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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Oct 22. 2024

가득 채우고 싶은 마음의 시

[책담詩]화요일에 보내드리는 나태주 시인과 이근대 시인의 시, 두 편  


10월의 넷째 화요일 아침입니다. 


지난 주말 훅 떨어진 기온으로 설악산에 첫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리는데요. 내일은 가을에 맞는 마지막 절기이자 서리가 첫 얼음으로 변한다는 상강(霜降)이 찾아옵니다.  


상강 즈음에는 가을이 깊어진 만큼 단풍이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붉게 물든 단풍 위에 소복이 쌓인 하얀 눈이 만들어 낸 풍경이 얼마나 장관이었을지 상상만으로도 미소를 자아내게 되는데요. 


자연의 아름다움은 머릿속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마음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흐리고 비오는 하루가 될 것 같은데요. 자연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조용히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포근하게 가득 채워 줄 시 두 편 보내드립니다.   



마음을 비우라고?

나태주


마음을 비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몸에도 좋고

마음에도 좋다는 충고를 듣는다


하지만 나는 비우기보다는 채우라고 말하고 싶다


채워도 넘치도록 채우라고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으로 차고 넘치도록

채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싫어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미워하는 마음도 줄어들고 의심하는 마음 또한

조금씩 줄어들 것이 아니겠나……


채우고 채우다가 그래도 빈 곳이 있으면

아침 햇살로 채우고 저녁노을로 채우고


새소리 바람 소리로 채우고

풀꽃 향기로 가득 채우는 것이 더욱

좋은 일 아니겠냐고 말하고 싶다.



나태주 시인과 한서형 향기작가가 협업으로 펴낸 향기 시집 ≪너의 초록으로, 다시≫(더블북, 2022)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걱정과 불안이 키워드가 된 시대를 사는 독자들에게 시인은 비우기보다 가득 채우라고 말하는데요. 


좋아하는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 아침 햇살과 저녁노을, 새소리와 바람 소리 꽃향기. 따뜻한 사람의 정과 자연의 경이로움으로 가득 채워진 마음에 걱정과 불안이 들어설 자리는 없을 듯합니다.              



마음자리

이근대


속이 좁은 사람은 

조그마한 일에도 화를 내지요.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이유는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속이 넓은 사람은

큰일 앞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지요.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는 건


그 사람이 성자라서가 아니라

마음의 평수를 넓게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여기저기서 비난받고 상처받으면

마음이 점점 좁아져요.

결국은 소심해지고 의기소침해져

남들에게 속 좁은 사람으로 낙인찍히지요.


그럴수록 마음의 평수를 넓히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게 앉았다 갈 수 있도록

마음자리를 데웠으면 좋겠어요.


꽃 한 송이 피어날 수 없을 만큼 

마음자리가 좁다면


영원히 고립되고 외로울 수밖에 없어요.


아무도 오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자리가 차갑다면


싸늘한 바람만 머무는 겨울 들녘처럼 살 수밖에 없어요.


오늘부터 마음의 평수를 넓히고

마음자리를 예쁘게 가꾸었으면 좋겠어요.



이근대 시인의 감성 시집이자 에세이 ≪너를 만나고 나를 알았다≫(마음서재, 2020)에 들어있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시인은 “무엇보다 눈을 감으면 영혼이 맑은 시간과 교감할 수 있어서 참 좋다.”라고 소회를 밝히는데요.    


풍요로운 인생. 여유로운 삶은 땅의 평수를 늘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수를 넓힘으로써 가능함을 깨닫게 됩니다. 요즘 국화가 한창입니다. 꽃도 향도 부족함이 없는데요. 귀갓길에 꽃집에 들려보면 어떨까요? 국화 한 다발이면 마음을 채우기에 넉넉할 듯합니다.  


화요일에 보내드리는 브런치 [책담詩]를 마칩니다.


by eunjoo [시가 있는 화요일 브런치 연재 [책담詩]]

[사진출처: © Surprising_Shots,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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