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공고치료를 마치고 3주간 휴식기를 가진 뒤
바로 2차 공고치료가 시작되었다.
관해 항암치료 때부터 늘 병원 근처에 숙소를 잡고 상주하던 엄마는
2차 공고치료가 시작될 무렵 코로나와 함께 오미크론 변이가 심한 상황이라
전주 본가에 남기로 하셨다.
벌써 세 번째 입원.
병원 생활에 나름 익숙해진 상태라 입원 짐을 야무지게 챙겼다.
입원 당일, 엄마 아빠의 배웅을 받으며 씩씩하게 혼자 별관 8층 간호통합 병동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입원했던 첫 번째 입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어
더 무서웠던 두 번째 입원과 달리
세 번째 입원은 덤덤했다.
이제는 친근해진 병동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눴다.
배정받은 병실에 들어가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후
키와 몸무게를 재고 혼자 엑스레이까지 찍은 후 편의점에서 간식까지 사들고 병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세 번째 입원 첫날 밤이 지났다.
다음날 오전 회진 때 교수님은 2차 공고치료 역시
1차 공고치료와 동일하게 진행될 예정이라고 하셨다.
그날 오후 중심정맥관(C-line)을 삽입하기 위해 혈관 조영실로 이송되었다.
벌써 세 번째 시술이지만 여전히 시술 전 두려움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시술 대기 중 이송 침대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막 시술을 마친 다른 환자들이 시술실 밖으로 나왔다.
곧 내 이름이 불릴 차례다.
눈을 감고
기도를 반복했다.
곧이어 내 이름이 불렸다.
담당자는 신원을 확인한 후
"바로 들어갈게요."라는 말을 하며 이송 침대를 시술실로 밀었다.
겁이 나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나를 보며
시술을 준비하던 의료진 중 한 명이
"많이 긴장되세요?"라고 물었다.
"세 번째 받는 건데도 무섭네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그 말에 그분은
"오늘 시술 담당하는 교수님이 정말 안 아프게 잘하시는 분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그 말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