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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Jan 16. 2024

무엇으로 '나'를 알 수 있지?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 몽테뉴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준마는 낙인으로 알고, 사랑에 빠진 젊은이는 눈빛으로 알지(주 1)."


고전을 읽기로 결심하면서 가장 먼저 고른 책이 『안나 카레니나』였다.

무슨 이유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톨스토이라는 대 작가의 책은 적어도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골랐던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에 고전을 드문드문 읽기는 했지만,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대차게 읽어내겠다고 다짐한 것이 5년 전의 일이었다.

책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영화와 뮤지컬도 함께 보면서 고전을 읽어나갔다.

키이나 나이틀리라는 여배우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도 아마 이 즈음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 /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안나 카레니나』하면 떠오르는 명대사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주 2).'라는 문구다.

그런데 너무 잘 알려진 명구는 식상하다.

그 대신 나의 눈에 들어온 너무나 멋진 대사가 바로 이것이었다.


준마에 대해서라면 몽테뉴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에쎄(몽테뉴 수상록)』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 마리 준마의 힘은 그 말이 적당한 때에 딱 정지할 수 있는가를 보는 것으로밖에는 더 잘 알아볼 것이 없다(주 3).'

대 작가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눈뿐만 아니라 세상과 사물에 대한 관찰력도 대단히 뛰어난 것 같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준마는 낙인과 적당한 때에 딱 정지하는지의 여부를 보면 알고, 사랑에 빠진 젊은이는 눈빛으로 알 수 있다는데, 그럼 나라는 사람은 무엇으로 알 수 있지?'


사냥개가 사냥개일 수 있는 것은 뛰어난 후각과 빠른 속력, 그리고 타고난 용맹으로 알 수 있다. 우리 집 개는 진돗개와 풍산개의 혼혈인데, 진돗개의 영민함과 민첩성, 충성심과 세 마리가 모이면 호랑이도 잡는다는 풍산개의 용맹함을 타고났다. 뭐, 약간의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 나는 무엇으로 알 수 있지?

화려한 스펙도 없다. 내세울 만한 업적도 없다. 브런치에 글을 쓰긴 하지만, 그것이 작가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주어질 만큼 권위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걸어가다가, 그 궤도를 벗어나 다른 의미있는 무엇을 찾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몽테뉴의 이 말을 만났다.

부귀와 명예는 제쳐놓고 셔츠 바람으로 나오게 하라. 그가 경쾌하고 건강하여 직무에 적합한 신체를 가졌는가? 그의 마음은 어떤가? 마음이 건전하며 그 모든 부분이 유능하고 잘하게 보이는가? 그 마음이 자기 것으로 풍부한가? 또는 남의 것으로 풍부한가? 요행으로 얻은 것은 없는가? 뽑아 든 칼을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볼 수 있는가? 입으로건 목으로건 어디로 생명이 달아나도 꼼짝도 않는지,  마음이 침착하고 공평하고 만족하는지를 봐야 하는 것이며(주 4)...


사람이라면 무릇, 자기 직무를 수행할 만한 건강한 신체를 가져야 하며, 마음이 건전해야 한다. 그런데 남의 눈치를 봐가며 남들이 좋게 생각하는 것으로 몸에 걸치고 치장하며, 자기 주변과 심지어 자기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그것으로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것이 없으니 남의 것으로 주워섬겨 텅 빈 창고를 채우려 한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무엇하나 제대로 일으켜 세운 것이 없다. 결연한 의지를 불태워 칼을 뽑지도 못하고, 칼을 뽑았다 한들 어디를 겨눠야 할지도 모르고, 다부진 결단으로 칼을 휘두르지도 못한다. 그러니 목이 달아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의연함과 침착함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내가 잘한 몇 가지가 있는 것 같다.

내 것을 찾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던 지난날의 몸부림.

참 사람이 돼 보려고 끊임없이 내면을 갈고닦았던 열정.

건전한 마음과 함께 건강한 신체를 만들기 위해 지속해 왔던 운동.

그리고 구차하고 초라해 보여도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았던 끈기.


이것으로 나란 사람을 알 수 있다!

셔츠 바람으로 나오라는데...

몸을 좀 잘 만들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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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2)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2019, 민음사

주 3, 4) 몽테뉴,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2005,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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