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詩]화요일에 보내드리는 권태응 시인과 김영랑 시인의 시 두 편
지난 주말, 창덕궁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는데요. 부지런한 친구 덕분에 비원으로 불리는 창덕궁 후원도 거닐어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 날씨도 화창해서, 따뜻한 봄 볕을 맞으며 후원 곳곳을 둘러보면서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봄을 온전히 느낀 하루였습니다.
3월에 보내드리는 첫 번째 [책담詩]는 시집 ≪매일 예쁜 시 한 편≫(가위바위보, 2024)에 들어있는 시 가운데 두 편을 뽑았는데요. 우리말이 지닌 아름다움과 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권태응 시인의 <앵두>와 과 김영랑 시인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입니다.
권태응
[p.16, 매일 예쁜 시 한 편, 가위바위보, 2024]
빨강빨강 앵두가
오볼조볼 왼 가지
아기들을 부른다.
정다웁게 모여라.
동글동글 앵두는
예쁜 예쁜 열매는
아기들의 차질세.
달궁달궁 먹어라.
권태응 님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아주 짧은 생을 살다 가셨는데요. <감자꽃> 시인으로 불리는 그의 작품에는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운율이 잘 살아있습니다. 30편의 시가 담긴 유작 시집 <동요집 감자꽃>(1948)에서 시인의 시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데요.
자연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시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에서 '작은 열매 따위가 많이 매달려 있는 모양'을 표현한 '오볼조볼'은 '조랑조랑'의 충청도 사투리인데요. 토속적인 것에 대한 사랑 또한 깊은 시인으로, 충북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분입니다.
김영랑
[p.26, 매일 예쁜 시 한 편, 가위바위보, 2024]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영랑 시인은 1930년대 <시문학> 동인에 참여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시인 또한 길지 않은 생에서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영랑시집>(1935)에 담긴 초기 시들은 우리나라 순수시의 절정을 보여준다는 문단의 평가를 받는데요.
자연과 삶에 대한 애정을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 서정성 짙은 고운 운율로 표현한 초기 작품들은 저절로 흥얼거리게 됩니다. '살포시'란 표현 하나만으로도, 정말 봄이 살짝 다가와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는 모습이 연상되는데요.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봄의 정경을 이보다 더 잘 살려낸 시는 없을 듯합니다.
햇발 좋은 봄날 산책길에 김영랑 시인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을 노래하며 걷곤 했는데요. 6월이 되면 권태응 시인의 <앵두>를 흥얼거리며 산책하게 될 것 같습니다. 화요일에 보내드린 3월의 첫 번째 <책담詩>를 마칩니다.
봄이 깊어질수록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질 텐데요. 이번 봄에는 고궁으로 봄나들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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