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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밤 Oct 09. 2023

시 쓰기를 좋아했던 20대

그 많던 시상은 누가 다 먹었을까


나의 아버지는 작가다. 어릴때부터 시를 써서 우리에게 해맑게 들려주시곤 했다. 그게 그 어릴땐 마냥 귀찮고 대충 흘려들으며 모른척했다. 하지만 피는 못속이는 법이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우리 남매는 남들보다 유독 국어를 잘한다는 걸 알았다. 물론 나보다는 우리 누나가 아빠의 재능을 더 물려 받은 편이긴하다. 하지만 이런 글 쓰는 재능 만큼은 누나보다는 부족할지는 몰라도 감성만큼은 내가 한참 앞지른다고 생각한다. 슬픈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그 슬픈 감정에 매몰되어 내 일상이 슬퍼지기 때문이다. 늑대소년이라는 영화를 볼때 박보영이 송중기에게 소리치며 밀쳐내는 장면에서 휴지가 모자르도록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때 진로를 정할 때 카피라이터라는 꿈을 가졌다. 


“글을 쓰면서 돈을 벌 수 있다니”


나는 광고 카피라이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광고홍보학과를 가고싶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러하듯 점수가 부족했다. 그래도 내 꿈에 가까이 갈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해야 겠다고 생각했고 국어국문학과를 진학했다. 정말 피는 못속인다. 아버지는 작가고 그 첫째딸이 먼저 국어국문학과에 가고 둘째인 나도 엉겁결에 국어국문학과를 갔다. 진정한 국문 가족의 완성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저런 이유가 합쳐져서 나는 국문과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난 자연스럽게 시를 쓰게 되었다. 사실 시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 지금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신 박재천 선생님에게 시를 배웠다. 참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1년정도 혹평을 들어가며 시를 배웠다. 하지만 시를 배우다보니 이른바 작가들의 시는 나와 같은 일반인의 발치에 와닿기에는 너무도 먼 것만 같았다. 그들의 시를 읽는 것이 마치 타국의 언어를 해석해야 하는 일처럼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시를 모르는 사람도 가슴으로 읽혀지는 시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게 ‘시밤’ 이었다. 그때부터는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쉬운 단어로 옮겨적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공감해주는 것이 좋아서 줄곧 시를 쓰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내 모든 감정의 경험들이 시가 되는 것이 신기했다.


이렇게 내 20대는 시로 점철 되었다 해도 무방하다. 20대의 사랑, 이별, 우정, 여행, 인간관계 모든 경험들이 결국은 나의 시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모든 일에 의미부여 하기를 좋아하고 내 삶을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도 참 많았다. 


시를 쓰지않기 시작한건 일을 하고부터다. 왜인지 일을하고 집에 돌아와 전과 똑같이 책상 스탠드를 켜고 따뜻한 차를 내려두어도 도통 무슨 말을 써야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온통 일 생각, 돈 생각, 이런 현실적인 생각들이 나를 감싸고 돌기 시작하니 아름다운 단어가 차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글을 올리지 않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도 나를 보면 왜 요즘은 시를 쓰지 않는지 물었다. 그 질문들이 무거운 이불처럼 나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다. 이게 다 직장 때문이다. 아니면 더이상 돈도 되지 않는 감성이 아니라 이런 돈되는 생각을 쫓아야 하기 때문에 이게 나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더 가두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만은 아닐것이다. 나처럼 시를 쓰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지라도 저마다 스스로를 가두고 내쫓지 않았을 때 스스로의 행복을 찾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주는 각박함에 나의 행복을 방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첫 직장에 취직을 하고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지난 5년간 나는 모든 무급휴가를 제외한 유급 휴가를 전부 돈으로 받았다. 즉, 한번도 휴가를 제대로 쓴적이 없다. 나는 영끌러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나이에 아파트를 샀다. 어린나이에 대출을 받게 되었고, 다달이 나가는 원리금이 도둑을 잡는 경찰처럼 나를 쫓기 시작했다. 


이렇게 투자하는 삶, 아끼는 삶에 대해서 뿌듯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 유튜버들은 말한다 젊어서 욜로 하는 시대는 지났다. 욜로하다가 골로간다. 젊어서 아끼고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노후를 대비하자라고 말이다. 그 말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삶이 결코 빽빽히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이전의 이야기들을 보면 알겠지만 집을 사기 이전의 나의 모습은 참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은 발랄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자산과 동행하는 삶을 시작한 이후로 나의 관심사는 철저히 자본주의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과가 끝나고 따뜻한 차를 내려놓고 스탠드 아래에서 시 쓰기를 좋아하던 나의 시간은 온통 아파트 공부를 하거나 부동산 뉴스를 찾아보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서점에 들르면 여행 수필 코너에 서성이던 내가 이제는 재테크 코너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게 되었다.


어느날 친구를 만나 돈, 부동산,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내 친구는 문득 이런말을 건넸다. 


“범수야 근데 너 누가 지금 쫓아오는 거 같아.”


나는 그 말에 괜히 성을 내며 자존심을 부렸다. 우리 나이 부터는 이제 경제에 더 관심을 갖고 살아야한다고, 네가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내가 운영했던 시 SNS를 들여다보며 금새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올린시의 날짜가 2021년이었다. 무려 2년이 넘는 시간 나는 순수한 글을 쓰지 않았다. 나는 순수한 사랑을 늘 상상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시를 쓴다는 것은 나의 상상의 호수에서 물을 퍼올리는 것만큼이나 쉬운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호수의 수분을 긁어모아도 한컵의 시 하나 나오지 않을 정도로 메말라버렸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휴가도 곧 돈이고, 시간도 곧 돈이며 다 아끼고 아껴 쫓기는 무언가로 부터 도망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결국 깨달은 것은 나를 쫓는 것은 내 그림자 였다. 내가 잠시 앉아서 쉬면 나를 쫓던 그림자도 나와 함께 쉬어주지 않을까? 이 여행을 통해서 나는 다시 한번 나를 찾아보려고 한다. 그 여정을 우리가 함께 떠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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