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을 위하여
사람에게 느끼는 호감은 매번 어디서 나올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나와 정 반대로 행동하는 모습에 눈길이 가기도 하고, 오히려 익숙한 편안함에 끌려 가까워져 보니 닮아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감정 중 오래도록 간단하게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일하는 동안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다. 하루 중 유일하게 대감집을 탈출하여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노비의 마음으로 점심시간을 한껏 만끽하는 것은 동일하나, 배불리 먹고 나면 밀려오는 식곤증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아침부터 발을 질질 끌고 출근해서 커피를 수혈해 가며 오전을 버티고 나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번번이 착오였음을 깨닫고 오후에도 카페인을 두 배 세배는 흡수하는 것이 현실 직장인의 참된 모습이 아닌가.
게다가 여자들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과한 식사 후 그 불뚝 튀어나온 배는 오후 내내 내 바지와 씨름을 하면서 '불편하다 불편해'라고 계속해서 본체에게 항의를 해댄다.
여기다 나의 타고난 예민함도 한몫을 하여 이 다양한 이유들로 나는 일하는 동안 맘 놓고 식사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 짧은 60분 남짓에 매번 영혼을 불태우며 맛있는 메뉴를 찾아 한 그릇을 다 비워내는 사람들을 보면 낙천주의자일까 어떻게 저렇게 먹는 것에 집중할 수가 있을까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의 남편과 사내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남편의 회사생활을 지켜보며 이중적인 감정을 가졌었다.
그는 상사의 예쁨을 독차지하고 후배들에게는 다소 엄한 사람이었는데 점심시간만 되면 늘 그와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위아래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그의 곁에 모여드는 것이 참 신기했다.
어디 맛집이 생겼다더라, 진짜 맛집 아는 곳이 있다, 여기가 진또배기다 한참을 열띤 토론을 하다가 신나는 발걸음으로 무리가 빠져나가면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방금까지 전체회의를 했고, "나태지옥에 빠진 놈들아. 어서어서 움직이라고!" 옥황상제의 불호령이 떨어졌는데 겨우 부대찌개 맛집에 가기 위해 차로 왕복 30분은 가야 하는 여정을 떠나다니.
무리 중심에 있는 그를 보며 속 편하게 사는 사람 같다고 작게 한숨을 쉬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호감을 받는 그가 부러웠다.
그와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데이트를 위해 밥을 먹으러 가면 나는 매번 그를 구경하고 있었다.
미식가라는 표현이 맞을까. 그것보다는 아름다운 선율에 몸을 떨며 곡을 음미하는 음악가 같다고 생각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보통 밑반찬이 먼저 나오는데 그는 밑반찬을 먹지 않았다. 입맛을 다시면서도 꾸역꾸역 참고 물로 입을 헹구며 버티는 것이다.
그는 미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싶다는 전문가스러운 말을 하며 그냥 이것저것 집어먹는 나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기다리던 메인 요리가 나오면 바로 수저를 들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요리조리 사진을 찍어댔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어 한가득 음식을 퍼고 그 위에 조합이 좋은 반찬을 올려서 그 한 입 거리를 또 사진으로 남겼다.
그를 멀뚱멀뚱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게 뭐 하는 거지. 여기 맨날 오는 순댓국집인데 매번 저렇게 기쁠까.'
그는 한 입 한 입 입에 넣을 때마다 눈을 감고 미간을 구기며 감동을 느꼈다.
클라이맥스는 음식을 반정도 먹었을 때이다. 나는 이제 그가 진짜 예술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 선생님께서는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는 고개를 양 옆으로 흔들며 머리를 부여잡았고, 이렇게나 맛있는 순댓국을 표효하듯 노래하는 그를 보며 결국 너털웃음이 흘러나왔다.
"진짜. 진짜 이 집은 맛집이야. 어쩌면 이렇게 맛있지?"
나는 그가 저 큰 등치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눈으로 보며 혼자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매일 함께 식사하고 싶어서 줄 서는 사람들이 있고, 그와 밥을 먹으며 예술을 느끼는 여자친구도 있고, 그는 먹을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그에게 술 한잔 하자는 연락이 오는 일 또한 아주 흔한 일이었다.
나는 먹을 복은 곧 사람 복을 뜻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성격이 좋아서 인복이 많고, 그래서 같이 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반대로 나는 나와 식사하는 사람들의 소감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유형이었다.
팀원들과 식사를 하러 가면, 아무래도 다수의 속도를 맞춰야 한다. 그래서 조금 급하게 밥을 먹다 보면 평소 먹던 양보다 조금 더 먹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못 먹을 양을 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팀장님은 내게 의외라고 말했다.
"흰둥이 대리는 새 모이만큼 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밥을 많이 먹네."
그 말을 들은 나도 의외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보이는 사람인가 생각하며 내 이미지는 어떨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반대로 또래 동료들과 편안하게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는 내가 가고자 하는 속도로 식사를 했다. 일에 과몰입하다가 음식이 눈앞에 차려지면 당장 먹는 행위보다는 쉬는 행위가 더 절실하다.
"또 또 새 모이처럼 먹는다. 언니는 너무 안 먹어."
그냥 오늘 하루 입맛이 없을 뿐인데. 나는 변명하듯 대답했다. "나 집에서는 많이 먹어. 진짜야."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남자친구만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는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일반인 출연자들이 나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는데, 패자부활전을 준비해야 하는 다른 팀들과 달리 미션에서 우승한 팀은 PPL을 위해 어떤 브랜드 고깃집에서 회식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워낙 티브이를 안 보는 나는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생기면 딱 그 프로그램만 보는 편인데, 여기 나오는 인물들이 매력 있어서라기보단 주제가 흥미로워서 보던 프로였다.
카메라 앞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고깃집 칭찬을 하며 맛있게 먹어야 하는 것이 일반인들에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저 자리에 앉아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한 마디도 못하고 두세 점 겨우 먹다 수저를 내려놓았을지도 모른다.
지난 회차동안 눈에 띄지 않던 한 참가자가 고기를 참 맛있게 먹었다. 그냥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정말 즐거워하며 쌈을 정성스럽게 싸서 입에 넣었고, 미간을 구겼지만 그것은 단연코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쌈 좀 맛있게 싸 먹는다고 관심도 없던 사람이 눈에 들어온 것도 신기한데, 갑자기 꽤 사람이 좋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쑥 내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역시 잘 먹는 사람이 예쁨 받아."
옆에서 같이 시청하고 있던 남자친구는 노릇노릇 구워지는 고기에 혼이 빠져서 내 말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그를 보며 이래서 돈 들여 PPL 하는구나 싶었다.
생각해 보니 직장에서 가장 예쁨 받는 직원은 잘 먹는 직원인 것 같다.
일 잘하는 사람, 성실한 사람, 착한 사람 모두 좋긴 한데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참 잘 먹는 사람이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 옆에서 군침을 다시는 그가 왜 인기가 많은지 알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오전 내내 똑바로 하라며 혼을 냈지만, 내가 소개한 식당에 가서 설레는 표정을 짓고 이렇게 맛있냐며 감탄하는 후배를 본다면 나는 단번에 그에게 마음을 빼앗길 것 같다. 어수룩한 녀석이라며 어깨를 두드려 줄 것이고 라떼를 소환하며 잔소리를 하다가도 지금 자네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을 것이다.
반대로 평소에는 무섭던 선배가 다짜고짜 밥을 먹으러 가자길래 억지로 따라갔더니 회사 근처 로컬 맛집인 것이다. 여기 우리 회사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이니까 먹어보라며 가장 맛있는 메뉴를 주문해 주고, 회사 안에서는 할 수 없었던 스몰 토크를 하며 음식이라는 주제의 빈 틈을 보여준다. 그리고 내일 점심은 건너편 건물 짬뽕집으로 다른 직원들과 가자며 '너 우리 식구야'라고 느끼게 해 준다면, 아마 마음의 빚을 느낄 정도로 감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마음의 벽을 세우고 사람들과 지내고 있었다.
혼밥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대체로 사람들과 있으면 긴장도가 높고 편안하게 교류하기 어려워하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의로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화목한 그들을 옆에서 가끔은 외롭다고 느끼는 걸 보면 내가 프로혼밥러가 된 것이 마냥 내 의지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먹을 복'이라는 말을 앞으로는 '먹어서 오는 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같이 밥 먹기 싫은 사람이 있어도 불편한 상황 속이라도 한동안은 그냥 계속 함께 먹어보았다.
세상 모든 것은 반복을 통해서만 속근육이 생기는 것인지. 사람들과 밥을 먹고 나면 지나치게 피곤했었던 나는 조금씩 피로감보다는 재미를 더 느끼기 시작했다.
여전히 긴장되고 가끔은 기분 나쁜 일도 있었지만 점심시간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면서도 아까 그 말 너무 웃겼다며 서로 등짝을 때렸고, 그다지 가깝지 않았던 직원과 다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 먹기로 약속하는 일도 점점 늘어났다.
더불어 내적 에너지를 조절하는 능력까지 연마하며 억지로 하던 사회생활이 하나의 스킬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 두 마음가짐은 자칫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변화를 겪고 나니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컸다.
사람에 마음을 얻는 방법은 아주 쉬운 길도 있고 아주 지난한 길도 있다.
일로 얻은 마음은 일로 잃기도 하지만, 밥으로 얻은 마음은 물감이 퍼지듯 경계 없이 많은 부분에 스며든다.
닮은 사람도 다른 사람도 결국은 마주 보고 대화하며 무엇인가를 나눠 먹는 과정 앞에서는 서서히 마음이 열리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식구라는 말을 참 좋아하게 되었다. 피를 나눈 가족이나 오랜 친구가 아니라 돈 벌려고 만난 사람들과도 식구가 될 수 있었다.
아무리 미운 사람도 밥 먹을 때만큼은 '당신 내 식구니까 내가 지켜줄 의무가 있어'라고 생각하며 멀리 있어서 팔이 닿지 않는 반찬을 그 사람 앞으로 옮겨주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복 중에서 먹어서 오는 복이 가장 좋은 이유가 있다.
이 복은 혼자서는 얻을 수 없어서 꼭 서로에게 주게 되는 복이다. 반드시 같이 얻는 복이라 나 혼자 받아서 머쓱할 필요도 없이 상대에게 맘 편히 감사함만 느끼면 된다.
요새 체중이 조금 불어서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었는데, 복이라는 단어를 계속 쓰다 보니 마음이 충만해졌다.
주말에는 사랑하는 이와 그가 좋아하는 피자를 먹으러 가야겠다. 나는 한 조각밖에 먹지 못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