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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Sep 03. 2024

여섯 번째: 커지는 욕심

심장병 강아지와 함께 살아내기

선배의 심장은 2009년 여름밤, 아무 이유 없이 정지했다. 논문 심사를 앞두고 있었고, 평소 만성적으로 피로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건강상의 문제도 없었다. 서른두 살의 객사였다. 순간적인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므로 아무 고통도 없었으리라고 의사는 말했다고 한다. 고통 없는 죽음이었다는 사실이 아무런 위안이 될 수 없을 만큼 선배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p.230, '먼 곳에서 온 노래', 『쇼코의 미소』, 최은영.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편안하게 텍스트를 읽던 중 갑자기 날 멈칫하게 만드는 구절이 나왔다. 소설의 중심 내용과 크게 관련 없었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너무 간절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순간적인 심장마비, 아무 고통도 없었으리라.


새벽이가 심장병 말기 진단을 받고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최대 6개월까지 살 것이라던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늘 아침에도 새벽이는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며 먹을 것을 달라고 떼를 썼다. 아침밥을 주니 그다음엔 간식 먹을 시간이 되었다며 또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간식을 주니 이제는 산책을 나가야 한다고 애교를 부린다. 이런 아이가 급사의 가능성이 높은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활기차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지난 6개월을 행복하게 보냈다. 새벽이가 올해 생일까지만 살아있어 주어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아이의 생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상태가 유지만 된다면 올해 생일은 물론이고 내년 생일까지도 우리 곁에 있을 것 같다. 남편이 부푼 기대를 안고 주치의 선생님에게 말을 꺼냈다. 6개월 정도 살 것이라고 예상하셨는데 아직도 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고. 하지만 남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생님은 새벽이가 "언제든 당장 문제가 생겨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심장"을 가졌다며 다시 한번 급사의 가능성을 상기하셨다.


잊고 있었던 두려움이 다시 피어올랐다. 씩씩하게 밥 달라고 짖는 아이를 보면서 당연히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아이가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무서웠다. 난 엄마고 새벽인 내 새끼인데 왜 잊었을까. 자꾸만 커지는 욕심에 아이의 상태를 망각했던 6개월이 갑자기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내가 마음을 놓고 있는 동안 새벽이에게 아무 일도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비극이 아직 현재 진행 중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트위터에서 본 누군가의 글귀가 생각난다. 너무 행복한 순간에도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아서 갑자기 무서워진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새벽이를 보는 내 마음이 그렇다. 어여쁜 은목서 향을 맡으며 기분 좋게 뛰어가는 내 강아지의 모습이 정말 언젠가는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서 행복한 만큼 아프다. 하지만 현실을 알면서도 욕심은 점점 더 커진다. 네 미소를 나 죽는 날까지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언젠가는 분명 끝이 오겠지.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을 그날에 난 그저 네 심장이 아무 고통도 없이 멈추기를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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