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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프라인 Jun 12. 2023

무너져 가고 있어요. 너도, 그리고 나도.

1. 초등 교사는 왜 무너지는가? -2

 “저는요, 축구선수요.”

   

 봄마다 의례적으로 하는 학생 진로 질문에서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래, 열심히 해야겠네.”


 라고 대답하며 별생각 없이 학급일지에 기록하다 그 학생의 눈을 보았다. 친구들 듣는다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던 그 남학생은 하지만 분명하고 당당한 눈빛을 나에게 보내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꿈을 말했던 학생은 고작 일주일에 한 번 배당된 점심시간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10여 분 남짓한 시간만 공을 차고 있다. 나는 운동장 한편에서 물끄러미 그 아이가 친구들과 공차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중학교 때 시작하늦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 시작해서 중학교 어디 가실 건데요? 최소한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시작해야…."


 "요즘은 축구하는 시기가 빨라졌기 때문에, 중학교 때 시작하면 다른 애들과 차이가 너무 커요. 감각에서 차이가 크게 나거든요. 특별한 재능이 있지 않은 이상."


 "가서 시작한다구요? 가능할 거라고 보세요? 진짜 축구를 잘하는 학생들은 유스를 가고요, 최소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가죠. 일반 학생이 그 애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축구하는데 3억~5억 든다고 보시면 돼요.”    




 내 어릴 때 꿈은 과학자였다. 당시 내 주위 많은 친구가 그랬듯 나는 과학자가 되어 TV에 방영되던 만화영화 메칸더 v를 만드는 게 당시 막연하고 망연했던 내 꿈이었다. 학교에 가서 공부하다가 커서 어른이 되면 저절로 과학자가 되고 내가 하고 싶은 로봇을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꿈은 변해갔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신기루처럼 사라진 꿈을 잃은 텅 빈 내 앞에 또 다른 내가 축구공을 차고 있다.  

   

 초등학생들에게는 커다랗고, 부풀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거대한 미래의 자신이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잠재력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 많지 않아 보인다. 이 학생은 중학교에 가서 어떻게 될까. 나날이 성장해 그의 바람대로 멋진 축구선수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유소년팀의 선수와 축구부의 선수가 노력하는 동안 마냥 꿈에 취해 어른이 되면 축구선수가 될 거라는 망상을 지니며 학교에 다닐까? 한낱 1년간 초등학교 담임교사인 나는 그 학생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어머니, 소질이 있습니다. 축구시켜 보세요.”     


 네가 학생 부모를 설득할 수 있어? 네가 책임질 수 있어? 아니. 난 확신할 수 없어. 그가 잘하는 것은 맞지만 어느 정도 수준인지 난 알지 못해. 내가 결정할 수는 없어. 그건 내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야.

 그렇게 나는 나에게 변명해 버렸다.


 “저는요, 축구선수요.”


 초등학교 마지막 가을에도 그 학생은 진로 질문에 그렇게 말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비겁한 교사다.     




여담) 모두가 하교하고 복도에서 마지막으로 실내화를 신발로 갈아 신는 여학생에게 넌지시 다가가 물어보았다.

 

"아까 왜 커서 하고 싶은 직업 말 안 했어?"


 여학생은 실내화를 신발로 갈아 신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실내화를 신발장에 넣으며 자신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 의사요…. 근데 선생님, 저 의사 될 수 있어요?"


 그럼, 차라리 의사가 낫지.


다음 글 : https://brunch.co.kr/@ar808115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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