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쓰린 공원, 한자를 한국어로 읽으면 율림공원, 즉 ‘밤나무 숲 공원’이라는 의미지만, 이 공원에는 밤나무가 없다고 한다. 밤나무 대신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연상되는 꼬불꼬불한 소나무가 가득하다. 소나무 가득한 밤나무 숲이라는 이름을 지닌 공원이라니, 뭔가 시적이지 않나.
다카마쓰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장소가 공원이라는 것이 다카마쓰는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밋밋한 도시라는 뜻일지, 리쓰린 공원이 그만큼 특별하다는 뜻일지 궁금해하며 발을 들였다.
후자였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다카마쓰를 떠나 교토로 출발하는 기차 시간이 빠듯하여 공원을 깔짝대듯 둘러보고 서둘러 나올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한참 동안 여유 있게 공원을 서성였다. 중간중간 꽤 많은 비가 쏟아지는 흐린 날이어서 인적이 드물었고, 비 덕분에 초록은 한층 생생했다. 빗소리를 벗 삼아 조용하고 평화로운 공원을 내 것 마냥 돌아다녔다.
세 번째 방문했을 때 겨우 기쿠게쓰테이(掬月亭)에서 차를 마실 수 있었다. 당나라 시의 한 구절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데 ‘두 손으로 물을 뜨니(掬) 달(月)이 손안에 있다’는 뜻의 정자(亭)라고 한다. 다시 한번, 운치가 폭발한다.
정원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다실인데, 두 번째 방문 때 비 내리는 정원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싶었으나 영업이 끝난 시간에 도착하여 주변을 기웃대며 겉만 구경하고 말았다. 세 번째 방문 때 현금이 거의 없는 상태라 이번에도 못 들어가려나 조바심을 내며 물으니 다행히 카드를 받아 준단다.
녹차와 말차 중 선택을 하면 차에 곁들일 과자가 함께 나온다. 사람이 둘이고 차 종류가 둘이니 하나씩 시켜보았다. 같이 나온 과자 포장이 낯익다. 다카마쓰역 근처에서 눈에 띄는 화과자 집이 있길래 들어가서 이것저것 골랐더니, 직원분이 리쓰린 공원이 어쩌고 뭐라 뭐라 말씀을 하셨는데, 외국어가 서툰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 다 알아듣지도 못했으면서 그렇군요, 끄덕, 아하, 끄덕, 무한 긍정을 했었다. 리쓰린 공원 다실에 과자를 납품한다는 말이었겠구나… 어긋난 시간 속에서 퍼즐처럼 맞춰지는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일본어 공부를 해서 실시간으로 알아들을 생각을 좀 하라고…
말차는 입에 썩 맞지 않아 엄마 쪽으로 살포시 밀어 넣고 녹차를 마시는데, 엄마도 마찬가지였는지 녹차 쪽으로 자꾸 손을 뻗으신다. 말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난하게 녹차를 시키시라. 차를 다 마시고 다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나룻배가 지나가는 모습도 보인다.
리쓰린 공원은 남쪽 정원, 북쪽 정원으로 나뉘는데 각각 산책 소요시간이 60분, 40분이라고 하니 정원의 규모와 기쿠게쓰테이의 영업시간, 자신의 체력 등을 잘 계산하여 동선을 짜는 것이 좋겠다.
리쓰린 공원에는 (인공)산, 연못, 온갖 종류의 나무와 꽃이 있는데 심지어 작은 폭포도 있다. 이 동네에 산다면 폭포 앞에 자리 잡고 앉아 하염없이 경치를 바라보거나 책을 읽어도 좋겠구나, 생각했다.
계절마다 달라질 공원이 모습이 궁금하다. 벚꽃과 단풍이 한창인 시기에는 야간 라이트업도 열린다는데, 생각만 해도 너무 좋을 것 같다. 다음번에는 리쓰린 공원의 밤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사누키우동 우에하라야 본점이 리쓰린 공원과 무척 가깝다. 운 좋게 대기 없이 바로 들어가 우동을 먹을 수 있었다. 리쓰린 공원은 매우 넓고, 오래도록 구경하고픈 경치가 가득하니 우동으로 배를 채우고 들어가는 편이 좋겠다.
**매표소 근처에 짐 보관함이 있으니 무거운 짐은 꼭 집어넣고 공원에 들어가자. 내 몸뚱이만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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