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 카인드>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도 유치원생들이 보는 TV 프로그램을 보곤 했다.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도 그랬다.
요즘 시대로 바꾸어 말하면,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도 '뽀로로'를 봤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 보니, 세상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재미없고 익숙하지 않지만 뉴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자, 온통 밝게만 보였던 세상이 검게 물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세상을 조금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세상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거세질수록, 더 똑똑하고 현명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더 많이 경험할수록, 점점 사람과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마침내 사람은 바꾸기 어려운 존재니, '그저 생긴대로 살다가 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사람을 비웃으면서 점점 마음이 병들어갔다.
1980년대 100여 개 국가의 사회과학자 네트워크에서 실시한 대규모 여론조사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만하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사람들을 대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결과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주 1).
오늘날 다시 여론조사를 해 본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휴먼 카인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에 대해 이처럼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된 주요 원인이 '뉴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뉴스는 예외적인 것에 많은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의 공격, 폭동, 살인사건과 강력사건, 심각한 자연재해 등 강도가 높을수록 뉴스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나쁜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 아님에도, 뉴스는 시청자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며 우리에게 부정적인 신호를 계속 보낸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살고 있는 훌륭한 이웃들을 소개한다면 어떨까?
시청률이 바닥을 치고, 방송사는 곧 문을 닫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뉴스에게만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평범하지만 정직하고, 선을 사랑하고, 정의롭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남을 돕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남들과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자연도 인간을 멸종시키기 위해 악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날마다, 매 순간 자연의 보호와 은혜를 입고 산다.
몽테뉴도 이렇게 말했다.
어떤 종류의 희귀하고 걸출한 재능과 덕을 겸비한 인물이 가끔 극도의 곤궁에 빠지는 경우, 신수가 좋아서 충분한 가산을 물려받은 자가 이런 인물들을 곤궁에서 면하게 해 주고, 적어도 그렇게 해 주어도 불만이라면 그들의 생각이 부족한 탓이 되겠지만, 큰 호의를 가지고 구원해 줄 사람이 있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할 뿐이지, 세상이 썩은 것은 아니다(주 2).
세상을 어떻게 잘 조직하고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이지, 사람과 세상이 썩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비난하고, 사람을 욕한다고 해도 세상과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병들뿐이다.
세상과 사람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하고 있을 뿐, 거기에서 희망을 빚어내는 것도, 절망을 빚어내는 것도 오로지 사람의 몫이다.
세상이 희망적일지 절망적일지의 여부는 오로지 우리의 믿음에 달려있다.
나의 믿음이 나를 만든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