하듯 펼쳐 보이는 저 황홀한 그림이 없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 머릿속에라도 남겨야겠다 싶어 조용히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후드득후드득 비가 창문을 때리면서 맛보기 예고편을 살짝만 공개해 준다.

급작스런 화면 전환으로 순식간에 본편으로 넘어가 해일을 동반한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지붕을 그리고 유리창을 마치 우리를 향해 누군가 따발총을 따다다 다..... 쏘아대는 듯한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분위기가 판타지에서 갑자기 호러로 바뀐다.


함박눈이 내리듯 하얗게 쏟아지는 우박덩이가 시야를 가리고 또렷한 형체를 보이며 번쩍이는 번개와 음향 효과를 담당한 천둥까지 같이 놀자 합세해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한다.

앞이 안 보여 작동시킨 윈도 브러시가 열일하느라 쉬지도 않고 왔다 갔다 하는데 가끔씩 그들과 부딪혀 싸우는지 한 번씩 딴지 걸린 듯 두두둑 거리는 그 소리마저 우리의 공포를 부추긴다. 


걸음아 나 살려라 달려가고 있는 차의 속도감에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그들 힘의 가속이 더해져 더욱더 세차게 우리 차를 공격해 온다.

뉴스에나 나오는 골프공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굵은 아이들이 그 힘으로 지붕을 뚫어내고 들이닥쳐 안으로 침범해 올 것만 같고 유리창은 깨져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어떤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보다 무섭다.

우리 과연 괜찮을까?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라도 세우고 피신하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 마음을 알 리 없는 하이웨이는 휴게실은커녕 끝없이 펼쳐진 도로엔 갑작스럽게 변한 두 얼굴의 하늘 쇼에 놀라 도망가는 차들만 내가 먼저~하며 쌩쌩 달려갈 뿐이다.


무지개야! 널 얼마나 이뻐했는데 이런 일을 겪게 하니? 이건 배신이야 배신!...


어마무시한 괴력을 뿜어내는 무지개 씽크홀로 계속 빨려 들어가기만 할 뿐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공포 속에서 악당들의 포탄을 요리조리 피해 한참 동안을 정신없이 달린다.

얼마를 달렸을까? 무방비 상태인 우리를 그토록 막무가내로 공격해 오더니 하이웨이를 벗어날 즈음이 되자 얄밉게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날이 갠다.

우리 눈앞에 당당하게 서있던 일곱 색깔 무지개 색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면서 그 형체 또한 가운데부터 서서히 사라져 간다.


휴! 살았다~~ 무사히 빠져나왔어...


어린 시절 우리는 왜 해님 옆에 항상 무지개를 그렸을까?

아마도 해님과 친한 친구라 바늘 가는데 실 가듯 함께 붙어 다닌다고 생각했나 보다.

실상은 무지개와 해는 별로 친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적(敵)이라도 되는 양 해와 반대편에 서서 대적하고 있거나 우리가 만난 것처럼 낙뢰와 폭우, 우박과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을 보니 오히려 그 애들과 더 친한가 보다.

무지개가 떠서 그 애들이 따라온 건지 아니면 그들 때문에 무지개가 뜬 건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결국 주인님인 우리를 지켜내느라 때려대는 우박 세례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맞은 흔적으로 차 지붕이 곰보처럼 여기저기 찍히는 중증 상해를 입어 자동차 병원에서 며칠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번개를 맞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외모뒤에 알 수 없는 힘이 숨어 있을 줄이야.

그런 것도 모르고 행운이라고 외치며 좋아하다니...

무지개를 만나면 정말 행운인 건가

우리가 만난 무지개는 행운이 맞나? 궁금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로 돌아오니 그곳에선 아무 일도 없었는지 이상하리만큼 평온하다.

역시 신비주의...

미지의 세계에서 조금 전 우리가 죽을힘을 다해 뚫고 나온 무지개홀의 실체는 쉿!~ 아무도 모르는 무지개만의 비밀이었나 보다.

하지만 너!~ 다 들켰어!

우리는 보았거든 무지개 너의 두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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