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as Jun 20. 2023

나르의 주 감정들 #06

감정의 도가니

감정은 사람의 마음을 읽을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좋은 요소가 된다. 감정은 단순한 동물적인 반응이 아니라 인지판단적인 요소가 있다. 미국의 법철학자이자, 정치, 윤리, 고전학까지 두루 섭렵한 여성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감정의 격동>이라는 책에서 한 인간의 감정의 유아기의 경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감정은 단지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는 생명체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연료가 아니라 이 생명체의 생각 자체의 일부, 고도로 복합적이며 복잡한 일부이다." _서문, 29p. 마사 누스바움은 자신의 어린 경험을 토대로 인간 발달의 가장 중요한 부분 유아기의 감정 형성을 살피면서, 연민의 사회적 중요성에 대해 전개해가고 있다. 그녀는 동시에 가정에서 잘 형성된 감정이 타인에 대해서도 사회적 역량을 잘 펼치기 위해서는 물질적 제반의 안전정인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정서적 안정과, 대인관계이론의 주양육자와의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잘 보호받은 아이는 성인기에 유연한 사고와 타인과의 원활한 교류등을 할 수 있었던 반면 강압적 육아에 의해 내면에 공포, 두려움, 강한 초기 수치심 등의 경험을 갖은 어린아이는 성인기까지 삶에 커다란 불편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결혼 전에 내 또래의 남자들을 만나봤기 때문에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대체로 대화를 거부하고 감정이 격하며, 대화를 요구하면 상대의 격을 낮추면서 대화형식에 더 주목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기 때문에 대화의 내용으로 진입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주 내용은 너의 감정적인 대응에 말할 가치가 없다. 더 논리성을 길러오면 대화를 하겠다. 자기는 바쁘기 때문에 5 문장으로 짧게 말하라. 그리고 여자니까 아이는 혼자 다 키워라. 자신은 돈만 벌면 된다. 아이는 성인 둘이 결혼했기 때문에 1대 1로 부담해야 한다. 등의 21세기 가치에 맞는 듯 안 맞는 듯 가정의 테두리에서는 가정적인 대화가 아니었다. 직장상사와 얘기하는 것처럼 굉장히 계산적이고 냉정하고 야박했다. 직장에 다니면 자주 벌어지는 일이 있지 않은가? 오늘까지 성과를 못 냈어? 아직도 처리 안 했어? 왜 이렇게 실수가 많아?라는 등 아니면, 서류를 이렇게 작성하라고 했는데, 다시 해, 다시 해를 반복하면서 일의 효율성을 낮춘다든가, 혹여나 도움을 드릴까 말씀드리면, 네 생각이 정말 맞아? 비아냥 거리시면서 절대 고치시는 법이 없는 꼰대 상사보다 더한 인간말종급의 인격저질의 상사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화가 안 되기 때문에 커피심부름을 하실 때면 몰래 침을 뱉거나 스푼을 한 번 핥은 후 커피를 저어서 드린다는 선배의 말도 들은 적이 있다. 여하튼 그 사람은 한 집안의 남편이나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 가정 내에서 사장 노릇을 하고 싶어 보였다. 내게는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누가 알리오.


그의 주요한 감정들은 다음과 같다.


그의 감정의 이쪽 면과


따돌리는 것 같지만 스스로 따돌림의 상태로 놓임.

괴롭히는 것을 영웅시하는 심리, 말투가 거칠고, 스스로를 "나는 타노스다."라는 식의 영화평을 암시적으로 내놓았다.

방치 일삼으며 독립하라는 말을 덧붙인다. 방치와 독립이 같은 맥락일까?

비방ㆍ모욕ㆍ모멸ㆍ무시ㆍ개취급 반복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모략을 한다. 모략은 최근 사이비종교의 특징이라고 들었다. 난 그의 말바꿈이 한 번도 거짓말이다라고 인식한 적이 없었다. 이유는 뭘까? 그가 잘 사용하는 논리, 우리가 쉽게 말하는 핑계라는 것을 사실과 곁들어 논리를 잘 맞추면 절대 거짓으로 들리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의 얘기를 들으면 '아하,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하고 자연스럽게 그 시기를 넘어갈 것이다. 그가 잘 사용하는 기술은 자신의 일이라고 주어지는 것으로 느낄 때 교묘히 회피한다. "아 나 뭣 좀 하고, 이걸 해야 하는데."라고 하면 결국 그 일은 내가 하게 된다. 그러다 집안일이 과해져서 제 때에 일을 못하게 되면 한 가지 일에 대해서만 지속적으로 탓하기 시작한다. 여러 일을 탓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렇게 나쁜 행태인지를 알기가 힘들다. 겨우 이 일 하나로만 탓하는데, 하면서 지나가게 된다. 탓할 때는 늘 하는 말이 있다. 나는 회사에서 너보다 더 막중하고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너는 가족하고 일하니 내와 비교도 안되잖아. 나 좀 내버려 둬라고 신경질과 진중한 말을 섞어 하면 그 일도 내 일이 된다. 그러면서 그는 말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어제 한 얘기를 나도 잊어버릴 때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를 믿기 때문이다. 남편이라는 이름을 가정구성원을 누구나 믿게 될 것이다. 그는 늘 반대어였다고 국어의 문법도 잊어버렸냐며 핀잔을 줬다. 지금 보면 그것은 어떤 일을 전도시키기 위한 기법이었다. 보통의 반의어라면, 억양이 일반적인 사용법과는 다르게 쓰인다. 아나 잘했다와 같이 서술어를 반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부정적 뉘앙스의 표현을 덧붙인다거나, 억양을 다르게 하면서 의사를 표출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느낌을 감춘 채로 그래, 잘했어라는 말을 잘 사용하고서는 내가 언제 그랬냐. 그건 하지 마란 소리였다고 핀잔을 준다. 이런 일이 잦아들면서 나의 없던 수치심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이랬다 저랬다 혼돈을 주면서 내 감정이 뭐였는 지 인식의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는 수로 내 말에는 경청을 하지 않았다. 귀 닫기와 까먹기를 번갈아 가면서 늘 나는 업무로 힘들기 때문에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선 혼자 하라고 밀어댔다. 너는 성인 아니냐며 자꾸 말하면서 수준이 낮다는 말로 격을 떨어뜨리며 내 내면의 자격지심까지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서른이 넘어서는 그런 생각을 거의 한 적이 없었는데 어느새 불안과 두려움 등의 감정이 가득 차면서 자꾸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그의 감정의 저쪽 면


그의 겉모습은 위에 나열했던 부정적인 태도들과는 매우 다르다. 그를 맞선으로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나직한 조용함 그리고 외모에서 풍기는 선한 듯한 눈매, 때론 독립되어 있고 자기 보호능력이 뛰어나며 모든 일에 사실적인 표현을 했기에 신뢰감이 느껴졌다. 그냥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툴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 추돌적인 모습이 가끔은 추진력으로 실행력으로 나에게 없는 새로움으로 엉뚱한 발언을 할 때는 창의적으로 보였다. 예를 들면, 굳이 결혼식 할 필요 없잖아. 그건 형식적인 거잖아. 결혼이 중요한 거지, 식이 중요하지 않잖아. 거기에 쓸 돈이 아깝지 않니? 우리 효율적으로 집에 보태는 거 어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금을 산다던데라는 말들이 굉장히 이성적이었다. 너무 두드러져서 모든 형식을 넘어서나?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대화는 왜 이리 경쟁적이었는지? 그런 내용을 친정에 전달하면,  우리 부모님은 엄마 없이 혼자 살아서 얼마나 안타깝니, 알뜰해 보려고 얼마나 애쓰냐며 내 불안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으셨다.


그렇게 나의 감정들은 깡그리 무시됐다. 그리고 이후에 모든 사달들이 일어날 준비를 한 것이다. 초기 결혼생활에 내 고유의 감정을 놓쳐버린 탓으로 나의 판단의 방향을 알려줘야 할 감정들이 스스로 뒤엉퀴고 왜곡되어, 오히려 나를 사지로 몰아넣는 감정의 도가니가 되었다.








이전 05화 임신 5개월, 우리 집 청소해야 50만 원 준다 #0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