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근로자를 '부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내가 근무하는 공공도서관은 한적한 동네여서 이용자가 그다지 많지는 않다.
오늘은 지자체 도서관사업소에서 시행하고 있는 '무한대출기간'의 마지막 날이었다.
무한대출기간이란, 매주 마지막 주 수요일이 있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 주 동안 평소 인당 7권인 도서대출권수가 두 배로 대출할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런 오늘 3시반쯤 삼남매를 대동하고 어린이자료실에 들어서는 어머님.
자료실 여기저기 서가를 누비며 여러 권의 책을 들었다놨다 하시며 자녀들에게 읽히기도 하고 일부는 빌리기도 하셨다.
그러다 제일 어린 딸이 와서 "이 책 찾아주세요."한다. 도서위치를 출력한 용지를 살펴보니, 지하 '보존서고'에 있는 책이다. 그래서 어머님께 "윗층에 가서 열쇠 받아다가 지하 보존서고에 다녀와야하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네~"하며 선뜻 기다린다고 하셔서 오랫만이긴 했지만, 이용자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얼른 3층에 가서 보안경비카드를 받아 지하로 이동해서 눈을 부릅뜨고 찾아서 서둘러 2층 어린이자료실에서 기다리는 어머님께 건네드렸다.
잠시 후 채 30분도 안 지나서 또 지하 보존서고 책을 찾아달라고 하셨다. 이번에도 3층에 가서 보안경비카드를 챙겨서 지하 서고에 가서 책을 찾고 있는데 자료실 짝꿍 직원이 왔다. 아까 그 이용자분이 또 추가로 두 권 더 찾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었으면 전화를 걸어, 내려간 김에 내가 한꺼번에 찾아 올라간다고 하면 되었을 것을. 하필 급히 내려오느라 폰을 안 들고 왔던 것이다.
그렇게 허둥지둥 책을 찾아서 대출까지 해드렸는데, 마감시간을 얼마 안 남기고 자료실을 최종 점검하던 중 책이 반납수레에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대출된 상태, 그대로 두고 가신 것이다.
보존서고 도서는 무인반납기에서 반납처리가 불가하므로 데스크를 찾아 동료에게 전달했다. 그럼에도 대출자의 확답없이 임의로 도서를 반납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그 이용자분께 전화를 드렸더니, 설마 했는데 "그냥 반납해주세요~"라고 하셨다고.
무슨 심리일까? 분명 보존서고까지 꺼내 온 책인 것을 알면서도 그냥 말도 없이 반납대에 올려두고 가는 상황. 보존서고도서는 데스크에서 반납해야함을 알고 있으셨을 텐데, 좀 허탈한 심경이었다.
괜히 이 책 저 책 꺼내어 엉뚱한 서가에 꽂아놓거나 책등이 안쪽으로 가도록 거꾸로 꽂아놓은 행태, 일부러 심술을 부린듯한 어지러운 서가... 근로자로서 일하기 싫어서 푸념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접속 속도가 느리다며, "내가 내는 세금이 얼만데? 책임자 나오라 하세요."라 다짜고짜 윽박지르는 사람. 그리고 사서자격증을 미처 갖추지 못한 시절, "언니, 문정과(문헌정보학과)출신 아니구나? 신입이지? 사서자격증 없어?"라고 대놓고 면박주는 사람. 도서관 마감시간 2분 남겨놓고 마감시간 상기시켰다는 이유로, "알았다구요~왜~? 아주 나가라고 방송을 하지 그래요?"하며 화를 내는 사람. 등등.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살면서 핍박을 많이 당한 경험 때문에 누구라도 붙잡고 자신의 불쾌한 감정 배설을 하고 싶었던 건지.
데스크에 와서 "죄송한데, 책 좀 찾아주시겠어요?"라고 하시는 정중한 분, 인사를 건네는 직원과 눈을 마주치며 함께 인사를 나누는 분, 추천 도서 문의에 아는 범위내에서 열심히 말씀드리면,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마워하시는 분... 등 여러 훈훈한 이용자분도 많다. 최소한 상식적인 분들이 짖궂거나 진상인 이용자분보다는 훨씬 더 많다. 그렇기에 기쁜 마음으로 근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주말 근로자로서의 지위는 두 달이 남았다.
2024년엔 평일 근로자로서 수 개월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채용공고가 매년 2월 중순쯤 도서관 홈페이지 '도서관 소식'에 올라온다. 서류제출과 면접시험을 거쳐 최종 합격하면 3월 1일자로 입사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니 평일 기간제근로자(사서도우미) 최종 합격 여부는 내년에 걱정해도 늦지 않다.
우선 지금은 2023년 남은 주말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