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詩]화요일 아침에 보내드리는 서정윤 시인과 전승환 작가의 시 두 편
10월 들어 세 번째 맞는 화요일입니다.
지난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은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았는데요. 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지난 6월에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서울 국제 도서전>이 떠올랐습니다.
후이늠(Houyhnhnm). 올해 서울 국제 도서전의 슬로건입니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 걸리버가 가장 마지막에 여행한 장소로, 무지와 오만, 고집과 무례, 야비와 거만, 비굴과 교활과 같이 사람들의 어두운 면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에는 비겁도 포함되는데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지혜와 인정, 이해와 예의, 배려와 겸손, 격조와 정직 같은 말이 춤을 추는 곳이 아닐까 하는 바람이 담긴 슬로건이라고 합니다. 비겁을 떨쳐버리는 용기와 함께 말이죠.
시월의 세 번째 화요일이자 시가 있는 화요일 브런치 [책담詩]는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는 <2024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지향하는 우리의 마음가짐 가운데, 용기에 대한 시 두 편을 보내드립니다.
홀로서기 1
서정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멀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평생 간직하고픈 시≫(북카라반, 2023)에 실린 서정윤 시인의 작품 <홀로서기 1>에서 부분 발췌했습니다. 진정한 홀로서기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선 둘이 만나 같이 서는 것”임을 역설적 표현으로 일깨워주는데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주는 일, 세상을 잘 살아내기 위해 홀로 설 결심을 하는 일 모두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 아닐까 합니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
전승환
"너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진심 어린 말로
이렇게 이야기해 주면 힘이 날 텐데,
일상에서 듣기 참 힘든 말이지요.
그럼에도 "너는 지금 잘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토닥이고 위로하지만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있는 그대로 멋진 삶이라고.
아무리 얼룩져 보이는 인생이라도
비바람이 치는 삶의 한가운데에 있더라도
이야기해 주면 좋겠습니다.
잘 버티고 있는 거라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꼭 그렇게 말해 주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다고.
전승환 작가의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요>(허밍버드, 2018)에 수록된 수필이자 시입니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잘 지내냐는 안부와 지금 그대로 잘 살고 있다는 위로를 건네는 행복 전도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진심 어린 안부와 위로는 그 사람에게 가닿아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이 될 텐데요.
지금의 나에게 잘 살고 있다는 칭찬과 응원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는 따뜻한 한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시월 셋째 주 화요일 아침에 보내드리는 브런치 [책담詩]는 <2024 서울 국제 도서전> 소개글로 마칩니다.
“모든 이들이 걸리버의 발자취를 따라, 후이늠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세계의 비참’을 줄이고 ‘미래의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대한출판문화협회, 2024 서울 국제 도서전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