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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이 Oct 26. 2023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1. 사랑을 위하여

코스모스 같던 이십 대였다. 불어오는 대로 머리를 떨어뜨릴 정도로 흔들리는 것은 순리임을 모르던 때에는 얼마나 인생이 고달프던지. 그럴 때마다 나를 지켜주는 몇 가지 장치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힘이 빠질 때면 주머니에서 꺼내먹는 사탕 같은 영화가 있는가? 나에겐 그런 영화가 있다.


줄리아 로버츠의 커다란 입이 양 옆으로 벌어지면서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로맨틱하다는 감상을 느낀다. 이 배우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귀여운 여인]에서의 그녀는 어리고 맑았지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속의 30대 여성 리즈는 입가에 굵은 주름을 가진 사회에 찌든 여성이었다.

나를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나 꿈같은 결혼생활도 해보았고 오랜 친구와 인생을 이야기하며 나이 들어가는, 좋은 평판을 가진 저널리스트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또 다른 자아는 자꾸만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아이를 낳는 것은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것과 같다고 말하던 친구는 혼란스러워하는 리즈에게 다 그렇게 사는 거라며 다그쳤다.

이십 대 초반에 이 대사를 처음 보았을 때는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영화 속 그 친구처럼 무심한 남편을 감당하며 아이를 위해 인생의 남은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제는 저 대사를 '고되지만 행복한 그 세상이 열리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스스로를 마주하게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리즈는 이때 큰 소리로 친구에게 외쳤다.

"나는 남자를 만나느라 세월을 다 흘려보냈어. 게다가 나는 분명히 삶의 열정이 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오늘 점심에 무얼 먹었는지도 모른다고!"

정말 다 그렇게 사는 걸까. 리즈처럼 굴면 안 되는 걸까. 아무도 내게 와 말하지 않았지만 흔들리고 있던 시기의 나는 저 장면을 보며 위축되기도 했다. 나 또한 연애를 뺀 나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스스로를 잘 모르던 때였다.


그녀의 남편은 끝까지 그녀를 붙잡았지만 이미 질려버린 그녀의 맘을 되돌리지 못했다. 크게 소리치고 계속해서 떼를 쓰는 남편을 보며 혀를 내두르던 그녀에게 젊고 아름다운 청년이 말해주었다.

그는 상처받아서 그런 거라고. 사랑해서 상처받아서 공격적으로 변한 거라고. 

그녀는 무너져가던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그 어떠한 생각도 외면하기를 선택했다.


이탈리아, 인도 그리고 발리를 순서로 리즈는 본인을 다시 찾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오로지 풍만한 식감과 맛을 만끽하기 위해 떠난 이탈리아에서 한 남자에게 짧은 이성적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제는 퐁당 사랑에 빠져버리는 소녀가 아니라며 자신만을 위한 예쁜 속옷을 사 입어본다.

열적적이고 삶을 사랑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말한다. 

"돌체 파르니엔!" 달콤한 게으름!

열심히 일한 자. 쉬어라? 이런 바보 같은 말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그렇게 외치지 않아도 당연히 멋지게 빈둥거릴 줄 알아야 하고, 모든 손짓과 표정을 다 이용해서 내 감정을 격렬하게 표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보며 리즈는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여행 중 만난 친구들과 식사를 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주제어를 말해보자는 놀이를 했을 때 당장 마음에 드는 단어를 찾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인간의 온기를 느꼈던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은 리즈에게 몸 안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을 것이다.


인도에 간 이유는 아름다운 청년의 스승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기도를 실컷 드리며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했지만 그녀는 사실 뉴욕 대도시에서의 삶이 익숙한지라 눈만 감고 가만히 있는다고 그러한 심상을 가질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기도하는 방 인테리어를 어떻게 꾸밀지만 떠올라 괴로운 와중에 그곳에서 만난 고약한 남자는 리즈를 계속해서 몰아붙인다.

"너 그럴 거면 왜 왔어? 공주님 놀이하러 왔어? 생각을 더 파고들어서 너 안을 솔직히 들여다봐야지."

그 고약한 남자는 리즈와는 또 다른 이유로 사랑하는 가족도 삶도 잃은 채 기도의 방안에 스스로를 숨기고 있었다.

리즈는 같이 수련을 하는 인도 소녀의 결혼식에 초대되었고, 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저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 소녀에게 그래도 행복할 거라고 축복해 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영화는 리즈가 스스로를 용서하는 과정을 그녀와 전 남편의 결혼식 장면을 떠올리며 현재와 교차편집에서 연출했는데, 지는 노을에 그 부드러운 음악에 실크처럼 서로를 감싸 안은 두 사람이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용서는 내가 하는 것이구나. 누구의 말도 상황도 아닌 용서는 내가 하는 것이고, 상대가 아니라 나를 용서했을 때 비로소 그것을 묻어두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거구나. 

나는 이 장면에서 매번 눈물을 훔친다.


발리는 전에 취재를 위해 만났었던 주술사 카투를 다시 만나기 위해 정한 마지막 행선지였다.

카투는 그녀에게 명상과 교육 루틴을 제공했고, 그녀는 더욱 안정적인 생활을 만들어 갔다. 매력적인 남자가 나타나 우리 아무 생각 말고 그냥 함께 하루를 보내자고 해도 그녀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의 삶에서 사랑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인간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존재라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그저 자연 속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려와 그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닐까.

새로 다가온 한 남자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삶의 고갯길을 넘어 보았기 때문에 인생의 노곤함도 알고, 또 새로운 설렘 앞에서는 몸을 떨며 달려 나갈 줄 도 아는 남자였다.

리즈는 행복을 느끼면서도 도망쳤다. 어떻게 찾은 균형인데, 당신 때문에 다시 균형을 잃을 순 없다며 예정된 돌아가야 할 날짜에 나는 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소리쳤다. 그 남자에게 상처되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이 가장 슬퍼 보였다. 또다시 사랑에 상처 입은 어린 소녀 같은 얼굴이 된 리즈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 인생이란 사랑이란 결국 상처로 인해 또 다른 상처를 만들다 끝나는 것인가.


그녀는 카투를 찾아가 그동안 고마웠다며 행복해졌다고 말하지만, 이미 삶의 고개를 백번쯤은 넘은 노인은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오 리즈. 때론 사랑 때문에 균형을 깨는 것이 균형 있는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해."


그녀는 그에게 달려갔고, 그는 여전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보며 가슴에 품은 게 많은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내 주제어를 정했어. 아트라베시아모. 우리 함께 건너자는 뜻이야"


영화의 말미에는 새로운 가정을 꾸려서 행복하게 사는 전 남편, 리즈의 친구, 드디어 성공하게 된 아름다운 청년 등 여러 등장인물들의 현재도 함께 비춰준다.

내 짧은 글에 자칫 너무 해피엔딩에 집중된 이야기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수 도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그런 감상을 느끼지 않았다.


나는 연애가 잘 안 풀리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을 때,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을 때마다 이 영화를 꺼내 보았다.

리즈 아니 줄리아 로버츠의 커다란 이목구비는 기쁨도 슬픔도 너무나 잘 담아서 그녀가 웃으면 나도 웃었고 그녀가 울면 내가 꼭 안아주고 싶었다.

어쩌면 누군가 나에게 해주길 바랐던 그 관심을 그녀를 보며 풍겼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전처럼 이 영화를 자주 꺼내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음 안에 강렬하게 남은 그 대사 몇 줄이 나를 다시 일으키게 하고 더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것은 여전하다.


영화 속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 전남편과 이별을 하며 리즈는 아름다운 청년과 잠시 사랑에 빠진다. 그 둘의 모습을 보고 친구의 남편은 "키우는 개랑 주인은 닮는다."는 못된 농담을 한다.

그리고 리즈는 알게 된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많은 것을 내어주고 닮아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사랑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는 것을.

많은 연애 초보들이 겪는 실수 중 하나가 이런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그랬었고 뒤늦게 찾아오는 슬픈 결말은 사랑을 더 미워하게만 할 뿐, 정작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잘 모르고 다음 연애를 시작했다.


나다움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맞춰져 간다는 것은 한 그릇에 담길 수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둘은 섞일 수 도 없어서 한쪽씩 기울기만 했고 그 중간을 찾는 일 또한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의식하면 할수록 비겁해지는 문제라 결국 자신 또는 상대를 미워해야 끝나기도 한다.

리즈처럼 돈다발 들고 세계 곳곳을 누벼서 답을 탐험할 수 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사탕 같은 영화나 책을 여러 개 만들어 두는 것이다.

한동안은 그저 외우듯 알고만 있던 것들이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진짜 알게 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나다움과 상대에 맞춰 닮아가는 것의 저울질을 멈춘 상태이다. 그동안 열심히 먹었던 사탕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찾아왔고, 저울질을 하려는 그 목적을 잃지 않았을 때에야 멈출 수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같이 길을 건너기 위함이었다.

맛있게 먹으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하루를 쌓아나가고 희망을 기도하면서 서로 더 인간적인 성장을 돕고 그저 사랑하기 위해 사랑한다면, 골목길도 삶의 중대한 선택도 최대한 오래 같이 건너갈 수 있지 않을까.


이십 대의 내가 주목한 부분은 여성의 삶, 사랑에 빠진 여자의 마음, 다시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 등 이 주된 흥미를 주었다면, 지금의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은 리즈가 이탈리아에 도착해서 아름다운 도심 풍경을 바라보며 혼자 내레이션 했던 장면이다.

위태로울 정도로 격정적인 바이올린 소리를 따라 카메라는 그녀 주변을 크게 돌며 새로운 세상에 그녀가 왔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속담을 소개했다.


[ 한 남자가 신에게 기도했다. "오 주여. 제발 제발 복권에 당첨되게 해 주세요."

신은 그에게 말했다. "이 사람아. 제발 제발 복권부터 사라."

나에게는 세 개의 티켓(비행기 티켓)이 있다. ]


영화 속 리즈는 멈춰 있지만, 나는 변한다. 나는 이제 내가 가진 티켓을 보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셀 수 없지만 이 영화를 족히 백 번은 보았을 것이다. 어느 날의 리즈는 나를 감동시켰고, 어느 날의 리즈는 나를 좌절시켰다. 또 한 날은 거의 공감이 가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삼십 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두려움과 회피 증세가 남아 있었다. 사회에 속한 시간에 비례하여 일적인 능력치는 늘고 있었지만 자아측면에서의 안정감은 어느 정도로 없는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수준이었다.

영화에는 내가 당장 떠올린 것 외에도 다양한 '사람 이야기'가 있다. 볼 때마다 또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작지만 깊은 공감을 불러오는 사람 그 자체의 이야기 말이다. 

남편을 처음 만날 때 즈음 나는 '너무 중요해서 오히려 외면하고 있던' 자아의 불투명함을 이 영화를 통해 위로받고 있었다. 그때는 그저 의지하는 영화였지만, 지금은 감히 내 인생의 지침서라고 말하고 싶다.



나부끼는 코스모스 같던 이십 대가 지나갔고, 사실 나라는 꽃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코스모스로 피어 흔들리고 있지만 그저 때론 균형을 잃는 것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알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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