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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라 Jun 17. 2024

문학의 법: 문법으로 법문에 들기

오늘의 소설: 프란츠 카프카, 「법 앞에서」

모든 사람은 법을 추구합니다.
―프란츠 카프카, 「법 앞에서」


우리는 법 앞에 서 있다. 「법 앞에서」의 주인공은 ‘모든 사람’이다. 그는 법을 추구해 법의 문 앞을 서성인다. 문학을 추구해 문학(소설) 앞에 서 있는 우리처럼.


법(法)이란 무엇인가? 그 한자를 보자. 法자는 水(물 수)와 去(갈 거)로 구성돼 있다. 물이 간다, 가면서 길을 낸다. 그 물길은 사회적 ‘법률(法律)’이 되기도, 일을 해내는 ‘방법(方法)’이 되기도, 불교의 ‘법(Dharma)’이나 기독교의 ‘로고스(Logos)’가 되기도 한다. 불교의 다르마는 최고 진리요, 기독교의 로고스는 신의 말씀을 뜻한다. 이렇게 세상의 규칙이자 작업의 방편이며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의 무엇이 바로 ‘법’이다.


그렇다. 우리는 법을 구한다. 그래서 법 앞에 있다. 문학 앞에 있다. 소설 창작 강의를 듣기 위해 먼 길을 왔고, 창작 에세이를 읽기 위해 지금 이곳에 있다. 문학의 ‘법’이란 무엇인가. 문학의 규칙이자 그것을 읽고 쓰는 방법, 그리고 그 참여자가 이를 통해 통달하려 하는 것. 이를 ‘문법(文法)’이라 하자. 이는 Grammar라기보다는 ‘문학의 법’을 줄인 말로 보자.


문학에도 법이 있다. ‘작법’이나 ‘독법’ 같은 말에서 알 수 있듯, 소설을 짓는 데도, 읽는 데도 법이 있다. 그 비법 혹은 묘법이란 무엇인가? 어떤 규칙 혹은 방법을 알아야 소설을 잘 읽고 쓸 수 있는가? 세상에는 수많은 작법 책들이 있지만 작법서가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수로 소설을 썼는가?


그 법을 나누고자 강의를 열었다. 2024년 6월, 대학 봄학기 종강과 함께 뜨거운 여름 학기가 시작됐다. 서울 두 곳에서 열리는 <초단편소설 쓰기와 창작의 지혜> 강의와 함께, 웹상에 『초단편소설법』이라는 연재 브런치북을 열었다. 이 브런치북은 강의 교재이다. 내가 이 강의를 만든 이유는 언급했듯 ‘법의 공유’에 있다. 문법으로 법문하는 것이 바로 ‘창작의 지혜’다.


그 지혜를 말과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나는 스승도 작법서도 문우도 없이 철학에서 문학으로, 즉 로고스에서 형상계로 내려왔는데, 그 ‘법(Logos)’은 추상적인 동시에 구체적인 것이고, 비물질적인 것이면서 생생한 물질이었다. 서론이 길었다. 작가 생활 십여 년간 내가 터득한 <문학의 법>을 단도직입으로 말한다. 그것은 바로,


<그냥>이다.


그냥

1. 그 모양 그대로

2. 그 상태로 내처

3. 아무 조건 없이


사전에 등재된 ‘그냥’의 뜻이다. 소설 독법 및 작법은 위 세 가지 설명에 모두 담겨 있다. 소설을 [있는 그대로/하는 김에 끝까지/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읽고 쓰면 된다. 이것이 ‘그냥’이다. 나이키의 유명한 슬로건을 빌리면 “Just Do It”이 된다. 여기서 키워드는 Just, 그냥이다. 그냥 읽고 그냥 쓰라. 그러면 그냥 나온다. 그냥 나온 그것이 ‘작품’이다. 이게 나의 소설 작법이다.


뭐 이런 법이 있는가? 다시 「법 앞에서」를 보자. 이 소설 속 인물은 법/문 앞을 서성인다. 부처의 법문을 기다리는 중생처럼, 그는 공물을 바치며 법의 문가에서 뭔가를 기다린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인물들처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는 왜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는가? 법을 추구해 그 앞에 이르렀는데도 왜 문밖에서 맴도는가?


그 안엔 다른 세계, 다른 내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을 안다. 그래서 들어가지 못한다. 두렵다. 어렵다. 생각이 많다. 한마디로 ‘그냥’이 안 되는 것이다. 그는 그냥 들어가지도, 그렇다고 그냥 떠나지도 못한다. 그 대신 기다린다. 기다림으로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평생이 간다.


왜 아직 쓰지 못하는가?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당신이 기다리는 그것은 언제 오는가? 영원히 오지 않을 수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

그냥이다.

그냥 써라. Just Write It.


우리의 수업은 ‘그냥’에 이르는 도정이다. ‘그냥’이 문학의 법이고 창작의 비법이기 때문이다. 그 문법을 터득하면 법문이 열린다. 그런데 다시 소설을 보자. 「법 앞에서」는 말한다. “법으로 들어가는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그렇다. 법의 문은 닫힌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열린 문이었다. 닫힌 것은 다만 인간의 마음뿐.


닫힌 마음을 여는 법도, 열린 문으로 들어가는 법도 하나다.

그냥, 하기. 이것이 법이다.

어떻게 그냥 할 수 있는가?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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