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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이 Oct 31. 2023

지는 꽃 곧 당신 이야기

1. 사랑을 위하여

이제는 나를 향한 우스갯소리에 벌컥 화를 낼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나이는 아니다. 그래서 더욱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십 대 초반에는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저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참 예쁘구나.' 생각했지만 정작 그때의 나 또한 정말 예쁠 나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선물과 같다는 말이 심정적으로는 매우 불쾌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알 것도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십 대 후반부터 얼굴도 몸도 노화의 시작을 느끼기 시작했다.

몸무게는 똑같은데 사이즈가 늘어난다거나, 목주름을 발견한다거나 신체적 변화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삼십 대는 이십 대와 무엇이 다른지 명명백백 설명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탱탱함을 잃는 대신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절망적이라도 일단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중대한 문제를 대충 덮어놓을 방법을 찾을 줄 알게 된다고 말하면 많은 삼십 대가 공감할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얼른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삼십 대도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능숙하고 노련한 미소를 가진 멋진 여성이 되고 싶다고 막연히 꿈꾸었다. 이십 대의 여성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십 대까지는 마음이 아직 십 대의 연장선이라 어리석은 무모함으로 스스로를 상처 내는 일이 많은 시기이다.

반대로 오히려 좀 더 현명했다면 얻을 수 없었을 뜨거운 경험을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젊음을 쥐고 있을 때는 그것이 별똥별 같은 것임을 몰라서 더한 아름다움을 찾는가 보다.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여직원은 나와 나이차이가 꽤 나는 이십 대 중반의 예쁘장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과거의 나처럼 본인이 보고 있는 세상이 이 세상의 전부이고 이미 완성에 가까운 어른이라고 생각하는듯했다.

그녀의 무기는 날 것의 에너지였고, 그 에너지는 분명 사람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스쳐보아도 당찬 여성이었다.

전혀 악의는 없었지만 삼십 대 언니들 앞에서 나이 드는 것은 끔찍하다는 말도 서슴없이 했고, 여자 나이에 대한 농담을 누군가의 입을 빌려하기도 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비해 일을 잘하는 편이었고 중책은 아니었지만 타 부서와 교류가 많은 부서 특성상 기싸움에서 밀리면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기가 센 어린 여직원으로 보여졌다.

아마 본인이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뽀안 피부와 센스 있는 옷차림을 보며 가끔은 부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날 것의 에너지가 원동력이던 시절은 이미 나에겐 과거라서 그 비슷한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마다 그녀를 보며 스스로를 비교하기도 했다.


사생활적으로도 공유를 많이 하다 보니 내가 다니는 피부과를 그녀가 따라다니게 되었다. 내가 주로 받는 시술은 리프팅 레이저와 보톡스였다. 리프팅 레이저는 얼굴이 갸름해 보이면서도 탄력을 만들어 주는 시술로, 여자는 관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번 돈의 일부는 늘 그곳에 가져다주었다.

그녀도 나의 소개로 똑같은 레이저를 시술받았는데, 나와는 다르게 그다지 눈에 보이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개인의 피부타입에 따라 맞는 시술이 다르다고 하던 실장님은 그녀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예쁜 나이라서 리프팅 시술은 더 안 하셔도 되요."

나는 겉으로도 속으로도 동의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꾸준히 그 병원을 다녔다. 확실히 내게는 효과가 좋았고, 어려 보이고 싶다기보다는 예뻐 보이고 싶었다. 이것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여자의 본능과 같은 것이다.

내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외적인 아름다움도 상대에게 대단한 감상을 느끼게 한다. 인형 같은 이목구비라던가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잘 가꾸어낸 느낌의 향기가 날 것 같은 아름다운 외면이 있다.




내가 이십 대일 때, 한 회사에서 여자 동료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삼십 대 중반에 가까워지는 나이였고, 근속이 길어서 그 당시 근무하는 직원 중 가장 오래된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결 좋은 피부에 단정하게 묶는 머리, 수수하지만 본인과 잘 어울리는 화장을 했고 항상 허리가 꼿꼿한 사람이었다. 누가 보아도 예쁜 얼굴이긴 했지만 분명 삼십대로 보이는 얼굴이긴 했다.

입사 후 한동안 예쁨과 배려를 독차지하게 된 나는 사실 가장 친해지고 싶었던 그 여자 동료를 멀리서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어떻게 항상 목과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있을까. 어쩜 손톱은 늘 단정하고 본인과 잘 어울리는 시계를 매일 차고 나오실까. 우아해 보이는 그녀를 보며 느낀 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녀는 어리고 당찼던 내게 예쁜 여동생 보듯 지긋이 웃어주었다. 가끔 못된 상사가 나이로 약을 올리기도 하고 지는 꽃이라며 그녀를 놀리기도 했지만 내 눈에 비친 그녀는 만개한 장미 같은 얼굴이었다.

장미향이 날 것 같은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봄에만 피는 꽃만이 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장미는 5월에 가장 많이 피지만 뜨거운 여름까지도 쉼 없이 피어있다.


그녀에게 그 어떤 직접적인 삶의 조언을 들은 적은 없다. 그저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책을 꺼내 뒤적거리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 책이라도 읽으며 시간을 알차게 써볼 생각이라고 말했던 그녀가 생각난다. 어느새 그때 그녀의 나이가 된 내 모습은 그녀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비슷한 방법으로 문제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얼마 후, 이십 대 중반의 어여쁜 여직원에게 후임이 생겼다. 겨우 한 살 차이였지만 그 또래에 한 살 한 살은 또 얼마나 다른지 정말 귀여운 친구였다. 학생 티를 벗지 못한 발그레한 얼굴의 신입에게 모두들 보살피듯 대해주었다.

신입 여직원 눈에는 삼십 대 언니들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몸소 겪어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이 짧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쪽에서도 대하는 태도를 조심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새로운 여직원이 들어오면 기존의 여직원은 왠지 찬밥 신세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누군가 크게 의도한 것도 아니지만 괜스레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우아한 얼굴 하나를 떠올리며 한 발짝 떨어져서 그냥 지켜보았다. 후임을 옆에 꼭 끼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신입에게 향하는 관심을 함께 만끽하던 어여쁜 여직원은 아직 본인이 지는 꽃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대한 놓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

어쩌면 전자 또한 남모르게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씩 인스타그램을 하릴없이 보다 보면 내가 동경했던 그 여성의 소식을 보게 된다. 단정하고 그녀 다운 모습으로 때론 흔들리지만 허리를 곧게 편 채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피어있는 것 같지만, 주름이 늘었고 예전만큼 생기 있진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라 보는 내 마음이 씁쓸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얼마 전에 가슴 아픈 일을 겪고 한동안 힘들어했지만 다시 스스로를 위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피드를 쭉 내리다 보면 그런 인생의 굴곡은 사실 눈에 띄게 보여지지 않는다. 언제나와 같이 그녀다운 색감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

이제는 꽃이 지는 시기가 언제인지, 진 후의 모습이 어떨지조차 잘 모르겠다. 그저 모두에게 찾아오는 그 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과 그 후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뿐이다.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 한 분이 이십 대 초반의 내게 한 말이 기억난다.

"꽃띠다. 꽃띠야."

꽃띠라는 단어 정말 예쁘지 않은가? 아무것도 모르고 홍조 가득한 얼굴을 한 내게 꽃 같은 시절이라는 말을 해주었던 늙은 여자의 마음을 짐작해 본 적 없었다.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지 않는 순간에도 모두의 인생은 무엇인가를 느끼며 흘러간다.


나는 가끔 얼굴에 솜털이 남아있는 여자아이나 세상을 누비는 여성에게 당신 꽃띠라고 말해준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오면 그저 예쁜 나이라는 뜻이라고만 대답하지만, 뒤에 따라오는 몇 줄의 마음은 속으로 삼키곤 한다. 그것은 내게 처음 꽃띠라고 말해주었던 여자처럼 과거의 자신 같은 순간에게 그저 예쁘다는 말만 해주어도 내 기분이 충분하다는 마음이었다.

내 마음속에 넣어둔 마지막 몇 줄은 이런 식이었다.


꽃띠야. 너무 예쁜 나이지. 하지만 곧 질 거야. 지금 너의 눈에는 내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곧 너의 이야기가 될 거야. 그러니까 너답게 살아. 그러면 누군가에겐 영원히 지지 않는 꽃으로 향기로울 거야.

장담해. 나는 그런 꽃을 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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