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강아지와 함께 살아내기
새벽이는 공기 같은 아이였다. 독립심이 강해 같이 있어도 반려인을 귀찮게 하는 법이 없고, 워낙 차분한 성정 덕에 항상 조용하고 착한 딸. 게다가 영리하고 예쁘기까지 해 어딜 가나 사랑받는 남편과 나의 자랑이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고 영국에서 잠시 살다 온 탓에 새벽이는 다양한 나라의 수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새벽이를 만난 수의사 선생님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입을 모아 ‘포메라니안 치고 너무 얌전하고 엄살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새벽이가 너무 기특했다. 하지만 그런 새벽이의 성격이 병을 키우게 됐던 걸까. 아이가 갑자기 이유도 없이 기절하게 될 때까지 우린 아무것도 몰랐다.
새벽이는 가장 좋아하던 공원에서 즐거워하다가 쓰러졌다. 남편과 나는 새벽이가 좋아하는 공원에서 분식을 먹으며 주말을 즐길 계획이었다. 공원에 도착하자 새벽이는 여느 때처럼 즐겁게 뛰어다녔다. 행복해하는 아이 모습에 나도 기뻐하며 잠시 음식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눈길을 돌렸을 때 아이는 이미 바닥에 누워 있었다. 마치 스스로도 왜 누워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황당한 눈빛으로.
자주 가는 로컬 병원으로 데려가 아이의 상태를 공유하고 필요한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검사는 한 시간 이상 걸릴 수 있으니 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큰 병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11월 건강 검진 결과에서 아무 이상이 없었고, 같은 나이의 다른 소형견에 비해 건강하다는 소견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병원의 연락을 받고 다시 아이에게 이동하면서 남편은 해맑게 '아무 일 아닐 거야'라고 했다. 나도 걱정은 했지만 죽을병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한 우리를 부르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진료실 의자에 앉자 선생님은 '새벽이 상태가 많이 좋지 않습니다'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아이가 심장병, 그중에서도 희귀한 ‘확장성 심근병증(DCM)’을 앓고 있다고 하셨고, 이미 너무 진행된 상태라고 설명하셨다.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고, 새벽이에게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이 남았단 말을 듣고 병원을 나섰다.
그래도 3개월은 버틸 수 있다던 선생님의 말씀이 무색하게도 새벽이는 차로 겨우 15분 거리에 있는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숨을 못 쉬기 시작했다. '오빠, 새벽이가 숨을 안 쉬어. 병원 가야 해.' 다급하고 무서운 내 말에 남편이 급하게 차를 돌렸다. 운전하느라 새벽이 상태를 직접 볼 수 없던 남편은 대체 어떤 상태냐고 내게 계속 물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이가 '숨을 안 쉰다'는 설명 외에는 그 상태를 표현할 길이 없었다.
마치 물에 빠져 숨을 쉬지 못하는 것처럼 괴로워하는 새벽이를 겨우 병원 건물까지 데리고 왔다. 내가 먼저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새벽이의 혀와 잇몸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숨이 끊어져 가는 게 보였다. 이대로 아이가 죽겠다는 생각이 짙어질 때쯤 엘리베이터가 병원이 있는 층에 도착했고 다급하게 병원으로 뛰어들어갔다. '선생님, 우리 애가 이상해요. 우리 아기 좀 봐주세요.'
테크니션 선생님께 아이를 넘기고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내 뒤를 따라 들어온 남편도 함께 울었다. 혼비백산이 되어 뒤엉켜 우는 우리 부부를 동물병원 원장님이 부르셨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은 "아이에게 '수포음'이 들린다"며 폐에 물이 찬 것 같다고 하셨다. 24시간 운영하는 2차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전원 하는 과정에서 숨을 못 쉴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아이의 목숨을 걸고 다른 병원에 가느냐 24시간은 아니어도 이 병원에 맡기고 가느냐 하는 선택이 남았다. 어느 쪽이든 무서웠다. 원장님 말씀을 듣고 고민하고 있던 우리에게 주치의 선생님이 오셨다. 새벽이 일단 안정된 상태라고 하며 확인시켜 주던 그때 새벽이 상태가 다시 안 좋아졌다. 숨을 쉬지 못하던 아이는 결국 실신했다.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하는 새벽이의 기도에 관이 끼워졌고, 정맥으로 강심제와 이뇨제가 투여되었다. 빠른 시간 내에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아이가 살아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했다.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시간이 길수록 뇌에 손상이 갈 가능성도 높아지고, 행여나 깨어난다고 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단 설명을 들었다. 힘들었지만 아이가 살아날 확률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가 보기에도 약효가 떨어지면 심박수가 계속해서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고, 아이는 힘들어 보였다. 힘들지만 보낼 수밖에 없다면 새벽이가 아픈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얼른 결정하려 했다. 장례식장에 전화를 해 필요한 절차를 알아보고 아이를 보았다. 아, 내가 죽으면 죽었지 내 새끼를 보낼 수가 없더라. 내 선택으로 내 눈앞에서 자식의 숨이 끊어지는 걸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생각에 한 시간, 두 시간을 보냈다. 그러자 새벽이 심박수가 다시 올라가고, 아이의 의식이 돌아와 기도에 들어간 관을 불편해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남편과 내가 아이에게 간식 먹으러 집에 가자고 외쳤다. 좋아하는 간식, 고기 다 줄 테니 제발 일어나라고 빌고 빌었다. 한 시간이 지나자 아이가 일어섰고 다시 산소방으로 들어갈 정도의 의식을 찾았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새벽이가 우리에게 기회를 준 거라고 하시며 지금이라도 부산에 있는 2차 병원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하셨다. 전원 중에 새벽이가 갑자기 숨을 못 쉴 위험이 있지만, 우린 그걸 무릅쓰고 옮기자는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 부산에 아무런 문제 없이 도착했다. 대동해주신 로컬 병원 선생님께서 부산 선생님께 아이의 병과 관련한 내용을 전달해 주셨다. 부산에서 일주일 동안 입원하며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고, 남편은 오늘까지 나는 토요일까지 병원 근처 숙소에서 5분 대기조처럼 지내기로 했다.
실신 후 아이가 다시 의식을 찾을 때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췌장염을 앓을 때도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안 좋아졌다가도 다음 날에 이상할 정도로 회복하던 아이였다. 이상한 병이 급하게 찾아와서 괴로웠던 만큼 새벽이가 금방 나아질 것 같다는 예감 말이다. 내 예상처럼 지금까진 놀라울 정도로 나아지고 있다. 이뇨제로 수분이 빠지니 심장의 크기도 조금 줄고, 눈도 또렷해지고 밥도 스스로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수액으로 들어가던 약은 이제 주사로 변경되었고 그걸 경구약으로 대체해도 심박이 유지되고 폐수종이 생기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있다.
물론 심장 질환의 특성상 회복이란 없는 법이고 최악을 피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이다. 집에 가더라도 아이는 우리 곁에 오래 있지 못할 확률이 아주 높고, 급하게 숨을 못 쉬어 이번처럼 심정지가 올 수도 있다. 혹은 이번 주를 버티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그래도 일단은 응급 상황을 벗어난 상태고, 덕분에 나도 남편도 약간은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 곁에 1-2년만 더 살아준다면 엄만 네가 너의 수명을 다 살고 갔다고 그나마 위안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내 새끼, 할 수만 있다면 내 심장도 도려내어 네게 주고 싶은 마음이다.
* 이 글은 새벽이가 처음 실신한 다음 날(23년 4월 17일)에 인스타그램에 작성한 내용을 수정한 것이다. 새벽이는 현재 진단 후 1년 넘게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