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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Feb 14. 2024

아버지의 보일러

시골 사는 이야기

우리 집은 화목보일러를 사용한다.

어제는 아버지가 트럭에 나무를 가득 싣고 돌아오셨다. 또 어디에서 가져오셨는지. 우리 집에서 화목보일러를 사용한다는 것을 아는 분들이, 나무를 베거나 버려지는 목재가 있으면 꼭 아버지에게 연락을 한다. 덕분에 아버지는 나무를 많이도 쟁여 놓으셨다. 집 창고에도 가득 쌓여있지만, 여기저기에 포장으로 덮어 놓은 나무 더미가 그득하다. 그렇지만 하루에도 두 번, 추운 날에는 세 번까지 넣다 보니,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일 만큼 보일러가 엄청나게 나무를 먹어댄다. 화목 보일러가 따뜻하긴 하지만, 나무를 구하는 것이 꽤나 귀찮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 덕에 우리 집은 한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살아도 될 만큼 따뜻하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예전 섬에서 살 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행사처럼 하는 일이 몇 가지가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해변으로 몰려온 바다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일이었고, 하나는 자가발전기에 쓰일 기름통을 육지에서 가져오는 일이었다. 그때는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자가발전기를 사용했다. 마을 발전소(?)에는 발전기가 3대 있었고, 한 번에 2대씩 교대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새벽 4시가 되면 한 시간 정도 발전기가 멈추었다. 발전기도 좀 쉬어야 하지 않겠나.


발전기에 쓸 기름이 줄어들 때쯤이면, 육지로 배를 몰아 기름통을 실으러 나간다. 그리고 배 두 척에 기름통을 가득 싣고는 섬으로 돌아오곤 했다. 기름통이 도착했음을 알리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와 기름통을 나르기 시작한다. 선창에서부터 발전기가 있는 창고까지 드럼통을 굴리면서 나르는데, 굴리는 일도 꽤 힘든 일이다. 지금이야 해저케이블로 전기도 들어오고, 정기 여객선이 생겨 선창도 그럴듯하게 크게 만들어 놓았지만, 그때는 자갈 위에 콘크리트로 길을 깔아놓은 것이 전부였다. 당연 길이 기울어져 있고, 마을에 올라갈 때까지는 오르막 길을 드럼통을 굴리며 올라가야 했다. 혼자서는 어려우니 둘씩 짝이 되어 드럼통을 굴려오곤 했다.


그런데 가정마다 돌리는 보일러는 어떻게 기름을 채울까?

배가 있는 사람들은 겨울을 나기에 필요한 양을 한꺼번에 실어 나르지만, 나처럼 배가 없는 사람들은 일일이 20리터짜리 말통을 들고 다니면서 손으로 들어 날라야 했다. 육지에 있는 선창에 도착하면 차가 주차된 곳까지 빈 통을 네 개 정도 들고 간다. 그리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운 후, 다시 차를 대놓고 맨손으로 선창까지 들어 날랐다. 길이 울퉁불퉁하고 좋지 않아 '구르마'를 사용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네 통을 못 나르니 양손에 한 통씩 들고 두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했다. 200m는 족히 되는 거리를. 그런데 그렇게 기름을 가져왔어도 보일러가 자주 고장이 나 제대로 돌려본 적이 없었다. 물이 짜다 보니 보일러에 무리가 가는 것이다. 섬에 들어오기도 번거로워, 수리를 부탁해도 차일피일 미루다 겨울이 다 지나가곤 했다. 그러다 보니, 방 안에 접이식 침대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전기담요를 깔은 뒤, 옷을 있는 대로 껴입은 채 이불을 덮고 떨며 잘 때가 많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너무 편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함을 느낀다.

이제는 연세가 많아 몸도 왜소해지셨는데, 여전히 많은 일을 하시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죄인이 된 심정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아들을 보는 마음이 오죽이나 하실까. 차에 실린 나무를 내리면서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아부지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연재하고 있는 브런치북입니다.

⁕ 월, 목 - <문장의 힘!>

⁕ 화, 금 - <거장에게 듣는 지혜>

⁕ 수, 일 - <사소한 일상은 인생의 최종손익결산>


일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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