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확장성 심근병증이란

심장병 강아지와 함께 살아내기

나는 이제 삼십 대 중반의 건강한 성인이다. 살면서 큰 병을 앓은 적이 없으며 많은 한국인의 친구인 만성 위염을 빼고는 건진에서 어떤 이상도 나타난 적 없다.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도 그렇다. 부모님을 포함한 모두가 노화로 인해 당장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질병을 앓을 나이가 아직은 아니다. 다시 말해, 나의 배우자와 직계 가족 중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안겨준 이는 사실상 새벽이가 처음이라는 뜻이다.

새벽이를 일찍 보내야 한다는 것을 당연히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진단 전에는 아이의 노화와 그에 따른 질병의 가능성이 딱히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나보다 먼저 늙기 시작했고 어느새 사람으로 치면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가 되었다. 아직도 동안 미모를 자랑하는 새벽이지만 치료가 불가능한 병을 진단받았고, 나는 아픈 아이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동시에 기대 수명도 늘리기 위한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주치의 선생님이 처음 진단을 내리시면서 가장 먼저 언급하신 사실이 있었다. 새벽이가 심장이 안 좋은데 흔하게 진단되는 종류의 심장병이 아니라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병이라는 점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확장성 심근병증을 앓는 동지(?) 강아지를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픈 강아지를 돌보는 커뮤니티에서 진단받았다는 아이들을 보기는 했지만 그 아이들의 소식을 계속해서 듣거나 보호자와 대화할 방법은 딱히 없었다. 다른 심장병 강아지 커뮤니티에는 이첨판 폐쇄부전(주치의 선생님이 말씀하신 흔하게 진단되는 종류의 심장병)을 앓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건강한 심장(좌)과 DCM을 앓는 심장(우) 그림(출처: PDSA)

확장성 심근병증(Dilated Cardiomyopathy, DCM)을 가진 다른 아이들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이 병이 대부분 중대형견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소형견이 다수이니 이 병을 진단받는 아이가 많이 없을 테고, 특히 새벽이처럼 소형견에게서 나타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한다(심지어 여아보다는 남아에게서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확장성 심근병증이란 진단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심근'이 '확장'되는 질병이다. 이 병을 앓는 경우 심근의 기능이 저하되어 심장이 커지고 혈액을 펌프질 하는 힘이 줄어든다. 온몸에 산소를 보내는 심장의 기능이 약해지니 전신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이는 운동 기능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심근이 약해지면 심장을 수축, 이완하는 힘이 줄어들고 심장 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게 된다. 우심보다 좌심이 먼저 확장되고 이첨판(좌심방에서 좌심실로 혈액이 이동하는 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혈액 역류가 발생하게 된다. 폐순환을 마친 혈액은 좌심방으로 들어오고 이 혈액이 다시 좌심실로 이동해야 하는데, 역류가 발생하면 이 순환에 문제가 생긴다. 혈액이 순환해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하고 역류가 지속되면 폐수종이 발생한다. 폐수종은 폐에 물이 차고 숨 쉬기가 어려워지는 증상으로 당장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확장성 심근병증도 이첨판 폐쇄부전 등 다른 심장병과 마찬가지로 완치는 불가능한 병이고 적절한 대증 치료로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약을 계속 쓰더라도 병의 진행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새벽이처럼 심부전으로 인한 폐수종이 왔던 말기 환자는 심장의 움직임을 강화할 강심제와 폐수종을 막을 이뇨제를 처방받는다. 이때 이뇨제는 신장에 무리를 줄 수가 있어 폐수종을 막으면서도 신장 기능도 유지하는 적절한 용량을 찾기 위해 진단 초기에 잦은 검사를 하게 된다.

이 병의 더욱 환장할 지점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베르만이나 그레이트데인 등 특정 종에서 많이 발견되는 만큼 유전적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짐작하나 정확한 원인은 불명이다. 현재 FDA에서는 그레인프리 사료와 확성 심근병증 간의 인과 관계를 조사하고 있지만, 이 또한 연구 중인 사안으로 아직은 그레인프리 사료 혹은 특정 브랜드의 사료가 이 병의 원인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질병의 가장 가슴 아픈 지점은 다른 심장병보다 예후가 안 좋다는 사실이다. 많은 경우 진단받고 6개월 이내에 사망한다고 하며 우리 새벽이도 3개월에서 6개월의 기대 수명을 진단받았다. 이 병은 사람에게서도 똑같이 발견되는데 사람의 경우에도 치료 불가능하고 예후가 좋지 않아 기대 수명이 짧다는 점은 동일하다. 처음엔 짧은 기대 수명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똑같은 내용을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최대 24개월 이상을 이야기하는 곳은 없었다. 그나마도 아주 운이 좋은 경우의 기대 수명이지 대부분은 진단받고 수개월 내에 떠난다는 것이 정설인 것 같았다.

고맙게도 새벽이는 진단받고 3개월이나 건강하게 잘 지내주고 있다. 식욕도 왕성하고 호흡도 안정적이며 폐수종도 재발하지 않았다. 신장 수치도 계속 오르는 듯했지만 음수량 관리 덕인지 보조제 덕인지 아니면 운인 건지 아무튼 제한적 범위 내에서 유지되고 있다. 이젠 나도 아이의 병과 상태에 적응해서 아이를 두고 운동도 나가고 잠시 외출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일상을 되찾았다.

그러나 주치의 선생님은 병원에 갈 때마다 마치 시한폭탄을 다루는 것처럼 새벽이를 걱정하신다. 덕분에 집에서 잘 지내던 아이만 보다가 오랜만에 병원에 가면 잔인한 현실을 상기하게 된다. '맞다. 우리 아이 심장병 말기였지.'

그래도 아이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고 최선을 다하시는 주치의 선생님과 유난히 예쁘고 건강한 내 딸의 컬래버레이션이 지금까지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선생님의 노력과 새벽이의 근성(?)이 아이의 기대 수명을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나는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위 글의 내용은 주치의 선생님의 진료 내용과 아래 문헌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 강민희, 박희명, 등 공저.『반려동물 심장병 안내서』. 서울: 조공. 2023.

- “Canine Dilated Cardiomyopathy (DCM).” Cornell University College of Veterinary Medicine, 12 May 2020, www.vet.cornell.edu/hospitals/companion-animal-hospital/cardiology/canine-dilated-cardiomyopathy-dcm.

- Center for Veterinary Medicine and Center for Veterinary Medicine. “FDA Investigation Into Potential Link Between Certain Diets and Canine Dilated Cardiomyopathy.”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Dec. 2022, www.fda.gov/animal-veterinary/outbreaks-and-advisories/fda-investigation-potential-link-between-certain-diets-and-canine-dilated-cardiomyopathy

- ---. “Questions and Answers: FDA’s Work on Potential Causes of Non-Hereditary DCM in Dogs.”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Dec. 2022, www.fda.gov/animal-veterinary/animal-health-literacy/questions-answers-fdas-work-potential-causes-non-hereditary-dcm-dogs.

- “DCM (Dilated Cardiomyopathy) in Dogs.” PDSA, www.pdsa.org.uk/pet-help-and-advice/pet-health-hub/conditions/dcm-dilated-cardiomyopathy-in-dogs.

- Kittleson, Mark D. “Dilated Cardiomyopathy in Dogs and Cats.” MSD Veterinary Manual, 13 June 2023, www.msdvetmanual.com/circulatory-system/cardiomyopathy-in-dogs-and-cats/dilated-cardiomyopathy-in-dogs-and-ca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