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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Aug 11. 2024

세 번째: 미르 형아 우람이

심장병 강아지와 함께 살아내기

벌써 8년 전의 이야기이다. 아침에 눈을 뜨니 미르 옆에 누운 우람이의 머리가 두 배나 커져 있었다. 눈도 뜨지 못한 생후 2주 아이의 머리가 제 몸집 반만 해져서는 곧 발작을 시작했다.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봤지만 너무 어리고 작아 할 수 있는 검사도 치료도 없다고 했다. 그때부터 난 혼자 밥도 못 먹고 몇 시간 단위로 발작하는 우람이를 간병해야 했다.


신생아는 서너 시간에 한 번 젖을 먹어야 하는데 우람이는 더 이상 혼자 젖을 물지 못했다. 난 낮이고 밤이고 아이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통으로 잠을 자는 일도 불가능했다. 원인도 알 수 없는 아이의 발작은 지속되었고, 답답하고 공포스러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다. 난 울면서 남편에게 더는 우람이를 보고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눈도 못 뜬 채 고통스러워하는 아기를 혼자 감당하는 건 당시의 나에겐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새벽에 달려간 동네 24시 병원에서는 뇌 질환이 포메라니안 유전병 중 하나라고 했다. 유전병의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하며 발작을 하면 주사를 놓을 수는 있는데, 최소로 넣을 수 있는 용량도 이 정도 아이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고 했다. 아이의 목숨을 걸고 주사 치료를 하겠냐 물었고, 우린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오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우람이가 떠났다고.


우람이를 보내고 난 몇 년 동안이나 그 아이가 생각나면 그렇게 울었다. 그리고 난 그 눈물의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실은 우람이의 죽음이 내게 안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람이를 병원에 맡기고 왔을 때 내가 느꼈던 안도감이 너무 미안해 우람이를 꼭 닮은 미르를 보면서 많이도 후회했다. 내가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밥은 내가 계속 먹이면 되고, 발작이야 조금 두고 보면 다시 멈추는 건데 왜 난 아이를 쉽게 포기했을까.

우람이는 미르를 꼭 닮았었다. 다 컸다면 이런 모습이었겠지.

새벽이가 의식을 잃고 누워 있을 때 보내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의식을 찾을 가능성 높지 않다는 말을 듣고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우람이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새벽이가 내게 주는 고통은 우람이보다 컸고, 그 짧은 순간에 난 그 고통이 어서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던 만큼 새벽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우람이를 보내고 슬퍼한 세월을 두 번은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너무 힘들고, 매일이 두렵다. 새벽이의 예정된 죽음을 감당하기 어려워 오늘은 이런 생각도 했다. '간병이 너무 지겹고 고통스러워지면 차라리 아이의 죽음이 덜 슬플까?' 하는. 모르겠다.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해도 가빠지는 아이의 호흡에 금세 가슴이 내려앉는다. 아이가 기지개만 켜도 숨을 못 쉬어 몸이 강직되는 것일까 놀란다. 난 이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 며칠을 더 살게 될까.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이 있다면, 아무리 불안하고 두려워도 네가 없는 삶이 더 나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나를 보고 웃고 행복해하는 너를 위해서 나는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저 바라는 것 하나가 있다면, 난 네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그 순간이 평화로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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