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3주차. 9월 들어 한 일이 강의와 집 정리뿐인데 추석이라 하여 부천(부모님 집)에 갔다가 일찍 돌아와 집 정리를 대강 끝냈다. 2004~2024년 현재까지 20년 동안 내 거처의 변천 과정을 돌아보니 참으로 큰 (존재의) 변화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2004년 독립해 학교 앞 고시원, 원룸, 오피스텔에 차례대로 머물다가 2010년 천보산 밑 아파트에 들어가 10년 동안 수도승처럼 살았는데, 정신적 자궁의 상징이었던 그 ‘천보산방(天寶産房)’에서 내가 낳은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래서 새 이름과 새집을 얻어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긴 시간 한곳에 머물러 있던 그 시절이 끝나자 이상하게도(나의 의도나 계획과 다르게) 2년마다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계속해서 새 아파트로.
2020년 이편한세상 신축, 2022년 대광로제비앙 신축을 거쳐 2024년 현재 또 신축 아파트에 입주해 세 번 연속 현관문 포장재 뜯는 수고를 하게 되었다. 이사 후 아직 안 뜯었지만 이제 문짝을 뜯고 등기만 치면 새집 정리가 마무리된다. 20년간 집을 옮길 때마다 존재의 변화를 느꼈지만 이번 입주는 실로 다른 ‘차원’에 들어선 느낌이다. 이번 이사 전까지가 실질적인 ‘천보산방’의 20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그 ‘천보(天寶)’가 성인으로 태어난 건지도.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 나이를 20살쯤 적게 보는데, 독립해 산 지 20년 동안 내가 봐도 외모나 건강상의 변화가 거의 없다(건강은 오히려 더 좋아진 것도 같다). 그동안 아픈 적도 없었고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없는데 시간이 지나도 젊음의 표징들이 사라지지 않으니, 남다른 삶을 살아온 20년간 내 몸이 노병사의 회로를 초월하는 어떤 길을 체득한 건지 또 누가 알겠는가.
사대성인 소설 시리즈 세 번째, 공자 소설이 <문학나무> 가을호에 발표되었다. 나온 지 3주쯤 지났는데 그동안 이사와 개교, 개강 등으로 바빠서 이제야 소개글을 올린다. 봄에서 가을까지 붓다, 소크라테스, 공자 소설까지 나왔고 이제 그리스도 하나 남았는데, <사람의 아들> 예수로 시작해 예수로 끝나는 이 여정 또한 새로운 어떤 것의 시작이 되리라는 예감이다.
공자 소설 3부작은 <논어>의 구절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지지자(知之者; 아는 자)」「호지자(好之者; 좋아하는 자)」「낙지자(樂之者; 즐기는 자)」로 구성되어 있다. 뭔가를 아는 것/애호하는 것/낙에 빠지는 것의 ‘그림자’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추석 당일인 오늘, 슈퍼문 보름달이 떴다. 지금 내 앞에 달이 동그랗게 떠 있어 소원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