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에게 스트레스 받을 봐에야 내가 직접 가게를 차려 사장이 되겠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가져봤을듯 자영업자의 꿈이다.
나 역시 조기 은퇴하면 막연하게 해보고 싶은 1순위가 자영업 도전이었다. 성질 급한 나는 현직에 있을 때 미리 경험해보고 싶었다. 은퇴 후 창업의 리스크도 줄이고, 자영업이 내 적성에 맞는지, 진짜 돈이 되는 일인지 테스트해보고 싶었다.(공직에서 투잡이 금지라서 명의는 누나로하고, 동업개념으로 창업)
언론 등에서 가끔 듣기로는, 조기퇴직해서 마땅히 할 게 없을때 치킨집 같은 자영업을 창업하는데 대부분 쫄딱 망해서 퇴직금을 한방에 날리기 일쑤란다. 그러면서 흔한 자영업자 창업 증가 수치와 폐업 통계를 '쫙' 하고 보여준다. 나는 이게 두려워서 현직에 있을 때 직접 실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매도 현직에 있을 때 맞는 게 덜 아플 것 같아서..
어떤 업종으로 창업할 것인가?
중학교 때쯤인가 국어 교과서에 나온 외국 수필인 것으로 기억한다.
한 어린 소년이 사탕가게에 갔다. 먹고 싶은 사탕을 한 움큼 잡은 후 돈 대신 가지고 있던 버찌열매를 사탕값으로 지불한다. 사탕가게 주인인 할아버지는 어린 소년이 너무나 순진하고 천진해 보인다. 그래서 살짝 윙크를 보내고는 오히려 돈이 남았다며 거스름돈을 소년에게 건네준다.
소년은 나중에 커서 할아버지의 배려와 친절을 알게 된다.결혼 후 부인에게 이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을 들려주고, 뜨거운 키스로 마무리되는 마지막이 조금 생뚱맞은 수필로 기억된다.
제목은 확실히 모르겠지만 '나의 사랑하는 00' 쯤으로 기억된다.
이 수필이 항상 뇌리에 박혀있어서인지 창업을 한다면 사탕도 팔고, 빵도 파는 파리바게트가 항상 제 일순위였다. 업종 특성상 아침 일찍 가게를 열어야 하는데 아침형 인간인 나한테 딱 맞고, 기분 좋은 향긋한 빵냄새를 맡으며 일하는 것도 좋아 보였다. 실제 집 근처에 노부부가 운영하는 장사 잘 되는 파리바게트가 있는데 이게 내 창업의 표준모델이었다.
드디어 실행할때가 되었다.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자영업자 카페를 통해 수개월간 정보를 수집했다. 실제 컨설팅 업체를 통해 가게도 몇 군대 소개받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파리바게트 창업은 현 시점에서는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창업비용이 예상을 초월했다. 신규 창업이 아닌 기존 장사 좀 되는 가게를 양수받는 조건으로 보증금, 권리금 합하면 3-4억이 넘게 들었다. 최대한 영끌해서 비용을 마련할 수도 있겠지만, 나온 매물들이 사는 집과 너무 먼 것도 문제였다.
자영업의 끝판왕이자, 돈 잘 버는 남편을 둔 사모님들이 취미 삼아 운영한다는 배스킨라빈스도 알아봤는데 여기서 1,2억이 더 들어가서 입맛만 다셨다. 한편으로 비슷한 업종 중 가격이 더 낮은 뚜레쥬르도 알아봤는데 창업비용 1억 정도로 적당한 매물이 있었지만, 고민하다가 집이 멀어 결국 포기했다.
햄버거 가게를 최종 선택하다.
그러던 중 당시 탤런트 김혜자님이 TV에서 광고했던 맘스터치가 눈에 들어왔다. 컨설팅 소개 업체에서 마침 집 근처에 적정한 매물이 있음을 알려왔고, 크게 따져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창업을 결심했다.
창업 전에 이미 이 업종에 대해서 3-4개월간 충분히 공부해 두었다. 가게 알아보기 전 현직 영업주 5-6명에게 조언을 구하고, 나름대로의 이론적 공부로 충분히 대비했다. 대략 창업비용은 권리금 5천, 보증금 5천 등 총 1억이다.
보증금은 어차피 돌려받을 것이고, 권리금도 나중에 그만뒀을 때 충분히 회수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왜 햄버거 가게였나?
우선 우리 가족이 식사대신으로 배달의 민족을 통해 너무 자주 먹어서 매우 친숙한 브랜드였다.
이 가게를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잘 운영되어서 은퇴 후까지 계속하게 된다면, 공무원 직업을 대신할 새로운 직업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3, 5학년이었던 두 아들에게 은퇴후 아버지 직업을 말하기가 곤란할 것인데. '너그 아부지 뭐하시노' 주변에서 물었을 때, '맘스터치 사장이다.'라고 하면 인지도 면에서 어느 정도 먹고 들어갈 수 있음도 고려되었다.
한편으로 장사 안되면 까짓 거 내 가족, 누나 가족이 먼저 질리도록 먹고, 주변에 햄버거나 실컷 나눠주자는 심산도 있었다.
실제 창업해 보니..
양도 계약서를 부동산에서 쓰고 드디어 개업했다. 초기에 햄버거 만드는 교육은 누나와 집사람이 보름 가량 받았고, 그 외 인테리어 진행 등 할 일이 태산같이 많았다. 투잡 금지인 직업상 대부분 내가 직접 나서지는 못했다. 그래도 다들 생애 첨 해보는 창업이라 열정만큼은 누구 못지않아서 오로지 직진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유명 프랜차이즈이니 만큼 본사의 지원을 등에 없고, 별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자리 잡아 나갔다.
제일 중요한 부분인 수익구조를 보면, 내 가게 기준 하루 평균 매출이 1백만 원이고, 한 달 3천만원 정도다. 여기서 재료비인 물대비용으로 절반 살짝 넘게 나간다. 거기서 가게 월세 275만 원, 직원 아르바이트비 300-400만 원, 세금 1백, 그 외 전기, 가스 등 잡비 1-2백 등이 지출된다.
그러고 나면 내가 가져가는 돈은 평균 3,4백만 원 남짓이었다. 그 돈에서 누나에게 월급으로 2백을 보장하고 나면 사실 내 수입은 1,2백만 원 밖에 안된다. 집사람과 퇴근하고 매달린 우리 두 명의 인건비도 채 못 가져간다. 장사는 비교적 잘되는 편인데도 실제 수익은 남는 게 없는 자영업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애초부터 창업 경험이 목표였기에 크게 좌절할 일은 없었다.
오히려 힘든 점은 따로 있었다.
프랜차이즈였기에 매출은 그나마 최소한은 유지되었지만, 오히려 알바관리가 굉장히 스트레스였다. 최저시급이 당시 8,600원인데도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구해놓고 적응 할만하면 그관두고, 일하는 중에도 수시로 무단결근을 하는 등 시시각각 말썽이다.
한 번은 주말에 내가 카운터를 보고, 알바가 햄버거 만드는 주방을 보는데, 오전 11시 출근시간까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 가게 단골 아침손님이 와서 기다리고 있고, 전화 배달 주문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럴 때면 정말 속이 타들어 간다는 표현이 딱 맞다. 1시간이 지나서야 전날 술 먹고 뻗어 있었단다 ㅠㅠ
알바가 요일별로 3-4명 근무하는데 일일이 관리하기가 참 어렵다. 근태불량, 결근, 지각 간혹 카운터 손대는 알바 등 새파란 어린애들을 관리하는 게 결코 만만치 않다.
자영업 창업은 매우 신중히...
자영업은 한번 벌려 놓으면 중간에 하기 싫어도 맘대로 장사 접기가 쉽지 않기에 정말 정말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요새 프랜차이즈 저가 커피가 한창 유행이다. 양도양수 받으려면 괜찮은 매물은 1억 중반은 줘야한다. 그리고 본인이 8시간 정도 근무하여 잘 되었을 경우에 직장인 월급정도의 수익을 바라볼수 있다, 직장 다닐 때와는 또 다른 스트레스가 있음은 당연하다. 장사 잘되면 바빠서 정신없고, 장사 안되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 받는다.
지인중 한명도 최근에 프랜차이즈 커피를 창업했는데, 6개월도 안되어 매우 후회하고 있다. 돈을 몇천 손해보더라도 매도할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울며겨자먹기로 하고 있다. 지금은 내가 말릴때 듣지 않은걸 굉장히 후회중이다.
이렇게 단점이 많지만, 장점 또한 많다. 내가 사장이고 주인이다 보니 가게에 손님 없을 때는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고 멍때리고 있으면 그 자체가 힐링이고 마음이 그렇게 편할수 없다. 또 지인들이 방문하거나 사람 만나러갈때 선물로 항상 햄버거 싸들고 가서 실컷 나눠줄수 있어서 좋았다. 만약에 수익까지 월급 이상이었다면 완전 금상첨화였을테지만, 거기까지 운이 따라주진 못했다.
그리고 위의 수필에 나오는 착한 할아버지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가게에 급식카드(결식아동 급식사업의 일환으로 저소득층 자녀에게 나눠줌)를 들고 저녁 무렵에 거일 매일 오는 10살 조금 넘은 남매가 있다. 이 애들이 올때면 항상 서비스로 사이드 매뉴를 가득 챙겨주거나 돈이 모자를 때도 모른척 해줬다. 가게 오는 모든 어린이들에게도 햄버거 하나라도 더 챙겨줄려고 했다.
가게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저런 사유로 정확히 1년 운영하고 접었다. 다행히 금전적인 손해는 보지 않았다.
조기퇴직 전 현직에 있을때 자영업 창업을 테스트 해봄으로써 훗날 경험없이 창업하는 리스크를 줄였다. 조기퇴직까지 앞으로 1년 남은 시점에서, 좀 더 디테일하게 퇴직 계획을 수립하는데 영감을 얻고, 계획중 하나를 테스트해 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번 자영업 창업 도전은 성공이냐 실패냐의 문제가 아니고, 단지 맛보기였을 뿐이다. 늦지 않은 시기에 버킷리스트의 하나인 당구장 사장을 경험해볼 것이다. 또한 내가 계획한 모든 도전적인 일들이 마무리 되는 60대 쯤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창업에 도전할 것이다.
지역 맛집으로 대표되는 음식점을 창업해서 가족들과 직원들을 풀오토 형식으로 죽기 전까지 운영하는 것을 이번 생애 조기퇴직의 마지막 종착역으로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