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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밤 Oct 07. 2023

여전히 프랑스, 갑자기 이탈리아

여행 준비는 심플했다. 계획이 없으니까


직장인 이 세글자에는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가는 것은 바로 시간의 제약, 직장인이 한번에 쓸 수 있는 휴가는 길어야 10일이다 앞뒤 주말을 붙인다면 그래도 2주가까운 시간을 낼 수가 있다. 어느 나라를 갈 것 인가를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막연히 떠오른 곳은 프랑스, 이탈리아였다.


원래는 이탈리아를 가려는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비행기 티켓을 끊었을 땐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로 나와야지 라는 생각으로 티켓팅을 했다. 하지만 나의 즉흥적인 성격, 갈대같은 마음은 역시나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나는 어릴때 잠시 요리사가 꿈이었다. 중학교 3학년때 갑자기 공부가 너무 하기싫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나는 조리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요리사를 하고싶다고 선언했다. 물론 즉흥적이고 치기어린 소심한 반항에 어머니는 그 어떤 타격도 입지 않았다. 나의 단호한 표정과는 상반되는 평온하고도 나긋한 미소와 목소리로 말하셨다. 


“안돼. 나중에 대학가서 취미로 해”


물론 중학교 사춘기의 반항이 저 한마디로 쉽게 수도꼭지를 잠그듯 끝난것은 아니지만, 몇일 가지 못하고 나는 다시 대학교를 목표로 학원을 가고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내가 다시 요리를 해야겠다하고 시작한 것은 직장인 2년차 때였다. 나는 어쩌다 홈쇼핑회사 주방용품MD 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반강제적으로 주방용품과 친해져야하는 숙명을 갖게되었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이 이렇게나 돌고 돌아 주방용품MD가 된 것인가 싶기도 했다.


당장 자취를 하지도 않아 딱히 요리를 할 일이 많지않았다. 그래서 요리학원을 등록했다. 근데 그저 그런 한식을 배우고 싶지는 않았다. 한식은 유튜브에서 백종원 선생님 한테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찾아간 곳이 이탈리안&프렌치 요리학원이었다. 직업에 대한 고민으로 잠시 요리와 친해져보고자 다녔던 학원에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쏟았다. 서양요리의 기본부터 시작해서 생면 파스타를 배우고 나중엔 요리대회에 나가서 상도 탔다. 하다보니 참 어이가 없었지만 이렇게 이탈리아가 조금씩 나에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정도로 진심으로 요리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미식의 나라 이탈리아를 가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집에서 생면까지 뽑아본 사람이라면 이탈리아 현지의 파스타는 먹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스페인이라면  한달이나 순례길을 걸어봤잖아 이참에 이탈리아가서 본토의 파스타 그리고 피자 한번 제대로 먹어보자.”


결국 내 삶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소재중 하나인 요리와 음식에 대한 순례를 위해 이탈리아 행을 결정했다.




프랑스는 이미 두번이나 가본적이 있다. 두번이나 가봤음에도 다시 가고 싶은 나라고 그 어떤 휴양지보다 마음의 휴식을 주는 곳이다. 프랑스가 가고싶은 이유를 묻는다면 정말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쁜 건물, 맛있는 음식과 술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그들이 가진 낭만이 좋다. 좋게말하면 낭만이지만 마치 고집과 같은 그것이 참 좋다. 수년전 11월에 방문했던 프랑스는 이미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 있었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대부분 따뜻하고 아늑한 실내로 움츠러 들기 마련이지만 프랑스인들의 고집은 추위도 꺾을 수 없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대도 얇아보이는 재킷을 있는 대로 여미고 앉아 금새 식어버릴 것만 같은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그렇다면 프랑스인들은 추위를 타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결코아니다. 코끝까지 벌개진 그들의 얼굴을 보면 추위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난 이 고집이 좋다. 내가 사는 일상은 매우 실용적이고도 관념적이다. 추우면 따뜻한 곳에 들어가야하고 멋드러진 재킷보다는 발목까지 늘어진 롱패딩을 입어야만 하는 것이 마치 법처럼 굳어진듯 말이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의 고집들을 보고 있자면 표현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파리가 좋다. 이번 여행의 시작점으로 파리를 정한것도 나의 막연한 무의식속에 시작은 파리, 그곳에서 나의 일상을 벗어두고 가자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여행 준비는 심플했다. 비행기표는 한참전에 끊어놨고 기차표와 숙소는 대강 일정을 정하고 나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다 결제해버렸다. 누군가와 의논해야 했다면 이래저래 숙소와 일정을 많이 고민해야 했겠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이런것은 매우 간편하다. 이번에 여행은 딱히 무엇이 보고싶어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그래서 치밀한 일정은 필요하지 않았다. 


내 MBTI를 이야기하자면 나는 재기발랄과 즉흥의 대명사 enfp의 성향이다. 무엇이든 즉흥으로 하는것에 좀더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다보면 즉흥으로 해낼 수 있는 업무는 많지가 않다. 그러다보니 사회속 직장인의 나는 계획적이라는 옷을 입고 살아갈수 밖에 없다. 때로는 입기 불편한 정장을 매일 입고 출근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 나혼자 오롯이 떠나는 이 여행은 모든 것이 들어맞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철저히 무계획적이어도 되는 이 순간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이내 편안함을 느꼈다. 편안함을 넘어선 해방감이 느껴졌다.


내가 정한 최종 경로는 아래와 같다.


파리 - 니스 - 밀라노 - 피렌체 - 로마 - 나폴리 - 포르투


2주라는 짧은 여행기간동안 방문하기에는 빠듯한 일정이다. 하지만 한곳에 넋놓고 오래 있는 것을 못하고 늘 새로운 것을 찾는 나의 성향에 딱 맞는 여행 루트라고 할 수 있다.  파리에 가서 이른아침 테라스에서 크루아상을 커피와 함께 먹는다. 니스에선 해변 조약돌위에 말린 오징어처럼 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을것이다. 밀라노에서는 최후의 만찬 벽화를 본다. 피렌체에서는 냉정과 열정사이와 같은 사랑을 꿈꾸며 붉은 벽돌의 골목을 걷는다. 로마에서는 일몰시간에 맞춰 자리를 잡고 밤이 다가옴에 켜지는 콜로세움의 불빛을 볼것이다. 그리고 나폴리에서는 피자를 먹는다. 마지막 포르투에서는 도수가 강한 와인한잔에 포르투 강가를 눈에 담고 온다. 일단은 이게 내 계획이다. 정말 계획형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들으면 울화통이 터질 계획이겠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빈틈이 많은 계획을 보면서 그 여백에 채워질 예상치 못할 일들을 상상한다. 벌써부터 도파민이 나온다.


짐은 역시나 전날부터 싸기 시작했다. 회사 동료들은 아직도 짐을 싸지 않았냐며 어디 제주도 정도 가는거 아니냐며 놀랐다. 하지만 나는 뭐 그렇게 오래 고민 할것이 있나 싶었다. 하루전날 짐을 싸두고 9월 17일 일요일 오전 6시 20분쯤 집을 나섰다. 공항 리무진을 타고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집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버스 정류장까지 아버지가 차로 데려다 주셨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아버지와 가벼운 하이파이브를 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는 이런저런 잔소리를 한귀로 흘렸다. 그리고 간결한 하이파이브와 짧은 화이팅으로 2주간의 여행이 순탄하길 기원해주셨다. 



8년전 나와 아빠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기위해 비행기를 탔고 그 여정중에 파리를 갔다. 아직도 아빠와 내가 레드와인에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하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빠와 내가 순대국이나 삼겹살도 아니고 파리 뒷골목 레스토랑에서 달팽이 요리를 먹고있다니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아빠와의 진솔한 이야기를 하게 만들어준 그 요리와 술과 시간이 감사했다. 그렇기에 아빠와의 간결한 하이파이브에는 많은 의미가 남겨있는듯했다. 수년전 함께 한 여행에서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아들이 꼭 찾아서 오기를 바라는 묵직하고 담담한 아빠의 응원같았다. 그렇게 아빠를 보내고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20여분을 기다렸고 공항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공항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내가 타고 가는 항공사 아시아나의 탑승은 인천공항 터미널1에 위치해있다. 비교적 새로지어진 2번 터미널이 더 좋을 수 있지만, 항상 비교적 좀 더 붐비는 인천공항 1번 터미널이 더 좋다. 뭔가 이 수많은 사람들과 알게모르게 느낄 수 있는 동질감 때문이다. 서로 각자의 이유에 따라 공항에서 저마다 분주하지만, 그래도 대다수를 차지 하는 여행객들의 설렘이 느껴진다. 공항 냄새에서부터 느낄 수가 있다. 왠지 공항에만 들어서면 다른 냄새가 난다. 설렘이 모이면 이런 냄새가 나는걸까, 나도 그 냄새를 맡으니 설렘을 감출 수가 없다. 그래서 누가보면 참 이상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공항에 도착하고 부터는 괜히 미소를 짓고 걷게 된다. 가볍게 체크인과 수하물 처리를 하고 탑승구로 향했다. 모든 게이트를 통할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반갑다. 



아침은 간단히 스타벅스 샌드위치를 먹었다. 일부러 식당이 아닌 게이트 앞 널찍한 의자에 앉았다. 커다란 창문 밖으로 비행기가 보이는 대기실은 여행의 마음가짐을 준비하기에 최적이다. 적당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곧 비행기에 탑승했다. 프랑스 파리행 직항 비행기, 나는 지금 숨을 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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