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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as Jun 20. 2023

"전 50억 부자가 되고 싶어요" #04

이백 원도 없냐? 니 알아서 해.

"꿈이 뭐예요?"


"50억이요."

"네? 50억이요?"

"네, 그 정도는 벌어야죠 부자 되죠."

"네... 또 다른 건요? 결혼 배우자의 이상형은 뭐예요?"

"동반자요. 같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결혼 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첫날 우리가 했던 대화이다. 그때 '동반자'라는 말에 모든 것이 오케이가 됐다. '우린 통하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영국의 저명한 문학 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낯선 사람들과의 불화>는 윤리학 연구를 주제로 한 책으로 1부 상상계의 고집, 거울단계에서 라캉의 인간 발달 세 단계를 언급하고 있다.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이를 분석하자면, 나는 그때 나만의 상상계에 빠져 있었다. 같은 단어의 다른 의미, '동반자'라는 듣기 좋은 낱말에 내가 새긴 의미들과 그 사람의 정신이 일치했다고 착각했다. 그의 언어는 당당했고,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굉장히 동의적이었다.

 "이거 할까?"라는 내 물음에 그의 대답은 늘 "그래, 그렇게 해."라는 경쾌한 응수. 그건 동의일까? 공감일까? 명령일까? 사실 당시의 명확했던 말들이 나의 내면에선 '이상하다.'라고 그냥 불쑥 찾아 떠오르는 소리들이 있었다. 그러나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 어떤 무엇으로 내 생각을 정리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음의 에피소드를 보면 어떨까?


그의 그 명쾌한 "그래, 그렇게 해."라는 마술적인 언어에 취해 결혼한 나는 두껍고 무거운 커다란 간판이 난데없이 내 가슴을 향에 덮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신없이 몰아치며 결혼이라는 형식에 갇혀 달려왔던 우린 결혼 11년 차에 이사를 하게 됐다. 사실은 우리가 아니라 현 남편 '나르'가 자기 욕망에 따라 결정한 일이 느닷없이 나를 밀어내고 있던 때이다. 부동산 계약을 해야 하기에 그 서류 중 하나인 내 명의의 주민등록초본이 필요했다. 자치 행정사무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주민 서비스로 직장인들도 편하게 주말에 이용할 수 있게 마트 소재에 위치한 사무소를 방문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직원을 통하지 않고서도 빠르게 기계에서 직접 서류를 더 저렴한 가격에 출력할 수 있어 금액이 정말 저렴했다. 이 백 원이면 서류를 뽑을 수 있었는데, 창구를 통하면 700원을 내야 했었나? 그렇다. 나는 이사하는데 소극적이었기에 서류도 준비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르'와 살고 있는 이상 함께 움직여야 했고 이미 계약 날짜를 행해 모든 것들이 진행되고 있었기에 필수적으로 수순을 밟아야 했던 차다.


"자기야. 서류 뽑는데, 주민번호 뒷자리도 출력해야 되지 않아? 진짜 명의자인지 보려고 뽑는 거잖아? 혹시 모르니까 부동산 사장한테 물어봐."

"뭐? 당연히 주민번호 뒷번호는 개인정보인데 노출함 안되지. 가려야지."

"아닌 거 같은데, 자기가 좀 물어봐. 괜히 잘못 뽑으면 일처리 다시 해야 하는데 늦어지잖아."

"그걸 왜 내가 묻냐. 네가 물어라. 당연한걸 뭘 묻냐."

"아니라니까. 잠깐만 내 핸폰이 베터리가 다 끝났어 자기가 좀 물어봐. 자기가 이사하고 싶어 했고 그 사람하고 계속 대화했잖아. 내 핸폰은 베터리도 다 나갔다니까 이것 봐 1%인데."

"네가 좀 알아서 해라."

"참 어이없네. 그럼 그냥 내가 서류 뽑을 테니. 동전 좀 줘. 이백 원."

"이백 원도 없냐?"

"자기랑 마트에 차 타고 왔으니까. 그냥 몸만 나왔거든 빨리 줘봐. 영업시간 다 끝나간다고."

"이백 원도 없~? 동전을 지금 나한테 주라고 하는 거야? 없으면 껌사서 바꿔. 아님, 지하 주차장 차에 다녀와."

"웃기네. 돈 없다고 했잖아. 그리고 지하까지 언제 왔다 갔다 하냐고. 그리고 나 지갑을 안 가지고 왔다고 했지. 빨리 그냥 주라고 서류 뽑아서 빨리 가게."

"야! 그럼 집에 다녀오든가."

"뭐라고? 집에 어케가냐. 걸어서 다녀오란 거야? 이 백 원 가지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 빨리 주라고."

"진짜. 넌 그게 맘에 안 들어 어딜 가면 니 지갑을 가지고 다녀야지 동전 몇 푼도 없으면서, 나한테 다 기대려고 하는 거야. 알아서 해"

"미쳤어? 지금? 그 깟 이백 원 가지고 왜 그래. 급한데. 그리고 난 이사 가기 싫다고 했어. 자기가 벌린 일인데, 서류는 자기가 필요한 거라고!!"

"니 명의잖아 네가 떼. 다음에 혼자 와서 떼든가."

"와 진짜. 답답하네.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말라고. 그 깟 이백 원 가지고."

"그 깟 이백 원? 이백 원 있냐? 땅을 파봐. 이백 원이 나오나. 능력도 없는 것이 말만 많아 가지고. 네가 알아서 해. 니 책임이니까."


결국은 돈을 주지 않겠다며 동전으로 온갖 우세떨며, 권력행사하듯 30~40분간의 실랑이로 서류를 기계로 두 번 잘못 뽑고, 창구를 통해 일처리를 다시 마무리했다.   





우린 그렇게 저 답답한 상태로 30분 이상 주민센터 밖에서 실랑이를 하고 일처리 까지는 근 1시간이 걸렸습니다. 고래고래 소리치면서요. 못 배운 사람들처럼. '나르'랑 있으면 이런 에피소드는 일상이 됩니다. 유치원생보다도 못 한 상태로 자꾸 떨어지는 기분상태. 내 정신에 무거운 벽돌 추를 단 느낌이라 할까요. 결혼생활은 늘 매우 찝찝하죠. '나르'가 사건을 만들어 놓으면 오히려 질척대면서 상대를 괴롭히며 해결을 더디게 하는 성미가 '나르'에게는 재미있는 놀이인 것으로 인식 되어 있었어요.

이 짓은 저에겐 마치, 미친 좀비 귀에 경읽기라고 할까요?'나르'는 분명 저와 맞선 보는 첫날, 썩 믿음이 가진 않았지만 꿈이 커서 나쁠 일 없잖아 하고 넘어갔죠. 그가 50억 자산 부자가 되고 싶어 했었는데 이백 원으로 왜 저러는지 시간 낭비하고 기분나쁘고 그 상황이 너무 싫었어요. 그와 반대로 그와의 일상은 사는 첫날부터 대화자체가 거지꼴이었어요. 대사뿐 아니라 생활하는 것조차도. 그가 생각하는 부자의 습성은 '생활의 씀씀이를 줄여서 투자에 몰두한다.'라는 슬로건 아래서 행하는 근자감이었죠. 도대체 그 알 수 없는 사고의 정체는 어디서 형성된 걸까? 전 늘 대화를 하고 깊이 알고 싶었지만.


"저리 꺼져.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너 선에서 해. 나는 내 일만 하면 되니까."

라며 벽을 단단히 쳐댔기 때문에 그 당시엔 도저히 어찌할 바가 없었어요. 전 그런 '나르'를 보면서 '참, 답답하게 사는구나. 얼마나 어렸을 때 힘들었으면 저렇게 비뚫어졌을까? 마음만 열면 잘 살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은 동정일까요? 연민일까요? 명확히 정의할 수 없었지만, 정확한 마음은 아타까움이었습니다. 여하튼 미련이 남아있었어요. 우리가 만든 두 아이에 대한 어른다운 책임을 함께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제겐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난 준비되어 있으니 '나르' 자기가 더 마음을 열어 과거의 트라우마에 쌓여있지 말고, 현재 우리 가정을 보고 가정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느껴보고 생각하면서 나랑 같이 나아가야지.'라는 외침으로 '나르' 에게 내 마음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나르'는 오로지 자신의 목적과 감정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에게 나의 마음과 생각 따윈 방해물이 될 뿐이라고 '나르'는 주장했습니다. 이 답답한 상황은 저를 강하게 더 압박하며 나의 정서까지 흔들어댔습니다. '나르'의 언어는 너무도 냉정하고 스산했기에, 저의 내면으로 깊이 엄습해 있는 공허감과 불안, 두려움으로 밀려와서, 나의 꿈, 가치관의 영역인 희망의 숲까지 침범하며 숨 쉴 공간까지 교묘히 빼앗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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