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강아지와 함께 살아내기
정말 오랜만에 혼자 외출했다. 새벽이가 아프고 사실상 처음으로 아파트 밖에 나온 날이다. 차로 겨우 15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 온 것이 전부지만 이렇게 나오기까지 약 50일간의 안정과 용기가 필요했다. 카페에 앉아 좋아하는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10분만 있다가 올 계획이었다. 수시로 집안 CCTV로 아이를 확인하며 커피를 주문했다. 아이가 편안하게 낮잠 자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지만 휴일인 오늘, 거제에 몇 없는 핫한 카페엔 당연히 사람이 많았다. 커피가 나오면 금세 마시고 일어서려 했지만 주문한 커피는 10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내가 나에게 허락한 여유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시 집안 CCTV 확인했을 때 새벽이는 자리를 옮겼는지 화면에 보이지 않았고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퇴원 후 아이의 상태는 양호했고 호흡수도 일정했기 때문에 갑자기 나쁜 일이 생길 확률은 낮았다. 난 아이가 멀쩡할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카페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집을 떠나 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주문을 취소하고 구매한 드립백만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트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CCTV를 다시 켰다. 미르가 애처롭게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르가 울면 같이 짖고 울던 새벽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순간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새벽이가 쓰러져서 화면에 보이지 않았나? 미르가 새벽이 살려 달라고 우는 걸까?
'새벽아! 엄마 왔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새벽이를 불렀다. 다행히 새벽이는 좋아하는 텐트 속에 쏙 들어가서 자고 있었다. 미르는 쉬야가 마려운데 데리고 나가주지 않아서 울었던 것 같다. 모든 게 일상이었다.
나의 첫 외출이 이런 엔딩으로 끝날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집을 제일 좋아하는 나라지만 24시간을 강아지들과 지내면서 외출이라곤 아파트 단지 산책과 헬스장 가는 게 전부인 채로 살 수는 없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죽음 말고는 없을 것 같았기에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려가면 있는 단지 내 헬스장에 가면서도 생각한다. '내가 운동하는 동안 새벽이가 떠난다고 해도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급사의 가능성이 있는 아이를 홀로 돌보면서 동시에 나도 살기 위해선 그 정도의 각오가 아니면 안 되겠더라.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하고, 너도 나를 너무 사랑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삶의 이익은 상충한다. 난 사랑하는 널 지키기 위해 좋아하는 연극을 그만둬야 헸고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아픈 너와 함께 하는 삶은 지금 나의 최선인 동시에 너무 괴로운 선택이다.
조금씩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도 덜 괴로운 방법을 찾아가겠지.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네가 더 악화될 수 있단 걱정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