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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이 Oct 18. 2023

성격 유형 검사

1. 결혼을 위하여

당시 직장동료 겸 썸남이었던 남편과 같은 직장을 다니던 때에, 12월에 있는 내 생일에 맞춰 직장 내 친한 동료들과 모여 생일파티를 했다.

나를 좋아한다던 그는 점점 과감하게 들이대더니, 세상에나. 생일 선물로 꽃다발을 사 오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 무렵 그는 내 얼굴만 보면 헤죽헤죽거려서 '이제 더 이상 얼렁뚱땅 피할 수 없구나.' 느낌이 오긴 했다. 그로부터 수일에 걸쳐서 그의 유치하고 귀여운 남자친구 당선 공약을 들어야 했고, 버팅기던 내 마음이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부터 준다.. 뭐 이런 것들이 10개쯤 되었던 것 같다.

마침내 솔직해진 나는 그의 연인이 되기로 했고, 서로 마음의 깊이는 달랐지만 연애 초반의 위력은 역시 대단했다.


우리는 사내커플이라서 매일 아침마다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닌가! 일하러 간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하고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니! 가끔은 남몰래 앙증맞은 눈빛을 주고받았고 속으론 키득대면서 겉표정은 도도한 체 턱을 들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렇게 매일 낮을 함께 보내면서도 퇴근하고 나면 정말 그리웠다는 듯이 다시 만나서 본격적인 데이트를 즐겼다.

함께 있을 때 공기가 다른 느낌. 같은 산소인데 두 사람의 주변에만 페로몬이 가득한 달콤한 공기 존이 형성되는 그 느낌은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 것이다.


당시 나는 사랑보다는 일이 훨씬 우선인 사람이었다. 일에서 오는 만족과 성취감은 곧 나 자신을 증명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일하는' 내가 '태초의' 나를 압살 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무언가가 내 패턴을 방해한다고 느끼면, 굉장히 불편해지고 제거해야 한다는 긴급함으로 연결되었다. 실제 내 감상이 그러한데, 다른 원인이나 방법을 찾을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나는 정식으로 교제 제안을 받았을 당시, 그에게서 한 가지 다짐을 받았다.

"절대 오버페이스 하지 말아야 해. 갓 연인이 되면 아무래도 오버하게 되는 심리가 있는데,

어떻게든 참아줘. 시간이 지나서, 너는 원래의 너다운 정도로 나를 대했을 때 네가 변했다고 느끼고 싶지 않아.

나는 한결같은 사람이기만 하면 돼."

맞는 말 하듯, 옳은 것을 알려주듯 말했지만 결국 두 가지였다.

"내 삶에 너무 침범하지 말고, 다른 남자들처럼 변하지 마라."

절대적으로 지킬 수 없는 조건을 날름 수락한 그를 보며 비관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기뻤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덜큰해지고, 머리로는 각자의 생활을 돌보아야 하는데 또 만나자고 쫓아오는 게 점점 익숙해지는 날들이 지속되면서 차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가끔 아니 자주 그의 행동이 옳지 못하거나 이기적이라고 느껴졌다.

당연히 그는 안절부절못하고 니 말이 다 맞다 맞다 잘못했다 싹싹 빌었지만, 자꾸만 더 심술부리고 싶었다.

그때 머릿속으로 "아차. 그만." 싶었다.

우린 더 이상 지나치게 어린 나이가 아니었고, 나는 더 이상 소모적인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젠 '상대방이 누구인지 좋은 사람인지'부터 시작된 생각으로 내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책임감 있고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몇 년 전, 언니 부부가 결혼을 준비할 때 친한 지인에게 커플 상담권을 선물 받아 상담을 갔었던 일이 번뜩 떠올랐다.

언니와 형부는 내게 좋은 사람이 생기면 상담을 같이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추천했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그는 데이트를 할 생각에 신이 나서 곧바로 가까운 심리상담카페를 골라서 예약했다. 그는 내 꿍꿍이를 몰랐겠지만, 제삼자에게 문제점을 지적받고 반성하는 그의 얼굴을 상상하고 기대에 차서 얼른 상담카페로 함께 달려갔다.



인생은 원래 억울한 것인지, 내가 아직 인생을 한참 모르는 것인지 전문가 선생님이 보기에 그의 성격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지적을 당하는 쪽은 내 쪽이었다.

건강한 사람은 사회적인 나와 내적인 나의 모습이 균형 있게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그것이 사회적인 모습을 잘 습득한 것이라고. 내 그래프는 왜 이따위로 생겼을까. 나쁘게 말하면 융통성 부족이라고 하는 선생님의 입을 살포시 막고 싶었다.

그는 정상이고, 나는 비정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나를 보며 모든 것은 그저 성격일 뿐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어떠한 성격"이지, 정말 나쁜 것은 그 사람이 선택한 행동에서 나오는 결과일 뿐이라 기분 나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 검사를 했는데, 그와 나는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순위가 완전히 달랐다.


[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 :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육체적 스킨십, 봉사와헌신 ]


이 다섯 가지 중에서 나는 봉사와 헌신, 인정하는 말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그는 함께하는 시간과 스킨십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목이 마를 때, 벌떡 일어나 물을 담아 건네주는 것을 최고의 사랑이라고 느끼는 사람이고, 그는 꼭 껴안고 같이 하릴없이 tv를 보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사랑이 충만해지는 사람인 것이다.


그 후로도 검사 결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 머쓱한 공기가 가득해서 그냥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이 상담을 통해 얻은 것은 무언인고 생각해 보면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나는 어떠한 스타일의 사람이고, 우리는 다른 걸 원하는 두 사람이라는 사실이 전부이다.

상담이라고 해서 크게 솔루션을 제공하진 않는다. 오히려 검사에 기반한 결과를 나열해 주는 쪽에 더 가까웠다.

나는 지금도 주변에서 연애, 자아, 인간관계의 고민을 토로하면, 상담을 받아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생각한 것보다 무겁고, 지루한 시간이 아님을 경험해 보면 알겠지만, 큰 병원이나 센터가 아니더라도 내가 방문했었던 카페 형식의 놀이화된 곳도 곳곳에 운영되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상담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담 그다음 단계로,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분명 서로 많이 좋아하고 있는데 왜 인지 모르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부족한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상대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나를 우선으로 배려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한다며 상대의 사랑을 부정하려 했다.

그는 선생님의 말처럼 자신은 편안하게 꼭 붙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항상 붙어 있고 싶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그도 각자의 편안한 시간을 원하지만 연인으로서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을 묘사한다면 그런 모습이라고 한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사실은 내가 불안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연인이 모든 언어로 나를 원하는 남자이길 바라지만, 특히 내가 원하는 방식에 능숙하길 원했다. 하지만 반대로 그가 진정으로 느끼는 사랑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인정을 하게 되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인정이란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와 내 감정이 나란히 함께 하게 만든다. 누가 앞설 것도 없이 말이다.

그리고 오해의 눈으로 고심해서 낸 결론은 원하는 바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과정은 수차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나라는 한 사람을 마치 마법처럼 휘리릭 바꾸어 놓았다.

그제야 눈을 가렸던 것이 사라지고 더 정확히, 명확히 길이 보였다.



그동안 늘 내 마음속 여러 통과 검문 앞에 한 명의 귀한 사람을 세워두고, 합과 낙을 결정하기 위해 요리조리 뜯어보기 바빴던 내가 어느새 정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나의 판단을 위함"이 수그러 들었을 때 지켜본 그는 의외로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허허실실 사람 좋아하는 게 전부인 남자인 줄 알았는데, 합리적인 이해관계를 선호하고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함께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진심 어린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맞았고, 개인의 시간을 존중할 줄 아는 것 또한 물론이나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심각하다고 생각했던 성격 차이의 문제는 탁! 넘어서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었고, 그의 새로운 면들을 보며 오히려 잘 맞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스치는 인연이 될 수 도 있었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한 후로, 그제야 사람 대 사람으로서 건강한 연애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질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우리는 이러한 작은 고비를 넘기며 "우리 꽤나 괜찮은 커플인걸?" 싶어서 한동안 우쭐한 기분으로 매일을 보낼 수 있었다. 그와 처음부터 결혼을 생각하고 만난 사이는 아니었지만, 연애 초반에 그 상담을 받고 마음을 고쳐먹었던 게 결혼을 결심할 용기에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 그리고 상대를 인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서로의 도움을 받으며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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