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민한 건지, 유난스러운 건지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올해가 이제 딱 2주 남았다. 오늘은 기습한파로 평소보다 오전 도서관 방문 이용자 수가 적었다. 12시 전까지 딱 한 가족 다녀간 게 다였다. 이윽고 12시가 되자 이용자들의 방문이 속속 이어졌다.
아이를 2층 어린이자료실에 두고 3층 종합자료실에 다녀오겠다던 한 여자 이용자분은 나를 보시자마자 "혹시 대일밴드 있나요?"하고 물으셔서, "아 네..." 하며 말끝을 흐렸더니, (사무실쪽을 가리키며) "저~기 안쪽 구급함 있을 거에요."라고 하셨다. 그걸 어찌 안단 말인가. "혹시 공무원분이신가봐요?"라고 묻는 내게 알쏭달쏭한 표정을 보이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밴드를 갖다드리고 나니 이번엔 휴대폰 액정 깨졌으니 테이프 달라며 "여기 이 테잎도 좀 주시겠어요?"하셨다. 슬슬 짜증이 났지만 하는 수없이 북키퍼(도서관 청구기호 라벨지 감싸는 접착용테이프)를 드렸다. 그랬더니 동행한 아들을 불러 바로 나가셨다. "안녕히 가세요~"란 나의 인사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이런 상황을 빗대어 '병 주고 약 주고'라고 하지 않나?
오후 1시가 점심 교대 시간인 나는, 점심 먹고 돌아오니 업무용 유선전화벨이 울려 "감사합니다. ○○도서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전화를 받았다. 이용자분께서 "저희 애들이 거기 도서관에 있는데 폰이 없거든요. 한 명은 여자애고, 한 명은 남자애인데 이름은 ♡♡이랑 ♧♧거든요. 전화 좀 바꿔주실래요?"라고 하셨다. "아, 네~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한 뒤 창가쪽에 앉은 남매를 찾아 이름을 물으니 맞다고 하여 데스크 전화를 바꿔줬다. 평소 같으면 다시 전화를 받아서 "선생님, 친구들 전화 바꿔드릴게요~."라고 하며 바꿔줬을텐데, 황당한 상황이라 아이들에게 바로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그냥 수화기만 받아 들고 멀뚱멀뚱 하고 있는 아이에게 "친구, '여보세요' 해야지~"라고 했다. 통화내용은 사생활 정보 보호 차원에서 여기에 쓰지는 않겠다. 한파로 도서관 이용자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오늘은 평화로울 것 같았는데, 이렇게 특별한 일화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야 하나? 씁쓸한 이 기분은 결코 받고 싶지 않다.
오늘의 마지막 이용자 이야기. 정확히 16:55에 자주 오던 아이가 왔다. 오늘은 다행히 책을 한 권만 얼른 찾아서 대출하겠다며 데스크로 왔다. 어김없이 회원증은 휴대폰에 저장된 화면을 보여주고, 회원증 비밀번호는 엄마께 전화해서 물었다. "엄마!비밀번호 뭐야? x.x.x.x 알았어. 끊어."라며. 연장 근무 없이 정시 퇴근이 가능했다. 바쁜 날은 이 꼬마의 일 년 가까이 반복되는 행태에 짜증이 날만도 한데 오늘은 비교적 한가해서 귀여웠고, 스스로 책을 찾아 오니 기특하기까지 했다. 역시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한 것이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짜증이 나기도 하고 훈훈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