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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Oct 28. 2024

011 서평 쓰기

<순례주택>, 유은실

난 오수림이 싫다.


오수림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우리 엄마 딸이다. 오수림 태어나는 순간부터 난 그 애가 너무 싫었다. 나만 비추고 있던 온 세상의 사랑이 그 애의 탄생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난 무대 위에서 빛나는 유일한 공주님이었는데 나만의 소극장 옆에 더 크고 멋진 대극장이 생긴 기분. 조명도, 음향도, 분장도 모두 대극장의 것이 더욱 빛났다. 난 그게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오수림의 무대가 순례주택으로 이전한 일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나의 소극장보다 더 오래되고 후진 곳으로 좌천당한 샛별을 보는 기분이었달까. 그렇게 좌천당한 오수림이 영원히 김수림이 되어 나만의 무대 원더 그랜디움에 오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 같은 예감에 신이 났다.


난 그렇게 오수림이 초라한 무대의 지박령이 되길 바랐다. 어두컴컴한 빌라촌 구석에서 퀴퀴한 냄새를 참아가며 세련되지 못한 미감과 교양을 지닌 관객들이나 상대하는 초라한 주인공이길 바랐단 말이다. 하지만 오수림은 그런 내 간절한 바람을 사뿐히 지르밟고 일어섰다. 수림이는 초라하기는커녕 독야청청 빛나는 장송으로 자랐고, 세월이 갈수록 순례주택을 지탱하는 철근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게 더 싫었다. 일류 세상에는 발도 들이지 못하는 주제에. 감히 내가 등장하는 공연 티켓을 살 엄두도 못 내는 주제에. 순례주택이라는 든든한 백을 뒤에 두고 오수림이 날 꾸짖는 기분이 들었다. ‘네가 딛고 있는 무대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야.’ 아무리 귀를 막으려고 해도 울리는 명료한 그 메시지가 싫었다.


순례주택과 원더 그랜디움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이용해 간신히 모른 척하고 살았는데. 내가 사는 세상은 너희들의 것과는 ‘급’이 다르다고 흐린 눈, 흐린 귀하며 꿋꿋하게 버티려고 했는데. 갑자기 날 지켜주던 모든 게 무너졌다. 더는 원더 그랜디움에 살 수가 없다니! 집이 망해서 순례주택에 들어가는 일조차 과분한 일이 되었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나 같은 스타가 어떻게 초라한 빌라촌에서 살 수 있단 말이야? 날 비웃는 오수림의 통쾌한 음성이 상상된다. 망했다. 이제 나는, 그리고 나의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


<순례주택>의 서술자 오수림의 언니 오미림의 목소리를 상상해서 적어 보았어요. 미림이는, 그리고 수림이는 어떻게 될까요? 순례주택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도서관 혹은 서점에서 <순례주택> 한 권 입양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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